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홍성 유기농 마을 여행

맑은날T 2008. 6. 30. 19:39

공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고 직원들 정신교육 자주 한다.
머......일 열심히 하라는 취지이다.
그렇지만....
부담없는 순수한 공짜....
그거 마다할 사람 없다. 아니 적다.
('없다'고 단정지으면...이게 '일반화의 오류'이다...그래서 '적다'라 고친다)

지난 21일(토요일)부터 22일까지 충남 홍성에 있는 은퇴농장을 농촌체험활동 다녀왔다.
회사에서 사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농촌지원 행사이다.
회사 내 신청가족 10가족(4인 1가족)을 선정하여  1박2일 농촌체험을  다녀온 것이다.
경비 일체는 회사에서 부담하고,  개인이 준비할 것은 세면도구가 전부....
당첨되자 내 입에서는 러시아 미녀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기쁘지 아니할 쏘냐'. '설레지 아니할 쏘냐'......등등.

출발과 도착
21일 토요일 아침, 일찍 밥을 먹고 지하철로 회사 앞에 8시까지 모였다.
차로 오는 것이 더 편하고 저렴하지만...촛불집회로 분신한 분의 장례식이 열릴 예정이라서 교통이 막힐 것을 염려한 탓이다.
중학교 2학년인 윤석이는 기말시험을 준비하겠노라고 점잖게 말을 하여...혼자 라면 끓여 먹으면서 지내라고 자상하게 타이르고 6학년 경욱이만 데리고 나왔다.
8시 반쯤 되어 버스가 출발했다.
목적지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홍원리에 있는 "은퇴농장"이란 곳이다.
행사내용은 감자캐기체험, 모내기 체험, 논두렁에서 새참먹기, 저녁은 바베큐로...오디따서 술 담그기..이런 행사일정이 적혀 있었다.
서해대교 부근의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는 은퇴농장까지 직행해서 11시 30분쯤 하차했다.
확 밀려드는 돼지똥 냄새....
촌놈이라서 견딜만 했지만 차마 고향의 냄새라고 하기에는 버거운 냄새였다.

점심식사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여자숙소와 남자숙소로 나뉘는 바람에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짐을 풀고 나오니 티셔츠 한벌씩 나눠준다.
티셔츠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은 자율배식인데, 돼지고기 보쌈과 각종 나물과 된장국...
조미료를 적게 쓴 탓에 입에 감기지는 않았지만 아주 깊은 맛이 우러나는 멋진 점심이다.
경욱이를 포함한 아이들은 돼지고기에 환장하는 눈치다.

감자캐기
식사를 마치고 감자밭으로 걸어서 갔다.
약 1킬로미터 거리를 아스팔트 따라 걸으니 뙤약볕이 무섭다.
감자 밭에 도착하여 가족당 양파 담는 붉은 망을 하나씩 주면서 감자를  캐라고 한다.
감자 캐는 법은 밑에서부터 깊이 흙을 뒤집으면 감자를 상하지 않게 잘 캐낼 수 있다.
유기농이라서 비료는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무지 굵은 감자는 없었지만, 땅심이 워낙 좋은 땅이라서 감자알이 꽤나 실하다.
금새 한 망을 가득 채우니, 박스 두 개를 주면서 간식거리로 좀 더 캐라고 한다.
가족별로 한 망씩 들고 차에 싣고 다시 모내기 체험하러 가잔다.
걸..어..서...

모내기
모내기 할 논까지 가는 길은 2킬로 조금 못미치는 거리였다.
좀 걷다보니, 발이 아려온다.
샌들을 신었는데, 어설픈 발바닥이 물집 잡혔다고 생 난리다.
어기적 거리면서 먼 길을 걸었다.
가는 길에 유독 많이 보이는 담배밭....
넓직한 담뱃잎을 보면서 애연가들은 모두 한 대씩 피운다. ^^
논마다 모내기는 이미 끝이 나 있었다.
뿌리는 내리지 못했지만 심은지 일주일은 지나 보였다.
모내기 할 장소에 가 보니, 모내기 체험을 위하여 논을 비워 놓은 논이었다.
모내기를 위하여 논에 들어가니, 고등학교 이후에 잊고 있었던 무논의 감촉이 고스란히 되살아 난다.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파고드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
줄모를 심잔다.
아이들 물 튀기는 것을 피하여 한적한 곳에서 10분 정도 솜씨를 보였다.
뒤에서 지켜보시던 마을 어르신이 칭찬을 늘어 놓으신다.
"어디서 농사 짓다 오신거여?"
"아, 네...제가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생활해서 모내시 많이 해봤습니다."
경욱이는 풍덩대며 몇 번 해보다 금새 나가고, 각시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새참
모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바닥에 큼지막한 물집 두 개가 영 아프다.
양말을 하나 사 신을 요량으로 동네분에게 여쭈니 동네에 가게가 아예 없다신다. ㅡ.ㅡ;
때 마침 행사보조를 위한 홍성군 YMCA 청년이 있어 스페어 타이어 하나만 빌려 달라고 하니, 웃는 얼굴로 구해 보겠단다.
숙소로 돌아오니 큼지막한 수박이 놓여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수박을 세 토막이나 먹었다.
경욱이....거의 환장하는 수준이다.
수박을 다 먹은 다음 샌드위치를 먹으라고 준다.
다들 점심을 배불리 먹은데다, 수박도 배불리 먹은터라 별 시답잖은 눈치다.
그러다 일행 중 한 명이 먹어보더니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한다.
그러자 가족당 한조각씩 들고 조금 맛을 보더니 금새 한두개씩 집어들어 동이 난다.
팔이 긴 나도 한개를 먹었는데....환상이다.
유기농 토마도 잼과  야채만 넣은 것인데.....
* 토마토가 아니냐고 따지지 마시라. 잼 통에 분명히 '토마도잼'이라고 적혀 있었다. ^^

