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청도를 다녀왔습니다.

맑은날T 2009. 11. 23. 10:17

 

어제,

시제가 있어서 고향 청도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스무살이 넘을 때까지 자라던 곳입니다.

일요일 새벽 5시에 합정동에 계시는 둘째 형님 댁에 가서 둘째형님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새벽 4시반, 일어나서 대충 세수만 하고 주차장에 차를 가지러 갔는데 일렬주차한 차들이 있어 차를 밀어야 했습니다. 워낙 주차공간이 협소한지라 일렬주차 차간 간격은 겨우 수십센티미터,,,

예닐곱대의 차를 밀어서야 겨우 공간이 생기나 했는데, 제 차 앞에 있는 차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확인하니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워 놓은 것....

이리 저리 궁리를 해도 그 차를 빼지 않고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잠시 고민을 해봅니다.

새벽 4시30분, 그 차 주인은 그 전날 늦게 들어왔을 것이 분명하고 피곤한 몸으로 사이드를 쭈욱 당기고 올라간 것이겠지요.

- 에휴, 그래 보시하는 셈 치자....

전화하지 않고 차 주인에게 잠보시를 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어렵게 잡아탔는데, 그 양반 생초보입니다.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면서 형님댁에 도착하니 형님이 차를 가지고 나와 계십니다.

집에 들리지 않고 곧장 출발합니다.

강변북로, 한남대교, 신갈까지 가서 영동고속으로 갈아탔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용인휴게소에 들러서 기름만 잠시 넣더니 운전대를 넘깁니다.

큰 차라서 운전하기가 불편하려니 생각했는데, 아주 편안하고 차는 싱싱 잘나갑니다.

시속 180Km를 밟아도 차가 요동치지 않습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갈아타서 형님이랑 수다를 떨면서 내쳐 달리다보니 김천에서 경부로 갈아타야 하는데 기냥 지나쳤습니다.

현풍까지 내려가서 다시 올라왔다가 경산IC에서 빠져서 국도를 달렸습니다.

고향에 도착하니 9시10분....과속카메라에 몇 개쯤 찍혔을지 모르지만, 형님차니까.....ㅋㅋ

 

부산에서 큰형님과 동생이 올라왔습니다.

삼촌 한 분, 숙모 두 분, 사촌 한 분, 당숙모 두 분, 육촌 형님 몇 분...재종당숙부 몇 분...스무명 가량이 다 도착했습니다.

동태국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시제를 지냅니다.

집안 일에는 큰 형님이 늘 앞장서서 하십니다.

종손도 아닌데 하면서 각시와 형수들은 은근히 불만이지만, 큰 형님은 그것을 큰 긍지로 여기십니다. ㅡ.ㅡ;

이번에는 여러 산에 떨어져 있는 조상님들의 산소 위치를 위성사진으로 다운받고 표기를 해서 컬러 출력한 위성지도를 한 장씩 돌립니다.

어르신들은 신기하기만 합니다.

 - 아이고 얄굿데이, 이런 사진을 우예 찍었노? 어데 올라가서 찍었노?   뱅기 빌맀나?

 - 동생이 구들삐에 시분은 넘기 올랐고, 뱅기 두대를 빌맀을낍니더.  김정호 할아버지 후손아입니꺼..

 

둘째형의 언구럭에 어르신들은 진짜인 줄 압니다. 

- 이번 종친회비는 뱅기 빌린 값을 청구할낀데, 집안마다 3백만원씩만 내면 됩니더.

 

동생의 진지한 농담에 어르신들 기겁을 하십니다.

 

시제를 모시고 가까운 조상을 찾아뵈러 산소로 향했습니다.

허무골, 불무골, 동창, 박곡리로 나뉘어 찾아뵜습니다.

큰형님과 재종당숙부와 함께 불무골에 계신 5대 조부모 산소로 향했습니다.

통정대부를 지내신 어른이십니다.

예전에 계단식 논이었던 곳이 모두 밭으로 바뀌어 대추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고, 좁은 곳은 아예 잡풀이 우거져 논이었던 흔적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골짜기는 그간의 빗물이 흘러내리면서 더 깊어졌고, 산은 골이 깊어진만큼 높아져 있었습니다.

