"띵동~"

퇴근하면서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립니다.

무얼 기다리냐구요?

윤석이와 경욱이가 서로 문을 열려고 앞을 다투어 뛰어 오는 소리를 기다리지요.

너무 늦은 퇴근이라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시간이 아니면, 초인종소리에 윤석이와

경욱이가 '아빠~'하면서 뛰어와서 문을 열어주고, 그 다음에는 차례로 한번씩 안아주는

것으로 개선식(凱旋式)을 마칩니다.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뛰어 오는 소리가 좋아서 저는 문이 열려있더라도 초인종을 누르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약간은 생소하고 썰렁한 광경이 기다립니다.

윤석이가 거실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땀을 흘리면서 프라스틱 의자를 머리위로 들고 있고,

아내는 쇼파에 앉아 있습니다.

경욱이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지 자고 있습니다.

윤석이가 공부하라는 시간에 엉뚱한 짓으로 꾸물대었나 봅니다.

공부 방에 들어가보니 쓰기(국어입니다)책과 공책이 펼쳐져 있어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하면서

먼저 윤석이에게 물었습니다.


"김윤석~ 뭘 잘 못했니?"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딴 짓 했어요."


윤석이는 자기가 잘못했을 때는 항상 말을 높입니다.^^


"언제부터 들고 있었니?"

"아홉시 사십분부터요."


대화를 하면서 윤석이는 설움이 터지는지 울음이 삐져 나옵니다.

벌써 20분 째 의자를 들고 있었나봅니다.

그냥 손들고 있기에도 힘든 시간인데.....윤석이가 했을 소행은 꽤씸하지만 애처롭게 보입니다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니?"

"열시 반까지요."

"임마~ 이왕 벌받는 거 당당하게 받지 울긴 왜 울어."


50분이란 시간에 입안에서 혀가 쑥 나올 정도로 놀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거들고

세면장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알고보니 한 시간이었는데 윤석이가 10분 깍은 거랍니다)


사실 윤석이놈 꾸물거리는 거 알아줘야 합니다.

특히 공부하라고 하면, 밖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에 참견하고, 온몸에 난 상처 딱지를

떼는 등 10분이면 할 숙제를 한시간 넘기기가 일쑤거든요.

그래서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속이 터지기 때문에 아예 모른 척 하는 게 속 편합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꾸물대다가 여러차례 혼이 났지만 금새 또 꾸물댑니다.


씻고 나와서는 쇼파에 새초롬하니 앉아 있는 아내에게 협상을 하려고 갔습니다.


"이제 그만하지?"

"안돼. 오늘만 벌써 두 번째야."


아내의 험악한 표정을 봐서 그냥 아내에게 처분을 맡기는 게 상책이다 싶어 꼬리를 말고

옆에 철푸덕 앉아서 TV를 봅니다.


"아빠~ 지금 몇 분이예요?"

"응. 지금 10시 10분이야."


속으로 '벌 받고 있는 놈이 별걸 다 묻네' 하면서 알려 줍니다.

사실 윤석이 놈은 벌을 받을 때도 지 할말은 다 합니다.

네 살 때 빗자루로 매를 들면, 엉엉 울면서 '엄마 그것 빗자루지 회초리가 아니야'라고

따지던 놈입니다.


'시계를 가져다 주면 아빠 체면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그래도 시간이나 보면서

벌 받는 게 덜 힘들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윤석이 앞에 시계 하나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TV 앞에 앉아서 시계를 보는데 그넘의 시간이 참으로 더딥니다.

제가 느끼는 체감시간이 이다지도 더딘데 윤석이놈은 얼마나 더딜까 생각하면서............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내리고 방에 가서 숙제 해"


아내가 초 저음으로 무게잡고 한마디 합니다.

윤석이는 의자를 내리고 무릎이 저리는지 겨우 일어나서 공부방으로 갑니다.


저는 조금 더 앉아 있다 방으로 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10분 정도 있다가 윤석이가 들어와서 눕습니다.


"윤석아~ 일루 와봐. 팔 많이 아프지?"

"괜찮아요. 이제 안 아파요."

"임마. 앞으로 또 그럴거니?"

"잘 모르겠어요."

"..............."


'그놈 참 솔직하다.' 생각하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짓습니다.

사실 앞으로 또 그럴 게 분명합니다.

다만 빈도나 정도가 덜해지길 바라는 거지요.

결론으로 한마디를 합니다.


"아까 벌 설 때 50분이 굉장히 길지?"

"네"

"그래 50분이 그렇게나 긴 시간인데 넌 공부하라면 항상 딴 짓하면서 그런 시간을 낭비하잖아."


둘 다 누워서 생각에 잠깁니다.

원래 윤석이가 끈기가 많이 부족한 편인데, 50분이나 의자를 들고 버텼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윤석이에게 그런 끈기와 근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대단한 성과이고, 아빠로서는

흐믓하기 그지 없습니다.

언젠가 윤석이에게 오늘 일을 말하면서 자신도 그런 끈기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새 윤석이는 잠이 들었나봅니다.

그놈은 코를 조금씩 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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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입니다.
시골의 논과 밭둑, 언덕 등지에서 흔히 보입니다.
연한 어린 순은 나물로 이용하며, 소나 염소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풀입니다.
스코틀랜드에 침입한 바이킹의 척후병이 성 밑에 난 엉겅퀴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성 내의 병사들이 깨어나 바이킹을 물리쳤다 하여 스코틀랜드에서는 국화로 삼고 있답니다.

2001. 11. 6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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