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날T 2012. 6. 7. 16:49

  

갓바위

 

 

수 백개 돌 계단 하나하나 눌러 딛으며

산 오르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 한 개

소원 하나는 들어준다는데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하나.


고3 아이 시험 잘 보게 해달랄까

복권 당첨 빌어볼까

이승 떠난 모든 사람 극락왕생 빌어볼까

개똥같은 이승의 힘든 중생 구제를 바래볼까


오르는 높이만큼 숨도 차오르는데

머리 속의 소원은 하나하나 지워진다

 

내 아이 운을 빌어 시험 잘 보는 일은

다른 아이 운이 못해 시험 못 보는 일

복권된 사람들 행복한 생 없단 소식

저승에서 힘든 생 이승에서 지은 업장

이승에서 개똥인생은 전생의 부귀영화

분 넘치게 바랜 소원 넘치는 복 재앙되네


턱까지 차오른 숨 애써 눌러가며

더 좁아지고 더 가팔라진 산길을 에워도니

홀연히 나타나는 갓바위 부처님


- 그래, 소원은 무어냐?

- 부처님, 이미 소원을 하나 들어 주셨어요.

   무언가를 행하지 않고서 결과를 바지 말라는 깨달음을 주셨어요.

   굳이 소원을 들어주시려면 제가 일한 만큼 결과를 주시고

   제가 바라는 만큼 일하게 해주세요.

- 내가 딱 이만큼 높이에 앉아 있는 이유를 알았구나.

 

 

2012. 6. 7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