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황소의 걸음으로.. 목화>

맑은날T 2002. 10. 1. 10:16


옅은 안개가 어린 아침입니다.

여름의 안개는 가벼우나 습기를 머금어 둔해보이며, 가을의 안개는 묵직해 보이나,

물기가 빠져나가 경쾌해 보입니다.

약간은 서늘한 한기가 안개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긴 호흡을 하면서 안개를 한아름 가슴에 담아봅니다.



달력은 이제 10월로 접어들며 뒤로 두 장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문득 가슴 한 켠에 헛헛한 무엇이 비집고 듭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계가 동일한 속도로 초침을 움직이지만, 그 시계의 주인인

사람들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은 모두 다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일 처리가 남들보다 두 배 빠른 사람의 하루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하루에 사용하는 시간은 두 배나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두배나 빨리

가 버린다는 게 시간의 역설입니다.

그래서 중년의 남자에게 있어 시간은 엄청나게 빨리 지나갑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담배도 끊으면서 열심히 살자고 생각한 게 불과 한 두 달 전으로 기억되는데

벌써 10월이라니요....



언제부터인가 참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리 급할 일도, 그리 중대한 일도 없었는데 무엇엔가 쫒기는 사람처럼 바쁘게

삽니다.

내가 이리 바쁘다 보니, 덩달아 가족들과 부하직원들 그리고 주위 사람에게도 알게 모르게

빨리 빨리를 강조하며 살게 됩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서두르게 되었나고 되집어보면 아마도 대학시절부터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대학시절에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한 것도 없었지만....막연히 그 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학 전에만 하더라도 '만만디'였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는 10리길을 걸어서 통학했는데, 별로 서둘렀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각하거나 결석하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다.

대학 다닐 무렵 고향 어르신 한 분이 저의 초등학교 다닐 무렵의 인상을 말해주시던 게

생각납니다.

항상 느릿하게 손에 책 한 권 들고 걸어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내림인지 몰라도 윤석이도 느려터졌습니다.

도무지 급한 일이 없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면 가장 늦은 게 아내가 아니라 윤석이입니다.

승용차로 이동하여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에도 제일 늦게 내리는 사람이 윤석이입니다.

차를 주차시키고 시동을 끌 때 쯤 되어서야 벗어놓은 신발을 찾아 허둥댑니다.

등하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하교 길은 친구랑 함께 오는 길이 아니면 500미터 떨어진 학교에서 집에 오는 시간은

30분에서 한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오락실에 들린다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에서도 점심시간에 동화책을 보다가 배식을 받으러 늦게 가는 바람에 반찬 몇 가지를

빼고 배식받기가 일쑤라고 합니다.

윤석이가 지난 주에는 아내에게 혼이 쏙 빠지게 야단을 맞고 지금까지 하루에 한 장씩

반성문을 쓰고 있습니다.

준비물, 알림장, 숙제...어느 하나 똑바로 챙기는 일이 없고 이것이 누적되고 선생님으로부터

지적 당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윤석이가 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부러워보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유있게 사는 일과 짜임새 있게 시간을 경영한다는 것은 양립가능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굳고 곧은 땅에 꿋꿋하고 듬직하게 한 걸음씩 내 딛는

황소의 발걸음으로 남은 3개월을 살아보았으면 하고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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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木花)입니다.
아침에 아욱국이 나와서 올려본 것입니다.
원래 목화, 아욱, 무궁화는 모두 아욱과에 속합니다.
그래서 꽃 모양도 서로 비슷합니다.
목화는 인도가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8-9월에 꽃이 핍니다.
그리고 꽃이 지면 '다래'라는 열매가 맺고 그 다래가 익으면 벌어지면서 솜털이 비집고 나옵니다.
고향에서는 이러한 솜을 '미영'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면(綿)이 변하여 된 사투리로 보입니다.
목화꽃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여 면의 따스하고 포근함에 잘 어울리는 꽃말입니다.
그리고 목화꽃이 진 다음 열리는 다래는 여물기 전에 따서 먹기도 했는데, 맛은 단맛이
약간 도는 덜적지근한 맛으로 기억됩니다.
위의 사진은 목화꽃이고, 아래의 사진은 다래가 익어서 벌어진 것으로서 하얀 것이 솜입니다.

2002. 10. 1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