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책갈피
아, 당신은
맑은날T
2013. 5. 24. 08:00
당신은,
참 게으른 나를 쉬임없이 이리저리 오가게 만드네요.
2004년 3월, 맹춘에 탄핵 당하면서
한 동안 잊어 버린 광장으로 불러 내시더니,
그 뒤로 몇 번이나 시청 앞으로, 덕수궁 앞으로 부르시고,
멀리 남녘으로, 성공회대학 노천극장으로도 오라시데요.
당신은,
눈 나쁘다는 핑게로 한 동안 접어 두었던 책을
몇 권이나 다시 펼치게 만들었네요.
막상 내가 펼친 그 책들은 당신이 지은 책은 없고,
당신을 추억하는 이들의 그리움으로 지어진 책들이네요.
당신은,
매니아는 아니라도 심심찮게 TV 앞에 쭈그리던 나를
TV에서 떠나게 만들었네요.
당신으로 인하여
TV는 반쪽을 가린 세상만 보여주는 것임을,
반쪽 가린 세상에서는 웃는 얼굴만 비춰주는
바보상자임을 알게 되었네요.
무엇보다도 당신은,
눈물흘리는 남자가 찌질하지 않음을 말해 주었고,
샛노란 색이 사람을 슬프게 만들었고,
원래 바쁜 5월을 더 바쁘게 만들었네요.
그리고 또 다른 당신이 오기까지,
수 많은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네요.
- 2013. 5. 23 4주기에, 유형의 땅 대구에도 작은 추모공간이 있어 친구와 들러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