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창과 산행하다<용지봉산행>
4월 3일 아침.
청명, 한식을 며칠 앞둔 날씨치고는 많이 쌀쌀했다.
새벽에 잠깐 비라도 내렸나보다.
도로는 젖어 있었고 아직도 가는 이슬비가 바람에 날린다.
MBC사거리에는 꽃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써 벚꽃이 망울을 터뜨렸다.
찬비에 오소소 떨고 있는 벚꽃 길을 달려 그랜드 호텔로 향했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들과 산행할 수 있는 날이다.
돌이켜 보면 참 오래 되었다.
1981년, 졸업이후 처음보니 30년 만에 강산이 세번 바뀌고 처음 만나는 친구들인 셈이다.
고등학교는 대구로 유학을, 대학은 부산으로, 직장은 또 서울로.....
맘 먹고 친구들을 찾자면 못할 일도 아니었지만 사는 일에 바쁘다는 핑게로, 또는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라며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다 금년 1월에 대구로 이동근무를 하게 되면서 중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많이 참석하리라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늘 산행소식을 듣고 함께 할 생각을 하였다.
그랜드 호텔 앞에서 재원이를 태우고 황금네거리 인근으로 이사한 진용이를 태운 다음 약속 장소인 진밭골로 달렸다.
9시까지 가야하는데 조금 늦었다.
가는 길을 서두른다.
친구들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을까, 친구들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친구들은 누가 나올까, 몇이나 올까....
진밭골 입구에 도착하니 아무도 안보인다.
비온다고 아무도 오지 않았나?
잠시 두리번거리니 멀리서 빨간 산행자켓을 입은 사람이 보인다.
진용이와 재원이가 다가가면서 영준이라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슴푸레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순해뵈던 학두도 그대로이고 애늙은이같던 정환이도 그대로이다.
까칠하던 이현이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활발하던 영준이와 동식이는 아직도 여전히 활기차다.
웃음이 순하던 현교의 미소도 부드러운 미소로 반겨준다.
당호친구 정숙이도 푸근한 웃음으로 반긴다.
정숙이는 작년 국민학교 친구모임에서 본 적이 있어 한결 반가웠다.
당시 최고 미인이던 예숙희와 이은희도 고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반겨준다.
살짝 긴장했던 마음은 금새 누그러진다.
오랜 친구가 편하단 말을 절감해본다.
9시30분까지 친구들을 기다렸다가 산행을 시작한다.
날씨는 흐리지만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을 듯 하다.
이른 아침에 내린 비로 길은 촉촉히 젖어 걷기에 편하다.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산을 오르다 땀이 들줄기에 살짝 베어날 즈음 한숨 돌리며 다리쉼을 가진다.
떡, 방울토마토, 오렌지, 닭강정, 소주... 요깃거리를 나누다 다시 길을 오른다.
산을 장악한 신갈나무는 아직 새싹을 틔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지만 생강나무는 봄이 왔음을 알리며 샛노란 꽃을 피워내고 양지바른 곳에선 성급한 참꽃이 붉은 불을 피우고 있었다.
산을 좀 더 오르는데 동식이가 흰 꽃을 하나 발견했다며 기다려 준다.
걸음을 재촉하여 올라보니 흰노루귀가 모듬으로 꽃을 피워 올렸다.
그렇잖아도 올 해 봄 야생화를 보지 못한 터라 두리번거리던차라 반가움은 두배였다.
서둘러 사진에 담으니 학두가 주변에서 많이 찾아낸다.
서울에도 벌써 꽃을 피웠는데 대구에서 이제야 꽃을.피워내다니...
좀 더 올라가다 동식이가 분홍노루귀도 찾아낸다.
역시 시골출신이라선지 산에서의 눈썰미는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에 담고 고개를 펴니 산허리가 보인다.
산등성이에 올라보니 눈 앞에 용지봉이 보인다.
앞서가던 친구들은 벌써 정상에 올라서 빨리 오라는 친구의 손짓에 서둘러 정상에 올라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용지봉에서 감태봉으로 가는 길은 걷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부드러워진 황톳길이 빗기를 머금어 촉촉하다.
길 주변에는 풋풋하고도 싱그러운 봄 향기가 스물스물 피어올라 다들 코를 벌렁이며 봄 내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길을 재촉한다.
감태봉을 조금 못 미쳐 왼쪽길로 꺽어들어 조금 더 하산을 하니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순한 백구 두 마리가 마을 초입에서 낯선 일행을 반기는 진밭마을이다.
미리 예약하였던 식당으로 들어서니 때 아닌 나무때는 커다란 난로가 따스하게 피어 있었다.
점심메뉴는 백숙이다.
백숙이 나오기 전에 차려놓은 배추겉절이에 다들 젓가락질이 바쁘다.
.
싱그럽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감칠맛, 향그럽고 상큼한 봄맛이다.
쑥국의 그윽한 맛과는 또 다른 봄 맛이다.
연이어 나온 백숙을 화기애애한 수다와 왁자지껄한 웃음으로 버무려 포식을 한다.
식사를 마칠 무렵 매전중8회 대경동창회의 회장 영준이와 총무 은희가 회장직과 총무직을 호동이와 정숙이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하고, 은희가 결산장부를 정숙이에게 넘기고 연이어 전날 숙취로 늦게 도착한 호동이의 취임사를 듣고 족구를 하러 나갔다.
숙희는 요즘 탁구를 배운다면서 남자동창의 무릎을 차례로 꿀린다.
족구장에서는 동산국민학교출신과 관하국민학교출신으로 나누어 게임을 하잔다.
우리팀은 나, 진용이, 재원이, 호동이이고 상대는 인교, 영준이, 동식이, 이현이이다.
거의 정상인과 장애인과의 승부이다.
그런데 삼판양승의 게임에서 2:1로 이겼다.
여동창의 불같은 응원 덕분이다.
그녀들은 역시나 착한 모성애를 가진 이 땅의 착한 누이들다.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더 사랑을 주는 모성본능이 동산초등학교 장애선수에게 끌렸음이리라. ^^;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서 동동주와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타기 직전에 제기차기를 하다가 식당주인의 제안으로 닭싸움을 하게 되었다.
아...옛날이여~~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힘든 게임이었는데 진용이의 무쇠다리와 은희의 질긴 끈기가 돋보였다.
아...은희를 향해 돌진하는 진용이의 늠름한 모습...ㅋㅋ
조금의 아쉬움은 추억의 농도를 더 진하게 만드는 법..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모임에 더 많이 모여서 더 재미있게 놀자고 다짐하며 헤어졌다.
참 좋은 친구들아.
수십년 만에 처음보는 친구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허물없이 받아주고, 스스럼없이 안아주어 정말 고마워~
나도 너희들 모두를 많이 사랑한다~~ ^^
2011. 4. 4 남양의 김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