공예활동
새참먹고 난 다음 공예활동을 하자고 모이라고 한다.
가 보니, 나무로 만든 새 집과 집 명판용 나무판과 아크릴 물감, 나무조각, 각종 씨앗  등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교풀도 함께....
붓으로 집 이름판을 멋지게 만들고 새집도 예쁘게 칠하고 꾸미라는 것이다.
나무토막으로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고정판도 만들라고 한다.
워낙 공예에 재주 없는 가족이다.
어영부영 대충대충 꾸적꾸적 만들고 다른 집을 기웃거리며 참견한다.
색칠을 멋지게 하는 집들이 꽤나 많다.
부럽............

자유시간
새참삼아 수박을 먹고 저녁시간까지 자유시간이란다.
각시와 동네 산책을 했다.
야트막한 산과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밭, 그리고 논....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도래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전망이 좋아보이는 무덤가에 자리 잡고 앉는다.

"회사 관두면 이곳에 와서 살까?"
"혼자 와서 살아..."
"왜?"
"심심하잖아..."

별로 도시스럽지도 않은 마산댁이 엄청 도시화되었나보다. ㅡ.ㅡ;

저녁시간
저녁은 삼겹살 파티이다.
남정네 5명이 죽어라 고기 굽고, 아줌마들은 구운 고기를 부지런히 챙겨가서는 새끼(?)들을 걷어 먹인다.
틈틈히 막걸리와 김치로 배와 목을 축이며 고기를 30분가량 구우니 수요가 줄어들고 남정네들도 한잔씩 나눈다.
배가 부르고 술이 얼큰하니 다들 편해진다.
아이들은 지들끼리 놀러가고, 남은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술판을 벌인다.
파리는 많은데 신가하게도 모기는 별로 없다.
유기농 지역이라서 모기유충이  천적들에게 잡아 먹히면서 생태 균형을 이룬 탓이리라.
9시쯤 되어 다시 화톳불이 지펴진다.
감자를 구워먹자는 아이디어 덕분이다.
물론, 그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다. ^^
불을 지핀 김에 생쑥을 뜯어다 올려서 모깃불 효과와 향기도 내어본다.
아줌마들은 다시 자기 새끼들 먹일 모이를 챙기느라 부지러히 감자를 호일에 싼다.
그렇게 30분 정도 불을 피다가 감자를 집어 넣고 기다린다.
기다리는 중에 흥이 많은 회사 상사 한 분이 노래를 하잔다.
그러면서 먼저 한 곡을 뽑는다.
흘러간 포크송...
연이어 누가 또 포크송을 한 곡 받는다.
내 차례가 되었다.
감자 다 익었다면서 꺼내 먹자고 한다. ^^
기가 막힌 맛이라면 갓 캔 감자를 구워 먹는 맛일 것이다.
그 많던 감자가 금새 없어진다.
호일까지 먹은 사람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벌써 10시 30분이 넘는다.

유기농의 전망과 대책
제목 참 근사하다. ^^
행사진행요원 2명, 주인장 1명, 인근에 유기농 하시는 서너분이 키조개의 힘줄(뭐라고 하던데 까먹었다)이 좀 있다고 기가 막힌 맛이라며 따로 가자고 하신다.
직장 상사 한 분과 같이 주인집에 들어가서 2차를 한다.
키조개 힘줄이 구워지고 술을 주고 받는다.
유기농의 현황, 유통구조, 미래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슬쩍 맞장구를 몇 번 쳐주고, 일반 시민의 유기농에 유통구조와 신뢰성에 대한 말을 몇마디 하자, 금새 해박한 사람으로 대우해 준다. ^^
전망은 힘들지만 장기적인 전망은 좋다고 마무리 한다. ^^
(사실 진지하고도 깊은 대화를 무려 2시간이나 나누었고 그 분위기는 무척이나 좋았다.)

