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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색하다..(2)

맑은날T 2010. 5. 4. 09:30

 

복학한 다음이었으니 나이도 꽤나 먹은 나이였다.

복학 후 학교 인근에서 방 하나를 구해서 혼자 생활하였는데, 승용차 한 대가 여유있게 지날 수 있는 도로변 2층방이고 남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면하고 있는 따스한 방이었다.

친구인 그는 키가 183cm의 큰 키로 허우대 멀쩡하고,

운동은 죽기로 싫어했지만 타고난 강골로 신체 또한 건강하며,

풍부한 유머와 어른에 대한 존경심과 스승에 대한 경외심과 아래사람에 대한 위엄을 갖춘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었다.

다만 호감을 와락 불러일으키기는 힘든 외모에다 시골에서 장남으로 자란 탓인지 여학생을 상대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자면 단점이었다.

 

그 친구는 평소  학과 소도서관이나 자취방에서 공부를 하곤 했는데,  대부분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해 1학기 중간고사기간이 다가왔다.

그때 그는 갑자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겠다면서 몇 시에 가면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길래 6시에 문을 여는데 5시 40분 이전에 가면 2층 2열람실을 잡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6시 30분까지 오면 다른 열람실은 입실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다음날부터 그 친구를 2층 소열람실에서 볼 수 있었는데 3일 정도 지나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가벼운 산책 겸 그 친구의 방에 가보니 창문을 활짝 열어 5월의 싱그런 바람을 맞아들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에는 왜 오지 않는지에 대하여 물어보니 그 이유가 참 사내답고 젊은이다웠다.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면 여학생들이 왔다갔다 하거나 옆자리 또는 앞자리에 여학생이 앉거나 하는데, 그때마다 화장품 냄새 또는 향수가 코로 확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게 왜 공부에 방해되는지를 따져 묻자 잠시 망설이더니 부연설명을 해 준다.

이유인즉슨, 화장품 냄새가 코를 확 자극하면 그 자극이 코에서 머물고 말아야하는데 그 친구는 그 자극이 바로 아랫도리로 내려가 버린단다. 그러면 뜬금없는 반란을 억제할 방법이 도저히 없어서 혼자 은밀한 곳을 찾아서 은밀하게 반란을 제압하고 나서야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 드는 의문을 의문문으로 표현하여 물었다.

 

"하루에 한번 쯤 그럴 수 있고 다들 그리 사는데, 반란을 제압하고 다시 열공을 하면 되잖아?"

 

"임마, 한번이면 나도 좋지, 하루에 너댓번씩 그것도 3일 연속으로 해봐라.  대낮에 별이 둥둥 떠다니는데 공부가 되냐."

 

"아하~~~~~~"

 

더 이상 도서관 이탈에 대한 준열한 나무람과 추상같은 추궁을 접어두고 도서관으로 올라와서 열공하였다.

은밀한 곳을 찾지 않고서도 공부는 잘 되었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나갈 무렵 비교적 가벼운 한 과목만 남겨놓은 시간이었다.

그 친구가 학교에 보이지 않아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생각으로 그 친구의 방으로 놀러 갔다.

그런데 길에서 올려보니 5월의 싱그런 바람을 맞아들이는 친구의 창이 굳게 닫혀있기에 출타했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 발길을 돌릴까하다가 창 밖에서 친구의 이름을 부르니 창문이 쪼금 열리더니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하고는 다시 창문을 서둘러 닫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여기면서 방에 들어서니, 선풍기를 돌리면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벌써 삼복더위였다.

창문을 열려고 하니 얼른 손을 잡으면서 만류하였다.

다시 치드는 궁금증에 오뉴월에 학질 걸린 놈도 아니면서 창문을 닫아걸고 선풍기 돌리는 이유를 준열히 추궁하니 다시 그 이유를 실토하였다.

 

처음에 방에 돌아와서 창 문을 열어놓고 공부하니 도서관보다 훨씬 건강에 도움이 되고 또한 공부도 잘 되더란다.

