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화장실에서 무화과>
맑은날T
2002. 8. 7. 09:52
볼일이 급한 어여쁜 아가씨가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화장실은 남녀공용 공중화장실이었지요.
화장실은 딱 한 칸이었는데, 그 앞에 남자 한 명이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화장실 안에는
신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에서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고, 그놈은 자꾸만 급하다고 재촉을
하는데, 급기야는 일부가 고개를 내밀고 말았지요.
힘을 주면 잘려버릴 것 같고, 힘을 빼면 다 나와버릴 것 같은 절대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하던 그 아가씨는 더 참지 못하고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부탁을 했답니다.
"아저씨~ 급해서 그러는데 양보 좀 해주실래요? ^^;;"
그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앞의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퍼렇게 질린
얼굴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 아저씨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땀을 삐질삐질 쏟으면서 간신히 몇 마디 합니다.
"아.가.씨.는. 말.이.라.도 할. 수. 있.네.요."
어느 칼럼에서 볼일 문제에 대한 글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저도 위의 아가씨와 같은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장이 좀 예민한 편이라서 경도(輕度)가 약한 것(?)을 자주 보는 편이지요.
신입사원 때의 일이니까 지금부터 9년 전의 일이 됩니다.
그때 서울역 앞에 있는 본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출퇴근하고 있었습니다.
신도림에서 지하철 1호선을 갈아탔는데, 신도림에서부터 신호가 살살 오기 시작하였는데,
출근시간이 급하여 그냥 전철을 탔습니다.
노량진에서부터 몸이 꼬이기 시작했는데, 서울역을 한 구간 남겨둔 남영을 지나면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릴 준비를 다 하고, 문 앞에 기다렸다가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냅다
뛰었습니다.
서울역에는 표를 개찰하기 전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눈 앞이
캄캄해지고 말았습니다.
화장실마다 세 명 정도 줄을 서 있는 게 아닙니까?
그때 저는 중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임을 알았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기다리는 건 자살행위다'
과감히 그 화장실을 포기하고 다른 화장실을 찾으려고 나오는 순간, 옆에 있는
여자 화장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까, 마침 줄 서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과감히 안으로 들어가서 한 칸을 자리잡고 오랜 숙원을 시원하게, 눈거풀을 가늘게 떨면서
갑자기 찾아온 행운과 쾌감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손님(?)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그 짧은
평온과 휴식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볼 일은 다 보았지만, 나갈 엄두를 못 내고 그저 손님들이 다 나가고, 들어올 때의 평온한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불안, 초초, 야릇함, 엉큼함, 미안함 등이 뒤섞인 채 쭈그린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출근시간이 되었는지 손님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줄은
자꾸만 늘어나고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기야는 제가 들어 있는 칸 앞에 서 있던 아가씨는 다급한 노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에 들어있는 사람에 대한 원망, 줄을 잘못 택한 것에 대한 자책감, 그 날 재수 없음에
대한 한탄..... 뭐 이런 것들이 뒤섞인 노크로 봐야겠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다른 칸에는 서 너 명씩 교대를 했을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때 저는 또 중대한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아~ 생각해 보면 그 날은 아침부터 중대한 결심을 참 많이도 할 운명이었나 봅니다.
어차피 한 시간 이내에 평온한 환경조성이 조성될 것 같지는 않았고, 또 제가 들어있는
화장실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이름 모를, 급하고, 재수없고, 불행한 여인(?)은 작은
것이던 큰 것이던 실수를 하고 말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물을 내리고 일어서서 바지를 추스르는데, 그놈의 화장실 칸막이는
왜 그리 낮던지 똑바로 서지를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지를 추스린 다음,
가방을 옆구리에 끼었습니다.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 문을 벌컥 열고서는 고개를 최대한 수그린 채, 냅다 뛰었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욕하는 소리는 모두 무시하였는데, 바로 앞에서 줄 서 있던
그 아가씨의 파랗게 질린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마도 그때 이미 일이 벌어진 상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상같이 인터넷 보급이 보편화된 세상이라면, 그 날 인터넷에는 틀림없이
이런 글이 올랐을 겁니다.
『서울 역 여자 화장실에 뵨태가 활동하고 있으며, 그 뵨태는 화장실 안에서 몇 시간씩 잠복하는 뵨태행각을 저지르고 있으니까 철저한 단속과 아울러 화장실을 찾는 고객들은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화장실을 사용 할 적에 참으로 여유있게,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했습니다.
낮은 문 위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면서, 구더기의 꼬물거림을 관찰하기도 하고,
형이 쓰다만 국어책도 읽고, 들고간 동화책을 다 읽고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화장실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언제부터인가는 그야말로 볼일을 보는 변소 역할
밖에 하지 못하고 항상 급한 마음으로 찾았다가, 노크소리에 쫒겨 나오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에서도 출근시간에 쫒겨서 신문 한 페이지 읽어볼 시간조차 만들지 못하고 나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좀 더 여유를 찾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에 맑은날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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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입니다.
한자로 쓰면 無花果가 되며,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정말 꽃이 없이 열매가 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총명한 저의 독자이신 당신께서는 그렇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압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만고의 진리는 여기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 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꼭대기만 조금 열리지요.
그러나 주머니 속에서는 사랑의 행위가 자기네들끼리만 은밀하게 이루어져 수정이 되고 깨알같은 씨가 생깁니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을 보지도 못하였는데 어느 날 열매가 익기 때문에 그만 꽃 없는 과일이 되어 버렸겠지요.
지중해 연안이 고향이고 남해안의 따뜻한 지방에 재배하며 충청도까지는 자랄 수 있답니다.
무화과 나무 잎은 아담과 이브의 수치를 가리는 치마가 되어 인류 최초의 의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2002. 8. 12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