숙면...
자러 오니, 다들 골아 떨어졌다.
한쪽에 자리를 깔았는데 베개가 너머 작고 납작하다.
둘어보니 경욱이가 큼지막한 베개를 베고 그날 사귄 또래들 사이에 자고 있다.
작은 베개를 주고 살그머니 빼앗아 오는데,....녀석이 벌떡 깬다.
'아빠 이거 너무 낮아서 잠 못자...'
'어..미안....^^'
하는 수 없이, 옆에 누운 다른집 아이 베개를 빼앗아서 잠을 청했다.


22일 아침
공기가 좋은 탓일까?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니...좀 늦잠을 잔 편이다.
세수를 하고 가볍게 주변을 산책하다 아침식사를 했다.
역시 많이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진짜 반찬이 맛나다.
점잖게 공부하겠다던 윤석이 녀석은 아침 먹은 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서 점잖게 전화를 받았다.


오디따기
스테인레스 함지박을 나눠주면서 오디와 함께 독초가 아닌 모든 풀을 뜯어 오라고 한다.
그것을 씻은 다음에 설탕을 넣어서 3개월간 재워뒀다 공복에 먹으면 변비는 물론 장기와 피부병, 혈당 등에 좋은 만병통치약이 생긴단다.
이름하여,.,."효소"라고 한다.
효소가 이름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말인 듯 하지만, 착한 학생은 따지지 않는 법....
경욱이와 각시를 데리고 오디밭에 가면서 이것 저것을 따서 담는다.
질경이, 두릅, 소나무 순, 쑥, 뽕잎, 오디....
오디(뽕 열매다)를 따러 가니, 엄청나게 주렁주렁 달렸다.
비닐을 깔아두고 나무에 올라가서 흔든 다음 모으니 금새 함지박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가득 따 모은 것을 들고 가니, 유기농설탕(그 동네에서는 모든 것이 유기농이다. 일회용 커피까지도...)을 1:1의 비율로 섞어서 재운다.
오디를 너무 많이 딴 우리는 오디를 한되 가량 따로 비닐에 담아두고 남은 것으로 "효소"를 담았다.


점심 그리고 출발

점심식사는..야채 버무린 것이 압권이었다.
오디 따서 효소 담기 전에 수박을 잘라다 먹은 탁자라서 그런지 유독 파리가 드글거린다.
멀치감치 떨어진 곳에 가니 파리가 좀 드물다.
식사를 하노라니 다른 가족이 이사를 온다. 파리 땜에 식사를 못하겠노리면서.....
"오시니까 파리도 다 따라 왔는데요????"
그  아주머니 민망해서 소식했으리라..
왼손을 휘휘 저으면서 식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버스를 타고 출발.
물론 버스타기 전에 공예품, 오디효소, 오디봉지, 감자망을 다 챙겼다.
각시는 벌써 걱정이다.
"이걸 들고 집에 우째 가노...."

도착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못된 시각이다.
다행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시는 분이 있어 꼽사리끼어 탔더니 집 앞까지 데려다 준다.
그분은 남편이 일이 있어 못오고 아주머니 혼자서 약간의 자폐증상이 있어 보이는 둘째 아들만 데리고 왔었다.
얼굴에 착한느낌이 줄줄 흐르는 그 분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행사 내내 웃으시더라.
얼마나 고와 보이든지....
그래서 옆에서 많이 도와 드렸다. ^^
집에 도착해서 씻고, 어쩌고 하니 저녁시간....
외식하기로 했으나 힘들어서 그냥 집에 있는 미역국과 식은 밥, 캐온 감자를 삶아서 저녁을 떼웠다.
가지고 온 오디는 쥬스로 만들기로 하고, 저녁 먹은 뒤 두시간 넘게 끓이고 철망으로 1차 거른 다음, 고운 천으로 2차로 거른다음 식혔다.
그렇게 두 시간동안 작업을 하여  1.5리터 생수병에 오리지널 오디쥬스 농축액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오디란 놈이 향이 밋밋하여선지...아이들은 영 먹지 않는다.
아직도 95%가 남아 있다.
그야말로 유기농 오디를 따서 유기농 설탕을 넣고 지하 암반수 생수로 직접 만든 100% 확실한 제품인데...
그것도 보통사람이 아닌 유기농 맑은날이 직접 제조한 것인데...

그렇게 공짜를 아주 재미나게 잘 즐겼다.

                                   2008. 6. 30  맑은날

 


카메라는 가지고 갔는데 배터리를 구할 수 없었다.

같이 가신 분이 찍어서 보내주신 사진이다. 


 

<아래 오른쪽에 있는 삐리한 얼굴이 경욱이 작품이다. 신라 토기에서 많이 보이는 얼굴이다.

  진행자가 단순함과 투박함의 극치로서 제일 멋지다고 극찬했다. 우리 가족이 듣는 곳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