다만 침대가 바로 옆에 있어서 눕고 싶고 자고 싶은 유혹이 조금 힘들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두루마리 화장지나 계란을 파는 아저씨의 확성기가 약간 성기시기만 했단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창문을 열고 공부하다 고개만 들면 창 밖으로 건너편 단층 주택이 보이는데, 그 주택에는 30대 후반에서 40초반으로 보이는 전업주부가 보이더란다.

첨에는 대수롭잖게 봤는데 이틀정도 지나다 보니, 아침에 신랑이 출근하면 그 아줌마는 집안을 치우고 거실 쇼파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곤 한다는 것과 아줌마는 대부분 긴 치마를 입고 생활한다는 것, 그리고 커피를 마실 때면 가끔 다리를 꼬거나 아니면 편하게 앉아 있는데, 치마가 슬쩍 올라가 있어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고, 베란다 큰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있기는 해도 서로 눈 빛을 몇 번이나 부딪히곤 했으며, 그 아줌마는 도발적(?)으로 눈 빛을 보내면서 눈길을 먼저 피하지도 않더란 것이 관찰되었다고 했다.

사흘째 되는 날도, 아침을 먹고 창문을 열고 공부하다보니 아줌마가 청소를 마친 다음 쇼파에 커피를 들고 앉는 것이 보였고, 친구가 쳐다보니 아줌마는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커피를 홀짝이면서 다리를 슬쩍 꼬기까지 하면서 허벅지를 더욱 드러내더란 것이었다.

그때 친구의 판단에는  아줌마의 눈빛은 유혹하고, 도발하며, 관능적이고, 갈구하는, 갈망하는 것이 분명하더란다.

그때부터 그 친구는 심하게 고민에 빠졌는데, 갑자기 머리 속으로 스쳐가는 영화들과 소설들이 많더란다.

차탈래부인, 벨을 여러번 누르는 우편배달부, 뽕 시리즈, 벌레먹은 장미, 애마부인 시리즈......

그런 영화와 소설에 대한 마음 속 스크린이 끝나자 다시 엄습하는 것은 죄책감과 책임감이었단다.

저 가련한 부인의 애타는 마음을 이렇게 며칠씩이나 무시하고 있었다는 죄책감과 신체 심하게 건강한 젊은이로서의 책임감이 고개를 들더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열망과 열정에 휩싸여 후다닥 샤워를 하고 생전에 바르지 않던 스킨로션을 바르고 가진 옷 중에 가장 깨끗한 츄리닝을 입고 방을 나섰단다.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과 열망을 안고 방을 나서서 길 건너편의 대문에 이르러서 벨을 지그시 두 번 눌렀단다.

그때부터 그 친구의 시나리오와 약간 다른 스토리가 진행되었는데 이하 대화체로 풀어본다.

 

띵~똥~~  띵~똥~~  (생전에 들은 초인종 소리중 가장 큰 소리였단다.)

 

- '아줌마가 얇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문을 열어주겠지...'

 

"누구세요?"  (꽤나 맑은 목소리였단다..)

 

"........."

 

- '어.. 대문부터 열어야 하는데...'

 

"누구세요?"

 

"...........요오~"

 

"저라니요? 누구세요?"

 

"......................앞 집 2층에 사는 학생데요오..."

 

"그런데.. 무슨 일인데요??"

 

"......................."

 

조용히 뒤돌아서서

츄리닝바람으로 처음버른 스킨냄새를 오월의 찬란한 바람 속에 퍼뜨리면서 조용히 방으로 돌아온 친구....

그때부터 창문을 닫게 되었단다.

그때는 그나마 5월이었다.

그 친구는 초겨울까지 창문 한번 열지 않고 그 방에서 생활했다.

까무잡잡하던 그 친구의 얼굴은 하얘졌다. 

 

                                                                                                  2010. 5. 4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