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에 가고 싶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 이원규님의 시 全文 - 조선시대의 꼿꼿한 선비 남명 조식선생이 지리산 밑에서 산천재를 짓고 머물면서 읊은 시가 하나 있습니다. 천근의 저 큰 종을 보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다네. 두류산(지리산)이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하늘이 울지라도 오히려 울리지 않는다네. [ 請看千石鍾 / 非大打無聲 / 爭似頭流山 / 天鳴猶不鳴 ] 하늘이 울어도 울지지 않은 크고도 장엄한 산이 지리산이라고 합니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장엄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가 못하다고 합니다. 욕심같아서는 수려함과 장중함을 다 가지고 싶겠지만, 사람이든 산이든 모든 것을 가질 수야 없겠지요. 그래서 수려함과 장중함을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신영복 선생님처럼 주저함없이 장중함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대! 행여 견디기 힘드시다면 지리산에 가지 않겠습니까?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레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 하면 자살을 꿈꾸는 임아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