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구사일생

맑은날T 2011. 7. 14. 19:28

 

들어가며

구사일생(九死一生)

열에 아홉은 죽을 위험한 상황을 말한다.

죽을 확률이 90%라면 엔간한 전투보다 위험한 상황을 말한다.

 

지난 월요일 구사일생보다 조금 더 위험한 상황을 모면했다.

그 경험을 알림으로서 이 방에 오시는 분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유사한 상황에서 위기대처 방법을 몇 가지 알려드림으로써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맘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한다.

 

 

출발

포항에서 출발한 시각은 2시 30분무렵이었다.

장마는 중부지방으로 올라갔고, 소나기가 잠시 내린 이후라서

유독 후텁지근하고 구름이 낀 날씨였다.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올렸는데,

음악을 틀어놓았어도 금새 피곤해지며 졸음이 쏟아진다.

고속도로 운전의 고질병이다.

절대 졸면 안된다.

휴게소까지는 볼을 꼬집으면서 가야만 한다.

드디어 영천휴게소가 보인다.

휴게소에 들어서자 마자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 주차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

 

 

폭우

영천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3시3 0분쯤이다.

화장실을 들러서 나오다가 담배가 생각나는데 차에 있다.

담배를 한 대 피려고 담배를 가지러 가는데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진다.

얼른 담배를 들고 나와야지 하면서 차까지 걸어가는데 비가 제법 굵어진다.

조금만 늦게 비가 왔다면 휴게소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렸다 출발했을 텐데,

하면서 차 안에서 담배 몇모금 피운 다음 출발한다.

고속도로로 진입하자마자 비는 그냥 바가지로 퍼붓는 수준으로 굵어진다.

와이퍼를 최대한 작동해도 시야가 잘 안보일 지경..

비상깜박이를 작동하고 전조등도 켠 채 앞 차를 따라 엉금엉금 따라간다.

그렇게 시속 40 - 50키로정도 속도로 진행하는데 빗줄기는 더욱 굵어진다.

 

트럭

앞서가는 차는 5톤 대형 트럭이다.

한참을 따라가는데 앞차의 덩치로 시야방해가 자꾸된다.

추월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1차로로 차로변경을 하고 속도롤 조금 올린다.

그러자 트럭도 속도를 조금 올리는 듯 보였다.

이때 내 차의 속도는 70키로 내외였고, 비는 여전히 퍼붓는 상태..

 

 

미끄러짐

속도를 조금 더 올리면서 추월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트럭이 1차로로 조금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위험하다면서 습관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얹었는데,

그때부터 내 차는 제어불능상태에 빠졌다.

브레이크는 전혀 말을 듣지 않고 핸들을 돌려보았지만

마치 핸들과 바퀴와의 연결이 끊긴듯이 방향전환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대로 쭈욱 미끄러지며 진행하는데 트럭의 왼쪽면이 눈 앞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아, 부딪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브레이크와 핸들을 움직였지만 무용지물..

 

빗길 고속주행시 속도와 물의 장력으로 인하여 마치 고속정이 물에 미끄러지듯이

차가 물 위로 떠가듯이 가는데 이를 수막현상이라고 하고, 면허취득시

다 배운 사실이긴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운전자 대부분은 남의 일인양 여긴다.

 

1차사고 발생

예견했지만 항거불능한 상태로 트럭의 왼쪽 중간부분에 내 차가 부딪히면서

오른쪽 사이드 미러가 부러져 나가는 것이 보인다.

연이어 트럭의 화물고리와 내 차의 조수석 부위의 앞뒤 문짝이 부딪히면서 차가 휘청한다.

차가 왼쪽으로 튕기면서 중앙분리대 쪽으로 미끄러져간다.

중앙분리대가 눈 앞으로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 드는 순간 엄청난 소리와 충격...

머리는 운전석 프론터필러에 부딪히면서 차가 좀 더 진행하여 정지한다.

<1차사고를 순서대로 그린 모습, 1 - 사고직전,  2-트럭과 충격,  3-최종 정차상태>

 

 

 

피 신

충격과 동시에 머리를 치는 생각은 두려움이다.

어느 누구든지 내 차를 발견하고 급제동을 한다면 미끄러지면서 내 차를 충격하고,

내 차는 종이장처럼 구겨질 것이 눈에 보인다.

더구나 화물트럭이 많이 다니는 도로이다.

머리끝이 쭈뼛서면서 차를 두고 내려야겠단 생각.....

문을 열려고 하니 안열린다.

차는 중앙분리대를 충격하면서 더 진행하여 와촌터널 가까이에 접근하였고,

여전히 중앙분리용 화단에 붙은 상태이다.

창문을 내리려고 하나 그것도 고장이다.

조수석쪽을 열어보니 역시 고장상태...

머리 속이 하예지면서 비상깜박이가 작동중인지 확인함과 아울러 뒤를 보면서

경음기를 계속 누르고 있다.

몇몇 트럭은 내 차를 스칠듯이 휙휙 지나쳐간다.

 

2분 정도 지나자 물고기 떼처럼 차들이 몰려다닌다는 말이 맞는지 잠시 차가 보이지 않는다.

뒷좌석으로 가서 문으로 내려 피신할까 생각하니, 후속사고가 겁이난다.

2개 차선중 1개 차선을 막고 있다면 10분이 지나지 않아 대형참사가 생길 것은 뻔하다.

