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그 아저씨(2) 천수답>

맑은날T 2002. 2. 5. 11:14


그는 농사꾼이었다.

역시 농사를 짓는 그의 아버지 아래에 셋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 동네에서 자라서 그 동네의

땅으로 농사를 지으며 그렇게 살았다.

리어카도 가기 힘든 산골의 천수답을 지게질로 농사를 지으면서 육남매를 땅으로 길러내었으니

그는 천상 농사꾼인 셈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 동네와 인근 동네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였다.

다른 이들이 그를 농사꾼이라고 무시하지 못한 것은 그가 많이 배워서도 아니고, 그가 가진 재산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는 해방직후 서당을 다닌 것이 배움의 전부였고, 그나마 다달이

수업료로 내는 보리쌀 한되와 그의 일손을 아까워하는 형수 덕에 몇 개월만에 그만 두어야했다.


먼 훗날 그가 술김에 잠깐 한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배움에 목이 말랐는데도 야학을 못 다닐 그 즈음 산에 나무하고 오는 길에 넘어졌었다.

넘어지면서 지게작대기에 코가 걸려서 코가 찢어졌는데, 코에서 피가 쏟아지는데 갑자기 그렇게

서러울수가 없었노라고...

서당교육을 받은 형이, 까만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수업받고 있을 동생도 그렇게 얄미웠고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산 속에서 혼자 울었노라고.........


그러나 그는 어깨너머로 혼자 공부를 하여 한문과 한글을 다 깨치고 군복무를 마칠 즈음 혼자서

625전쟁 참전기를 포함하여 자전적 소설을 수권이나 엮어 내었다.

그렇게 혼자 배운 알음알이와 천박하지 않은 언행, 육남매를 모두 교육시키는 헌신적인 부정으로

인해서 그에게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었다.



스물일곱에 결혼을 하고 초가집 한 채와 천수답 서마지기를 물려받은 그는 그때부터 그야말로

소처럼 묵묵히 일만 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손재주도 뛰어난 그는 어릴 적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다 시골에 와서 결혼한

유난히 농사일에 서툴고 힘들 때 불평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아내와 더러는 다투면서 더러는

격려하면서 그렇게 흘린 땀을 모아서 논을 넓히고 그러면서 쌓인 고단함을 모아서 육남매를 키웠다.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자신은 마치 자식을 위하여만 태어난 존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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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답(天水畓)입니다.

하늘바라기라고도 한답니다.

물을 공급할 만한 개울이나 저수지가 없는 산비탈을 개간하여 만든 논으로서 하늘에서 때 맞춰

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완만한 산비탈마다 이러한 천수답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잡초가 자라거나

쓸모없는 잡목이 우거져 한없이 쓸쓸한 애상을 자아냅니다.

천수답은 물꼬싸움, 물지게, 기우제가 연상되게 합니다.

그래서 비를 비님이라고 불렀나봅니다.

2002. 02. 05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