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 하는 생각

하늘이 참 높은 날..

맑은날T 2007. 10. 5. 15:41

출근길에 올려다 본 하늘은 올해 들어 가장 근사하게 맑은 날이었습니다.
높푸르단 말이 딱 어울리는 하늘이었지요.
바람은 또 얼마나 좋던지요.
습기가 가신 바람이 어미카락을 부드럽게 만지고 지나갑니다.
이런 멋진 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시 하나 올려놓고 좀 개깁니다. *^^*


       가을의 노래


                              곽정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결에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떠보낸다

   주여, 라고 하지 않아도 가을에는 생각이 깊어진다

   한 마리의 벌레 울음소리에

   세상의 모든 귀가 열리고

   잊혀진 일들은 한 잎 낙엽에 더 깊이 잊혀진다.

  

   누구나 지혜의 걸인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거라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산 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서는 죽음,

   사자들의 말은 모두 시가 되고

   멀리 있는 것들도 시간 속에 제자리를 잡는다.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란 말 속에 있다.

 


<쑥부쟁이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