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오래된 문살같은 친구

맑은날T 2009. 7. 6. 09:21

 

지난 주말 대구에 다녀왔다.

고향친구의 모임이 있어서이다.

일년에 두번 정기적으로 모이고, 특별한 경조사가 있으면 따로 모인다.

고향친구는 모두 11명인데, 두명은 외국에 나가 있어서 참석을 못하고 9명만 모이고 있다.

 

대구로 따로 친구모임을 위해서 가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약속을 정해놓고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안고 기다렸다.

팍팍한 도시생활, 이해타산으로만 형성되는 사회생활에서 20여년동안, 많이 지쳐가는 탓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오해를 사서 내게 불리하게 돌아오지 않을까?, 상대에게 도움을 되는 말일 듯 하지만 결례는 아닐까?

이런 저런 계산과 수지를 따지는 인간관계...그것이 도시생활, 사화생활이리라.

물론 고향친구에게도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의식과 예절과 이해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대부분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설령 약간의 다툼이나 앙금이 있더라고 금새 잊혀진다.

따라서 오래 된 친구일수록 그런 거추장스런 옷가지를 모두 벗어던질 수 있어 좋다.

그렇게 벗은 몸으로 부딪히는 사람관계가 그리울 때, 고향친구, 오래된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들을 만나봐야 특별한 일은 별로 없다.

사는 이야기, 어린 시절의 반추, 아이들 이야기, 술, 악의없는 욕설, 고스톱 게임.....

 

토요일 저녁 동대구역에 친구가 고향에 들렀다가 마중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동에서, 부산에서, 창원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횟집에서 모임을 갖고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떤다.

2차로 노래방에 들렀다가 정해놓은 숙소에서 포커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이튿날 아침, 해장을 하면서 회비를 내고 회칙을 개정하고 그렇게 모임을 마쳤다.

 

올라오는 길은 매우 피곤했지만, 가슴은 후련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 남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내 입으로  익혔지만, 고향을 떠나서 생활하면서 내 머리가 잊어버렸던 잊혀졌던 고향의 사투리가 그것이다.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 있던 고향의 지명들이 그것이다.

유난히 순경음이 많은 청도사투리라서 적을 수도 없는 말들도 많다.

"부웅디미,중태기, 참골, 허무골, 부채디미, 노지람쟁이....."

 

사람이 나이를 들어가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친구를 많이 만나라는 말일 것이다.

어제 밤, 멀리서 와서 고맙다고, 잘 올라갔는지를 물어보는 대구에 사는 친구의 전화는 살아가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 친구는 오래된 문살과 같다.

- 늘 보아와서 신기할 것 하나 없는, 그러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

- 새로움을 주지 않지만, 생경하지 않은....

- 손톱 밑을 파고들던 까시래기는 바람에 깎이고, 햇빛에 바스라지고, 비에 씻겨져서...

   뭉툭해지고 매끄러워져서 거슬림이 없는 오래된 문살.........

 

<사진 - 내소사 대웅전 문살>

 

                                                                                                                                  2009. 7. 6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