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책갈피
가물거리던 기억..이어진 기억
맑은날T
2008. 7. 29. 08:26
이런 류의 글을 쓰는 것은 무척이나 망설여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흔하게 일어날 일이기에 적어본다.
그를 안 것은 먼저 인터넷을 통해서이고, 그를 안지는 7년은 족히 된다.
블로그 이전인 칼럼에서 글을 쓰면서 그와 소통을 하였고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느껴주고 공감하는 친구사이였다.
새로운 글을 적으면 댓글을 일일이 달지는 않아도 서로가 와서 읽어준 흔적을 느끼곤 했다.
다들 그런 분들이 있으시리라.
그냥 곁에 있는 것을 느끼고 그 느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한동안 흔적이 남지 않으면 궁금해하고....
그의 얼굴을 실제로 본 것은 5년전인 2003년 봄이었다.
그 때 많이 아팠다.
문병차 그가 일하고 생활하는 퇴촌에 찾아가서 잠시 본 적이 있다.
많이 아파했는데, 어쩌면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아니었나 짐작했다.
왜 있지 않는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아파하고 먼저 심각해지는 그런....
하여간 그 해 봄에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대화보다 더 많은 감정의 교류를 느끼면서
"이 분은 머지 않아 육신을 벗어버리겠구나..."하는 느낌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것은 처음 본 그 해인 2003년 여름이었다.
블로그에 글이 한동안 뜸했는데, 어느 토요일 불쓱 그가 생각나서 마침 할 일도 없고 해서
차를 몰아서 퇴촌으로 갔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의 작업실 겸 숙소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그의 성품대로 가지런히 정돈된 가재도구만 보이고 문도 열려 있었다.
그를 집안에서 얼쩡이며 기다리는데 옆집에 사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물어보길래 주인을 잠시 만나러 왔는데 어디 갔는지 아시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 양반 하시는 말이....
S의료원 영안실로 가보라고.....어제 돌아가셨다고.....
그길로 온 길을 되짚어 병원으로 가서 그가 이승과의 이별시간을 두어시간 혼자 했다.
아니 둘이 했다.
빈소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아무 말없이 두어시간 혼자 앉아 있다가,
그의 영정에 한번 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재작년 여름이었나??
지난 글을 뒤적이다..우연히 남아 있던 그의 댓글을 보고 그 글을 눌렀더니
그의 방으로 순간이동했다.
그는 갔어도 그 방의 글은 4년 전 여름에서 멈춰 있었고,
그 방에 오던 손님들의 댓글만 가끔 안부를 묻다가 그것도 3년 전부터 끊어진 상태였다.
그의 방에서 한동안 지난 글을 보다가 나왔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그는 갔어도 그의 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마지막을 못 본 사람이라면 주인장이 오랫동안 글을 쉬거나 버려진 글방처럼......
작년에 한번 더 그의 방에 갔을 때도 그의 방은 재작년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지난 글을 찾다가 그의 닉네임을 발견하고 다시 그의 방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런..데...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 앞을 뒤적이니 올 여름..그러니까 4년전 그가 글을 중단한 장마 시작인 6월 중순부터
새 글이 등록되고 그 뒤로 서너개의 글이 더 올라와 있었다.
물론 댓글이나 방문록에는 아무도 글을 달지 않았다.
새로 올라온 글은 담담한 관찰자적 표현방법이나, 다소 무거운 글의 톤이나,
간략하면서 함축적인 다중의미를 가진 문체 등 글에서 묻어나는 '글의 지문' 모두가
그의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의 글 끝에 적혀 있는 글 작성일을 보고는 그만 그의 방을 나오고 말았다.
"2003년 7월 22일 大暑에...힘겹게 몇 자 쓰다."
2007. 7. 29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