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칼의 노래 칼>

맑은날T 2002. 4. 12. 19:58


"허무를 담기 위해서 더 큰 허무가 필요했다."



잘 읽어지는 책 한 권을 읽었다.

아니 잠시 잠시 생각을 추스르고, 또 책 속의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려내면서 읽어야 했기에

잘 읽어지는 책이라기 보다는 안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의심을 가져온 생각도 지은이의 상상으로 정리되었다.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이 이순신의 마지막 몇 년을 그린 소설, "칼의 노래"가 그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휴일 TV에 방송되는 고등학생들의 퀴즈 프로그램인 '골든벨을 울려라'

를 보면서였다.

맨 마지막 쉰 번째 문제가 이 책에 나오는 장수의 이름을 맞히는 문제였는데, 그 학생은 정답을

추론해서 정답을 말하고 골든벨을 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출제자가 이 책을 소개할 때에 '우리 역사상의 장수에 대한 전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의 소설'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글을 다 읽고 난 다음의 느낌은 지금까지의 '나으리'에 대한 전기소설이 현대적 시각과

현대적 상황에서 꾸며진 것이고, 김훈의 소설이 당대상황에서, 나으리 당신의 내면에서 그린

것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이순신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결례인 것 같아서, '나으리'로 칭하기로 한다. 이유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사실 이 나라 사람들이 가장 익히 알고 있는 역사상의 장수는 바로 나으리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의 일대기가 실렸고, 아직도인지는 모르나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학교마다 나으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아직도 세종로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메가패스 장군'

이라고 오해되기도 하나 분명히 나으리의 동상이 경복궁을 지키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이 흔히 나으리를 접할 수 있기에 오히려 나으리를 잘 모른다.

너무 흔히 마주치거나 너무 어릴 적에 새겨진 기억 혹은 생각은 절대로 잊혀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사실에 대하여 깊이 알 수 없거나 특별함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입학하기 전부터 알고 있고 전 국민이 애국가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박자와 음정을 틀리지 않고 못 부른 사람이 없을 정도인 익히 알려진 노래가 '떴다 떴다 비행기~'

라는 동요이다.

우리는 그 노래는 다 안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그 곡을 쓴 사람이 모짜르트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길거리 가로수로 날마다 마주치는 나무중의 하나가 느티나무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 나무가 눈에 익어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그 나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뿐더러

그 이름을 아는 데에는 관심도 없다가 어느 수목원에 가서 하얀 명찰을 보고서야 '아하~'하고

바보 도 트는 소리를 한번하고서는 알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잘 안다고 지나치는 것은 오히려 잘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일 수 있고, 바로 우리가

나으리에 대하여, 그리고 또 다른 우리 역사상의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면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이 글은 우리가 없이는 한시라도 살 수 없는 물과 공기에 대하여 눈 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물",

"공기"라는 하얀명찰을 내미는 것처럼 나으리를 우리 앞에 세워놓는다.


우리가 아는 나으리는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젊은 시절에 무과에 응시하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졌으나 버드나무 가지와 껍질로 응급처치를 하고 말을 끝까지 달린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해안 일대에서 거북선으로 왜군과 싸워서 이겼으며, 전쟁 중에

모함을 받아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백의종군(白衣從軍)을 하였고, 다시 수군장수로서 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서 돌아가신 정도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이러한 내용은 의미를 가질 정도로 왜곡되거나 과장, 축소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달맞이 꽃에 대하여 들어보는 것도 달맞이꽃을 아는 것이요, 달맞이꽃을 보는 것도 아는 것이다.

달맞이꽃이 달밤에 "뾱"하는 소리를 내면서 피는 것을 직접 보고 그 뿌리를 씹어보는 것도 아는

것이나 그 알음알이는 모두 다른 것이다.

내 어릴 적부터 품어온 회의(懷疑)중 하나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느닷없는 모함을 받아서

문초를 받고 백의종군한 나으리가 다시 왜군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두면서 충성을

다 바칠수 있는 인간됨에 대한 것이고, 내 어릴적부터 품어온 안타까움은 하필이면 마지막

전투에서 왜 돌아가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전투에서의 패배나 군무이탈 등과 같이 이해는 안되더라도 억지수긍은 할 수 있는 사유도 아닌

단순한 모함과 그 모함에 속아넘어가는 조정과 임금의 처벌, 그리고 백의종군과 백의종군 길에

모친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권률의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하였다가 장수로서 우직하게 전투를 수행하고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러한 줄거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뱁새가 봉황의 뜻을 짐작이야 할 수 있겠냐만, 어찌되었건 나으리도 인간이라고 보면

백의종군 이후의 상황전개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우직한 충성이다.


나으리가 쓴 난중일기에서 모친상을 맞는 때의 한 구절이다.

"영구를 상여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나는 기진맥진했다. 남쪽 길이 바쁘니, 다만 부르짖으며 울었다. 어서 죽기를 바랐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회의가 풀리고 노량해전에서 나으리의 죽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나으리가 모함에서 풀려서 백의종군을 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이

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책에서의 나으리는 영웅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이다.

전제군주시대에서는 피할 수 없었던 앞서간 자 혹은 뛰어난 자의 가혹한 운명을 짊어지고,

그리고 그 운명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허무했던 인간이었다가 마지막 전투에서 죽음으로서 위대한

인물이 된다.

나으리가 마지막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그렇지 않던 나으리는 분명 영웅이지만, 우리가

영웅으로 나으리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임금이 아닌 적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나으리가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더라면, 임금에 의하여 죽음을 받았을 것이고 그러면

나으리에 대한 기록은 우리들이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내 관통하는 것은 나으리의 끊임없는 思惟와 虛無이다.

그것은 苦惱가 아닌 思惟이며, 絶望이 아닌 虛無이다.


이하는 글의 부분들이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 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장계를 새로 쓰면서 나는 이 두 통의 장계가 어느 날 임금을 기만한 죄로 나를 죽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수를 서두르는 적정(敵情)이 다급했으므로, 임금이 나를 죽이게 되는 날은 내가 바다에서 적의 전체를 맞은 이후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미 임금은 나를 다시 죽일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저녁때 나는 숙사를 나와 갯가 염전으로 갔다. 종사관과 당번군관을 물리치고 나는 혼자서 갔다. 낡은 소금창고들이 노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 …
- 아들 면이 명량해전의 패배에 대한 왜군의 보복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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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리의 칼이다.
선조 27년(1594) 4월에 한산도 진중에서 당시 칼을 만드는 대표적인 장인으로 이름난 태귀연과 이무생이 만든 것으로서 칼에는 각각 장군의 친필 검명(劍銘)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2002. 4. 14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