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청도 감에 대한 회상 감>

맑은날T 2002. 10. 14. 15:49


방금 고향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감 두 상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대구에 사는데 주말마다 청도에 가서 농사일을 거듭니다.
그래서 고향어르신들은 그 친구에 대해 칭찬이 자자합니다.
전화를 끊고 감 생각을 하니 입안에 군침이 고입니다.
언젠가 조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제 고향에서 나는 감은 청도반시(淸道盤枾)라고 하는데 홍시로 먹는 감입니다.
납작하게 생겼고 씨가 없으며 당도가 뛰어난 것이 특색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진상품이었다고 합니다.
청도 이외의 지역에 이 감을 가져다 심으면 씨가 생기며 맛도 떨어진다는데, 이 사실은 작년 부산에 계신 고모집에 가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고모집에는 오래 전에 선친께서 가져다 심으신 감나무가 잘 자랐는데, 그 감을 따 보니 감마다 씨가 대여섯 개씩 들어 있었고 맛도 찰지지 못하였습니다.

제 고향에는 집집마다 뒤곁에 감나무가 서너그루씩 자라고 있고, 밭둑에는 빙 들어가면서 감나무를 심어놓았습니다.
그 감나무들은 수령도 오래되어서 보통 수 십년 묵은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동네 전체가 감나무에 가려서 멀리서 보면 집들이 잘 안보일 지경입니다.
요즘이야 안그럴테지만, 어린 시절 감나무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먹거리와 놀이터를 제공했습니다.
늦봄 감꽃이 피면 아이들은 볏짚에 감나무 꽃을 꿰어서 목걸이 삼아 목에 걸고다니면서 감꽃을 군것질거리로 삼습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중복이 지날 무렵이면 그때부터 홍시가 달릴 가을까지 떨어진 감을 주워다가 작은 단지에 물을 채우고 그 속에 담아 놓고 삭힙니다.
3일 정도 지나면 떫은 맛이 다 빠져나가고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감은 길다란 꼬챙이에 꿰어서 멀리 던기기를 하면서 놀기에도 안성마춤입니다.
한 여름이면 무성한 감나무 그늘 아래에 평상을 놓고 숙제를 하거나 낮잠을 즐기기에 참 좋습니다. 감나무잎은 다른 나무에 비하여 유독 무성하여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도 빛 한 줄기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큰 감나무에 올라가서 술래잡기를 하며 놉니다.
술래는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나머지 아이들 5-6명을 잡으러 다니는데, 나무에서 내려오면 반칙입니다.
아이들은 술래를 피해서 높이 3- 4미터 되는 가지에서 가지로 훌쩍 훌쩍 잘도 뛰어다니는데 신기하게도 가지에서 떨어진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요즘 부모님의 눈으로 본다면 질겁을 할 일이지요.
그래서인지 제 고향의 또래들은 계집애들까지 모두 나무타기에는 선수입니다.

가을이 되면서 홍시가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는 홍시로도 충분합니다.
아이들은 커 가면서 감을 따는 법을 배우는데 이 또한 곡예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높이 5-6미터 정도의 감나무 가지에 감따는 장대(감조리)를 하나 들고 올라서서 감을 땁니다.
가끔씩 감나무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쳤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가까운 동네사람들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도 군대 가기 전에 한달 정도 아르바이트 한 적이 있습니다.

감을 다 따내면 어느덧 늦가을입니다.
늦가을이 되면서부터 온 동네는 감나무단풍으로 뒤덮입니다.
가을 단풍치고 멋있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계곡을 따라 온 산을 불태울 듯 붉게 물드는 단풍나무는 장엄하고 화려하여 아름답고,
한적한 초등학교 교정에 소복히 쌓인 이른 아침의 노란 은행잎은 담백하고 솔직한 이름다움과 함께 한꺼번에 단색으로 단풍드는 통일미도 곁들여져서 멋집니다.
단풍이 거의 질 늦가을 무렵, 미련을 남긴 채 하나 둘 씩 윤기잃고 떨어지는 느티나무 단풍의 쓸쓸한 운치가 멋지고, 단풍드는 색이 노랗거나 붉거나 하지 않고 단지 누런 색으로 바래어져가는 떡갈나무의 단풍은 비장미가 있어 별미입니다.
그렇지만 제 기억이 닿는 한 가장 멋진 단풍은 온 동네를 뒤덮은 청도의 감나무단풍일 것입니다.
감나무 단풍은 잎이 넓어서인지 잎새 하나에도 시간적으로 차이를 두고 단풍이 듭니다.
그리고 나무 개개의 세력(힘)과 나무가 자리한 토양의 비옥도와 토질 등에 따라서 단풍드는 시기도 나무마다 각각입니다.
감나무 단풍은 단색이 아닙니다.
나무에 따라서 가지에 따라서 잎새에 따라서 연노랑에서 새빨간 단풍까지 다양한 색으로 단풍이 듭니다.
그리고 같은 잎새라도 앞면과 뒷면의 단풍은 또 다릅니다.
단풍든 감나무 잎을 뒤집어서 햇살에 비쳐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단풍잎의 앞면이 선명한 아름다움이라면 단풍의 뒷면은 창호지를 거쳐온 햇살과 같은 은은하고 따스함이 드러납니다.
감나무 단풍에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햇살, 바람, 비, 하늘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름 햇살의 뜨거움은 불타는 붉음으로 드러나고, 따스한 봄바람은 잎새 뒷면의 은은함에 나타나며,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로 내린 비는 아직도 노란 물이 흐르는 잎맥에 녹아 있고, 가을 하늘의 드높은 맑음은 맑고 선명한 노랑으로 드러납니다.
열매를 충분히 맺어서 제 몸의 붉은 색으로 모두 홍시로 키워낸 나무에는 노란 단풍이 들고, 열매를 다 길러내고도 힘이 남은 나무들은 주체할 수 없고 남아도는 붉은 색을 진홍빛 단풍으로 내밀어 보냅니다.

그렇게 가을이 간 뒤의 감나무에는 또 다른 여운의 운치와 유혹이 기다립니다.
단풍이 모두 진 초겨울 감나무 꼭대기에는 주인의 여유로 혹은 실수로 남겨진 홍시 몇 개가 까치 몫으로 남겨집니다.
감나무의 제일 꼭대기에 서너개씩 달려있는 붉은 홍시는 그 위로 높고도 시리게 펼쳐진 푸른 하늘이 배경이 되어 더욱 붉게 빛나고, 그 뒤의 하늘은 더욱 푸르게 높아집니다.
그렇게 유년시절은 감나무와 함께 자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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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를 가장 맛나게 먹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먼저 청도반시를 한 상자 사서 말랑말랑한 홍시가 될 때까지 실온에 둡니다.
홍시가 말랑말행해지면 그대로 냉동실에 넣어서 얼립니다.
나중에 한겨울이나 봄 또는 여름에 꽁꽁 언 홍시를 꺼내어 뜨거운 물에 살짝 넣었다가 꺼낸 다음에 손으로 문지르면 껍질이 홀랑 벗겨집니다,
그러면 감꼭지를 따 낸 다음 컵에 그대로 담아 놓았다가 10분 정도 지나면 숟가락으로 으깬 다음에 티 스푼으로 떠먹습니다.
베스킨라빈스 31 맛보다 훨씬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볼 수 있습니다.

2002. 10. 14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