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경고문(1) 행운목>

맑은날T 2002. 11. 29. 09:45



서둘러 아침을 마치고 하숙집을 나선다.

하숙집에 인접한 집의 대문에 노트를 찢어서 붙여놓은 쪽지가 눈에 띄어 지나치며 목독하고는 웃음을 머금는다.

- 경 고 -

신문 절때 사절 !!
잠복중임
몰래 넣다가 들키면 때려죽일 것임.


경고문의 내용을 그대로 풀이하면 살벌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지만, 애교가 잔뜩 들어있어 웃음이 나왔다.


대학 시절 유독 이런 식의 방을 쓰고, 붙이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1학년 때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나는 418호, 그 친구는 448호로 기억된다.
때 마침 중간고사기간이라서 그 친구에게 노트 빌리러 갔다가, 448호 앞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 친구 방 앞에서 머뭇거린 것은 그 방 앞에 붙은 큼지막한 공고문 때문이었다.
달력 한 장을 찢어서 그 뒷면에 검은 매직펜으로 만들어진 달필의 공고문을 대충 기억으로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公 告

이 방에 寄居하는 사람은 1985年 4月 ○○日까지 中間考査를
보아야 하므로 天下 何物이라도 下記의 行爲를 一切 禁한다.

―. 448호 방 앞에서 高聲放歌를 하는 行爲
―. 448호 방 앞에서 雜談, 淫談悖說 등을 하는 행위
―. 448호 방문을 두드리는 行爲 (英語로 表記하면 KNOCK)

1985年 4月 12日


文敎部長官 ◎◎◎
內務部長官 ○○○
國務總理 ●●●
釜山大學校 法科大學 學長
釜山大學校 總長
서울대학교 總長
모스코바大學 바長
홍콩大學 콩長
하버드大學 드長
馬二骨作山(마이클잭슨) 後援會長 一 同



결국 그 친구는 자기의 방문 앞에 붙여진 공고를 보러 온 친구들의 발자국소리로 중간고사를 망쳤다.
(뚜 비 꼰띠뉴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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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 그림은 약간 이상하지요?

제가 수원에 근무할 때 사무실에 있던 행운목이 청소하다가 목이 부러져버렸습니다.
버리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행운목의 중간을 잘라내고 야구방망이 같은 나무줄기에서 4개월만에 싹을 3개 틔운 것입니다.
수원에서 근무하는 참한 여직원이 아직도 씩씩하게 자라는 중이라고 전해주면서 디카로 찍어 보내 준 사진입니다.


11월의 끝자락입니다.
해마다 년말이 되면 회한이 들지요.
'올 한 해 동안 과연 뭘 했나~'하는 생각들.....
세월은 끊어지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는 것인데, 인간은 그 세월에 달력을 붙여놓고 단락을 지어 놓고 의미도 붙여 놓았습니다.
저는 그 세월의 원형을 들여다보며 연말을 보내려고 합니다.

2002. 11. 29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