나무들의 식생도 바뀌어서 어릴 적에 못 보던 층층나무, 굴피나무 등속이 눈에 자주 띕니다.

예전에 지게짐 지고 다니던 길은 모두 풀에 묻히고 1년에 한 두번 벌초와 성묘를 위해 다니던 좁은 길만 겨우 남아있고, 그나마도 빨리 자라는 초목으로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산소에서 내려오던 길에 부처손이 무더기로 자라는 바위를 발견했습니다.

항암효과가 있다는 바위풀인데, 어린시절에도 귀했던 것이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무더기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머리 속에 얼른 입력해두었습니다.

언젠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채취하러 와야지....

 

당숙모님 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골에서 어른 두명이 걸어옵니다.

인사를 얼핏하면서 지나가길래 엉겁결에 인사는 받았는데 정확하게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는지 장화를 신고 삽 한자루, 소쿠리 두어개를 가지고 갑니다.

따라가서 알아보니 중학교 1년 후배입니다.

원래 말이 없었던 친구였는데, 수염도 깎지않고 보니, 한참 어른인 줄 알았습니다.

안부를 묻는 사이에 미꾸라지를 잡는데 금세 몇 그릇을 잡아냅니다.

이 정보도 입력해 둡니다.

'허무골과 불무골 사이 개천에 월동하는 미꾸라지가 많다'

 

점심무렵에 당숙모님 댁에 가니, 다들 모였습니다.

반주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왁자하니 마치고, 각자 직계조상을 찾아뵙기로하고 다시 헤어졌습니다.

형님 두 분과 동생, 그리고 사촌동생이 함께 아버님 산소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차안에서 미꾸라지 잡는 일을 이야기하니 둘째형이 묻습니다.

 - 갸들이 잡던 미꾸라지 미끌미끌하고 등은 거무스럼하고 배는 노랗지 않더냐?

 - 예, 그런데요?

 - 주둥이에 메기처럼 작은 수염 한가닥씩 있지 않더냐?

 - 예, 그렇지요.

 - 그럼 그 미꾸라지 우리꺼네. 5년 전에 못밑 무논에 미꾸라지 두어사발 부어 놓았는데 그 미꾸라지야.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버님 산소에 가서 술을 올리고 다 함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형님들과 산소단장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다시 당숙모님 댁에 돌아오니, 다들 모였습니다.

종친회비를 모두 정산하고 내년 일정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담소를 나누다보니 오후 3시가 넘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우리 형제들은 우리집에 가봤습니다.

마당에는 클로버가 소복히 자라고 있었는데, 동생이 네잎 클로버를 찾아냅니다.

같이 쭈그리고 살펴보니 네잎 클로버가 많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섯잎 클로버도 보입니다.

한웅큼 뜯어가니, 당숙모, 사촌형수, 육촌형수들이 신기하다면서 몇 개씩 달라기에 나눠주었습니다.

나눠드리면서 한 마디를 슬쩍 곁들입니다.

- 우리 집터가 좋아서 행운의 네잎 클로버가 많이 자라네요.

그 말을 들은 당숙모, 사촌형수, 육촌형수들이 앞 다퉈서 우리집으로 달려가서 클로버를 뒤집니다. ^^

 

3시반을 넘어서 숙모님과 당숙모님이 챙겨주시는 제사음식, 배추, 대추, 감 등속을 받아서 3시30분에 출발을 했습니다.

오는 길을 많이 막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30분이 되었습니다.

 

2009. 11. 23  맑은날

 

  

<가을 어느날... 필자>                                          <부처손 모습>

 

 

- 꼬리

산천은 의구하지도 않았고 인걸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습니다.

뛰놀던 동산과 길과 나무들은 모두 작아지고 늙어지고 쇠잔해졌습니다.

감나무에는 수확못한 감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까치밥의 여유로움이 아니라, 지치고 힘든 농촌의 늙음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동네에는 타지에서 온 두 가구가 새로 자리를 잡았는데, 인근의 논과 밭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인사를 걸었지만 생뚱하니 무표정한 반응에 오히려 타지사람 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에게 고향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지만, 그들이 제 기억을 가로채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꼬리 2

위 <가을 어느날..필자>라는 사진은 고향여친 必子 사진이 아니고 제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