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온고지신 꽃잔디>

맑은날T 2002. 7. 21. 11:53


= 옛것을 보존한다 =

이거 좋은 의미잖아. 안 그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도 있고, '형 만한 아우 없다'나,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란 말도

다 그런 의미 아니겠어.

日新 又 日新이란 말도 이빨로 뜯어보면 新을 하기 해서는 당연히 舊가 필요할 것이니까,

이 말도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해.

머라고?

한자로 적어서 불쾌하다고?

아하~ 불쾌한 게 아니라 못 읽겠다고...

내가 알려 줄 수도 있지만, 이 정도는 니가 왕편 찾아서 해석해 봐.


갑자기 수구주의자가 되었냐고?

그건 아닌데, 지난 주 천안 역 앞에서 갑자기 이 말이 떠올라서 적어 본 거야.

천안 역엔 왜 갔는지 궁금하지?.

역에 가는 거야 차 타러 가는 거 아니면 배웅이나 마중 나가는 거지.

난 그 날 마중을 나간 거고...

이렇게 하면 또 누구 마중 갔는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겠지.

사실 난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좋아.

그래야 글을 따라 읽어주는 것 같아서 좋으니까...

내가 알아서 다 이야기 할 거니까 좀 기둘려 바바.

그러니까 그 날 천안 역에서 어떤 여인을 기다리고 있었지.

장마비가 약간 내리는 오전 11시쯤이었지.

그런데 천안 역은 참 작더만.

그리고 출구는 한쪽 귀퉁이에 화장실 바로 옆에 따로 있었지.

가랑비를 피해서 작은 처마 밑에서 그 여인을 기다리는데 점잖게 양복을 잘 차려 입은

내 또래의 신사 한 명이 누구를 마중 나왔는지 옆에 서서 목을 길게 빼고 안으로 보고 있더만.

그런데 그 양반 목이 참 길데..

그래서 나도 질세라 길게 빼고 기다렸는데 목이 아파서 곧 뺀 목을 집어 넣었지 뭐.

목 길다고 훈장 줄 것도 아니잖아.

알고 보면 난 참 합리주의자야.


하여튼 그렇게 5분 정도인가 기다리는데 열차 한 대가 도착했는지 승객들이 몇 명 나오기

시작하더만.

그 열차는 시각으로 보아서는 내 여인이 탄 차는 아니었지.

그래서 무관심하게 바라보는데 여섯 살 먹은 꼬마아이와 또 그 또래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손을 잡고 나타나더만.

그 꼬마아이는 머리를 두 가닥으로 묶었는데, 입성이나 피부나 표정이 참 좋고 귀하게 자란

아이 같았고 그 엄마로 보이는 여인 또한 그렇게 고왔어.

순간적으로 느낌이 있어 옆에 서 있던 그 양반을 보니 시선이 두사람에게 집중되면서

입꼬리가 귀 쪽으로 올라가더만.

그 꼬마아이와 여인도 역시 신사에게 시선이 고정되면서 발걸음이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어.

그 다음 광경이야 뻔한 거 아니겠어.

오 미터 정도 거리에서 꼬마가 '아빠'하면서 달려오고 그러면 신사는 무릅을 굽혀서 꼬마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안아 올리는 거....

드라마에서 30년 간 보아온 장면이니까.



그런데....

그런데 그 예측이 사정없이 빗나가 버렸어.

그 꼬마아이는 오 미터쯤에서 뛰어오고 신사는 아이 이름을 부르며 안아 올린 것은 똑 같았지.

그 꼬마가 달려오면서 소리치는 게 예측을 무시하더만.


"아.부.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순식간에 25년쯤 전으로 되돌아가버리는 내 의식을 잡으려고

허둥거려야 했지.

그런데 바로 그때 아이엄마는 굵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추가해서 내 기억을 과거에 떨어뜨리더만.


"아부지 보니까 좋채?"


멀어져 가는 그 가족을 보면서 난 진심으로 따라가서 묻고 싶었어.

어디에 사시는지를.....

어쩌면 그리도 구수하게 사시는지를...



그래서 그날 옛 기억과 옛 사투리를 떠올려 본 거야.

오늘 이야기는 이게 다야.

싱겁지?
.
.
.
?
?
?

허어~ 그 양반 참 집요하네.

내가 그 날 기다린 여인이 그리도 궁금해?

그날 나타난 여인은

바로 마누라야.

늘 보는 마누라도 역에서 기다려서 보니까 좀 새롭긴 하더만.

이제 궁금증 풀렸어?

아직 남았다고?

집요한 당신이 바로 나의 핵심 독자야.

어떻게 꼬마 나이가 여섯 살이란 걸 알았는지 궁금하다 이거지?

그건 있지.

그냥 내 멋대로 추측한거야.

아니 꼬우면 너도 멋대로 글 써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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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장마에 더위에 좀 이상해졌나 봅니다. -_-;;

꽃잔디입니다.
대학 다닐 무렵 약학과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어 고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잔디같이 넓게 깔린 꽃밭....
눈만 뜨면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겁니다.

2002. 7. 22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