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立春大吉

맑은날T 2003. 2. 4. 22:34


입춘대길(立春大吉)


사무실에 출근하다보니 문 앞에 큼지막하게 글씨가 눈에 띈다.

달필은 아니지만 정성들여 써붙인 글씨.....'立.春.大.吉'


'아하 오늘이 그리고 보니 입춘이구나.'


절기로 벌써 입춘이 되었다.

아직도 도로는 저리 얼어 있고, 아직도 먼 산은 흰눈을 이고 있는데...

봄에 들면서 크게 좋은 일이 생기길 빈다는 뜻이다.


그 글을 보면서 작년 이맘때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웃음 지어본다.

작년 입춘 때 퇴근을 하니까 윤석이가 자기 방에 뛰어 가더니 자랑스럽게 화선지 두루마리

몇 장을 꺼내왔다.

그때 윤석이는 서예교실에 다니고 있었는데, 붓글씨가 꽤나 좋았다.

화선지 뭉치를 펼치면서 자기가 쓴 글이라고 자랑스럽게 펼쳐보인다.

그곳에 씌여진 글씨는 바로 이랬다.


入 春 大 吉

그 글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한다.

입자가 아무래도 생소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무말 없이 달력을 보니까 달력에는 "立春"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글씨가 틀렸다고 말하자 윤석이는 한 장을 더 꺼내들고서 원장선생님이 대문에

붙이라고 써 주신 것이라며 꺼내어 놓는데 그곳에도 여전히 '入春大吉'이라 되어 있다.

그리고 吉자도 선비 사(士)를 써야 하는데 흙토(土)가 씌여져 있었다.

마눌이 현관문에 붙여놓았다면 동네 망신 될 뻔 했다.


실망하는 윤석이를 들여 보내놓고 마눌과 상의를 했다.

윤석이를 그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국 결론은 그만 보내자는 것이었다.

이유는 원장이라고 해서 글씨를 틀리지 않는 법은 없지만 간단한 글씨 네 글자를 쓰면서

두 자나 틀린 것은 교육자의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윤석이는 붓글씨학원을 그만두었는데,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입춘이 지나고 나서

많은 아이들이 우리와 같은 이유로 그만두었다나....

그 원장의 입장에서는 '入春大吉'이 '立春大亡', '立春大羞恥'가 된 꼴이었다.


무릇 교육자나 방송인, 언론가 등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지식이나 정보를 전하는 이는

자신의 지식이나 정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윤석이가 위 글자가 틀린 글자인 줄 모르고 살다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금번 대선과 같은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는데, 선거운동중 입춘이 끼어 있어서 기자들이

보는 자리에서 入春大吉이라고 썼다고 가정하면 윤석이는 남은 선거운동을 할 필요조차

없어질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어찌 실수가 없겠냐만 그래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막을 수 있는 실수라면

비난을 받아야 하며,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한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몇 명 밖에 안보는 글이지만 글을 써다보면 두 번 세 번씩 그 내용을 확인하며,

그 내용 중에 정보나 지식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한번 더 확인하곤 한다.

요즘 언론이나 교육자나 사회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우울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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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입춘이었습니다.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올 겨울도 눈 많고 추운 날들이었지만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마는가 봅니다.
입춘을 맞아 모두에게 즐거운 날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이른 봄 잔설을 뚫고 피는 몇 안되는 야생화입니다.
그래서 파설초 설할초라는 속명을 갖고 있기도 한답니다.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10cm내외로 산지 숲속 그늘에서 자랍니다.
이른 봄 잔설을 뚫고 싹을 틔우는 풀들이 다 그렇듯이 노루귀의 잎새에도 솜털이 보송하니
자라나 있답니다.

2003. 2. 5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