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 하는 생각
길을 보면 걷고 싶다.
맑은날T
2008. 7. 11. 08:48
아침,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한 여름이지만 차가운 물을 싫어해서 미지근한 물에 씻고 나와서 간단한 식사를 한다.
그리고 5분 거리에 있는 전철역에 가서 전철을 탄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하늘을 한번 볼 수 없게 지하도로 이어진 빌딩 지하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트를 타면 사무실이다.
퇴근은 그 역순이다.
눈 비 맞을 일이나 추위나 무더위를 느낄 시간이 거의 없고 걸을 일이 없으니 다리 아플 시간도 없다.
혹시 우박을 맞지 않나 걱정하는데 그럴 일도 역시 없다.
전철에서는 무가지 신문을 한 부 다보면 시간이 딱 맞다.
퇴근 시간에도 역시 무가지가 기다라고 있다.
현대 문명은 산업화, 분업화, 기계화, 자동화 이런 말들로 요약된다.
이것들의 힘은 무섭고도 엄청나다.
나 이외의 다른 이 또는 다른 기계가 나의 대부분 생활을 대신 해주거나 살아가게 해 준다.
그것도 편.하.게....빠.르.게.....
재워주고, 깨워주고, 올려주고, 내려주고, 보내주고, 걸어주고, 막아주고, 시원하게 또는 덥게 해주고, 지어주고, 치료해 주고, 입혀주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나만의 할 일은 분명 있고 지금 하고 있지만,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화받고, 전화걸고, 고민하고, 꾸지람하고, 머리 좀 굴리고, 비위 좀 맞추고, 잘난 척 혹은 못난 척 좀 해주면 된다.
이런 작은 수고로 내가 받는 댓가가 너무나 엄청나서 황감할 때도 있기는 하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많다는 것은 아니다. 한턱 내라고 할까 겁난다. ㅡ.ㅡ;)
이러한 현대생활이 분명 편리하고 합리적이간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림을 느낄 때가 많고, 그럴 때면 이러한 편리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손으로 먹거리를 채취하고, 내 손으로 냐가 쓸 물건을 만들고, 내 손만 바라보며 먹거리를 기다리는 내 새끼들의 먹거리를 직접 채취하여 자랑스럽게 어깨에 둘러메고는 내가 지은 집으로 걸어가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는 말이다.
내 발로 흙을 디디며, 지구의 중력을 내 갸냘픈 근육으로 온전히 이겨내고 내 가고자 하는 사냥터로 걸어가고 싶단 말이다.
그런 본능에서인지 모른다.
내 손을 꼼지락거려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칠 때, 내 손으로 과일이나 열매나 곡식을 수확할 때, 내 발로 지구의 중력을 저항하며 어딘가로 이동할 때면 나는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집에 쉬는 날이면 늘 자전거나 고장난 의자, 문고리, 창틀을 붙들고 만지작 거리기를 좋아한다.
산에, 들에, 강에 종종 나간다.
산에 가면 늘 먹을 것과 먹지 못할 풀이 나누어지고, 열매가 있다.
내 머리 속에서는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먹을 것과 그러지 못할 것을 구별하고, 먹을 것의 적기가 언제인지를 판단하고, 나무에 안전하게 오르는 가지와 발을 안전하게 걸칠 가지를 금새 구별해 낸다.
작은 열매나 새순이라도 먹을 거리라도 있으면 꼭 따서 맛을 보고, 아이들에게도 먹여 보기도 한다.
아마도 수 년간 주말농장을 한 것도 이러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초 여름이면 아파트 단지에 먹을 거리가 참 많다.
앵두에서 시작하여, 버찌, 살구, 자두, 복숭아까지.....
동네를 걷다가 이런 것들이 보이면 꼭 한 두 개씩 따서 맛을 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한두개씩 따서 집으로 들고 간다.
각시는 농약이 어쩌고 난리를 하지만....그래도...그냥 두고 가기 아까운 걸 어쩌랴.
좋은 길을 보면 걷고 싶다.
차를 타고 가다가 좋은 길이 보이면 내려서라도 한 두 걸음은 걷고 싶어진다.
그 길의 감촉을 느끼고 싶은 탓일 것이다.
며칠 전 아주 고운 길을 봤다.
사람들 눈이 없으면 맨발로 걷고 싶은 그런 길이었다.
굵지도 잘지도 않은 모래가 깔린 흙길이었다.
보시라...
이 길을 보면 누구나 걷고 싶어질 것이다.
열매를 보면....따고 싶다.
고운 여인을 보면........그냥 좋다..^^;
진화가 덜 되었나?
2008. 7. 11 맑은날
어제 수확한 자두다.
깨물면 새콤한 맛이 입안에 금새 확 퍼질 듯하지?
생각만으로 입안에 침이 고이지 않는가?
성석제 작가의 말대로라면...
지금 귀 밑에 침이 홍수가 져서 흘러가는 소리가 "좔~좔~"들리는 중이다.
감히 매실 따위가 견줄 바가 아니다.
비얌다리
과연 "수확"이라는 표현이 타당하냐고.....
"수확"이 정당한 권리를 근거로 적기에 획득하는 것이라서 그게 아니라고 굳이 우기실 분이 계실까 염려된다.
현재 사용하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그리고 민법에 따른 소유권에 기하면 수확은 아니다.
우리단지도 아니고 옆에 단지에서 딴 것이니 영 할말이 없다.
결국 수확이 아니고 '노획' 내지 '불법채취'다. 형법상 절도죄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원래 천지만물에는 주인이 따로 없었고, 먼저 보는 놈이, 먼저 따는 놈이,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라고 한다면....수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식이라면 '무정부주의자'라고 처벌 받을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