차 시동을 걸어보니 시동이 걸리고 핸들도 돌아간다.

'그래, 차를 안전하게 빼야 겠다.'

차량을 갓길 쪽으로 출발하는데 왼쪽 앞바퀴에서 쇠가 돌을 긁는 소리가 난다.

충격으로 바퀴가 완전히 찢어 졌으리라..

'제발 굴러가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출발하니 움직여준다.

멀리 50미터 떨어진 갓길에 접촉했던 화물트럭이 서 있다.

 

바닥을 와각와각 긁는 소리를 내며 트럭쪽으로 차를 뺐다.

천우신조로 그때까지 1분 정도는 지나가는 차량은 없었다.

트럭까지 겨우 도착했고 좀 더 진행하여 트럭 앞에 세웠다.

코 앞이 터널입구였다.

 

2차 사고

차를 정차한 후 내리려니 비가 여전히 쏟아 내린다.

1-2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뒤쪽에서 쾅~하는 큰 소리가 들리더니, 화물트럭이 내쪽으로 1-2미터 움찍 밀려들어온다.

'아~ 누군가가 미끄러지면서 화물트럭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제발 큰 사고가 아니기를 속으로 빌며 차에서 내렸다.

 

옷이 젖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내리자 트럭 운전사고 내렸다.

트럭 뒤로 가보니 트라제 차량이 앞 부분 대부분이 트럭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리창은 충격으로 다 깨어졌고 뒷문 유리창만 남아 있는데,

트라제 운전자는 트럭 밑으로 차가 들어가면서 엔진과 대쉬보드, 핸들이 뒤로 밀려나면서

다리는 완전히 끼어 움직이지 못하고, 얼굴은 피범벅이다.

그래도 정신이 있고 움직이는 것을 보고 믿지 않는 신에게 감사를 올린다.

제일 급선무는 또 다른 제3의 사고를 막아야 하고 부상자를 빨리 병원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트럭 운전수에게 물어보니 사고신고는 했다고 한다.

그래서 차량 뒷쪽으로 가서 손으로 수신호라도 좀 하라고 한 다음 운전자를 뺴내려고 하니

항거불능이다.

말로 안심을 시키고 많이 움직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잠시 기다리니

고속도로 관리직원들이 차를 끌고 왔다.

안전표지등을 작동한 차를 후방 100미터 지점에 정차시키고....

..................................

 

다행히 후속사고는 더 이상 없었다.

 

 

<피신 및 2차사고 그림>

 

 

<트럭을 충돌하면서 트럭 밑으로 들어간 트라제 차량>

 

 

구사일생

최초 접촉사고는 둘 다 주행중이었으므로 충격이 거의 없었으나, 중앙분리대를 충격할 당시의 충격은 꽤나 심한 편이다.

70킬로미터로 달리다 담벼락을 박아버리는 충격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스듬히 미끄러지면서 충격한 탓에 충격력이 분산되어 정신을 잃지 않았다.

만약에 접촉으로 차량이 빙글 돌면서 정면으로 중앙분리대를 박았으면 정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1차사고이후 2-3분간 내 차를 충격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 또한 확률적으로 10%도 안될 정도의 행운이었다.

 

또한 그 충격에도 타이어 없는 차가 시동이 걸리고, 핸들이 작동하고, 갓길까지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단 것 또한 엄청난 행운이었다.

 

끝으로 갓길로 차를 빼면서 가깝다고 평소처럼 트럭 뒤에 차를 정차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랬다면 위 사진의 흰색 차량은 내 차였을 것이고 난 그 안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치 료

사고난 날 저녁에 입원, 다음날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몸이 많이 상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

 

고속도로 안전 조치요령

1.

사고시 가장 먼저 몸을 피해야 합니다.

갓길도 사실 위험하며, 아예 가드레일 밖으로 나가는 편이 좋습니다.

만일 차가 도로에 방치되어 있다면 사고지점 후방으로 가서 수신호(밝은 계통의 옷을 들고 흔들며..)를 하면 후속사고 위험은 줄이는데, 본인의 위험은 엄청 증가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차를 뺐습니다..)

피하는 방향은 사고지점 전방이 아닌 후방으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고지점 전방은 사고차량 등을 발견하면서 피하려는 차가 달려들 위험이 있습니다.

 

2.

갓길에 차를 세우면 절대 안됩니다.

야간에 졸립다고 갓길에 차를 세워서 잠깐 졸겠다고 하다가 졸음운전 차량이 달려들어 대형참사가 나게 됩니다.

만약 부득이 위의 저처럼 갓길에 차를 세워야 할 경우에는 큰 차의 앞에 세우는 것이 안전합니다.

 

3.

빗길은 눈길보다 훨씬 위험하지만 운전자는 잘 모릅니다.

눈길에 미끄러지면 눈썰매타는 느낌이지만, 빗길에 미끄러지니 얼음판에서 손잡이 없이 썰매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눈길은 다른 차들도 대부분 속도를 많이 줄이지만 빗길은 줄이지 않거나 조금 줄이므로 충돌할 경우 대형사고가 많이 생깁니다.

따라서 요즘 내리는 폭우에는 아예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고 부득이 운전하더라도 충분히 속도를 줄이고 운전하십시요.

 

 

2011. 7. 14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