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북경에서 나비가 날면 뉴욕에는 소나기가 온다.
맑은날T
2001. 12. 21. 14:23
그가 출근길에 코피를 쏟은 것은 순전히 국도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도로관리 소홀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각에 집을 나와서 같은 승용차로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달려서 출근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코피를 쏟았고, 코피로 옷깃을 더럽힌 것은 둘째치고 차를 운전하면서
화장지를 뽑아서 코피를 막느라 생명의 위협까지 받은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서인지 아직은 쓸만한 도로를 재포장하느라 법석을 떨더니.......
출근하여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난 다음 엘리베이트에 타면서 거울에 비춰진 코피 얼룩을
보면서, 그리고 세면장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코피를 훔쳐내면서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도로를 그따위로 관리를 하다니....'
'도로를 포장하는 놈이나 도로를 관리하는 공무원놈들은 면허증도 없나....?'
평소와 같이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주행을 하다가 새로 포장하는 도로의
끝부분 이음새를 지나치면서 차가 크게 흔들렸고 그때 코피를 쏟은 것이었다.
대충 얼룩을 지운 다음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 화를 삭이면서,
'이걸 소송을 해버려?' '아님 민원이라도 넣어볼까?'
사람의 몸에서 피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데, 그 아까운 피를 헌혈하는 데 사용한 것도
아니고, 구국의 각오를 다지는 혈서를 쓰는데 사용한 것도 아닌 그냥 화장지로 닦아서 버려야
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더구나 그 원인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있기 때문에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 것이었다.
담배를 몇 대 피다가 그는 급기야 전화기를 들고는 114부터 눌렀고 몇 번의 안내를 거쳐서
시청의 도로관리과장과 연결이 되자 그는 분개한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도로관리과장님이요?"
"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는데요?"
"며칠 전부터 어디 어디에 도로 재포장을 하고 있지요?"
"네."
"그런데 포장을 잘못해서 제가 오늘 출근하다가 다쳤어요."
"네에? 도로가 어떻게 잘못되어서 사고가 나셨는데요? 그리고 다치신데는??"
"도로 포장이 불규칙해서 차가 흔들리면서 코피를 많이 쏟고 옷을 다 버렸다구요."
"코를 차에 부딪혔나보네요. 정확하게 사고 지점이 어디지요?"
"....코를.... 부딪힌 건...... 아니구요...."
"그럼........?"
"손가락에 코를 찔렸어요."
"네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이 대목에서 그는 약간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하고 말았다.
"왼손으로 코를 파면서 출근 중이었는데요."
".....?......?..."
"차가 갑자기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팔굼치가 차에 부딪히고 그래서...........-_-;;"
"@$&!#*(&$*(!@#&$*(&~*(@"
요즘 이 나라에서는 일이 잘못되면 그 원인은 항상 남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억지쓰면 다 통합니다.
당신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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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歲暮입니다.
한 해의 모퉁이에서 뒤를 돌아보면, 비뚤빼뚤 걸어온 내 작은 발자국 마다에는 약간의 후회와
정신없이 달려온 힘든 걸음에 대한 안스러움이 묻어납니다.
어제 퇴근길에는 장자(莊者)의 이야기중 마차가 지나간 바퀴자국에 고인 물에 사는 물고기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 물고기는 자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햇볕에 그 물이 말라버린다는 것을 모른다는 이야기이지요.
내 살아온 서른일곱이 어쩌면 바퀴자국에 고인 물 속에 사는 물고기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습니다.
세상은 너무 커고 나는 그 세상의 약간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남 탓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바퀴자국에 고인 물을 바다라 생각하며 자리잡은 건 바로 자신이니까요.....
2001. 12. 21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