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조만복씨 이야기

맑은날T 2003. 2. 7. 11:26


조만복씨 이야기



조만복씨는 며칠 째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화장실도 안가냐구요?

먹고 마시지를 않으니까 싸는 것도 당연히 전폐되었지요.

앞으로 또 그런 말 같잖은 질문하면 혼납니다.

무슨 우환이 있어서냐구요?

시의적절한 질문은 맞지만 핵심을 찌르는 것은 아니군요.

이름이 萬福이 인데 우환은 무슨 우환이겠습니까, 너무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요.

사실 조만복씨는 며칠 전에 엄청난 행운을 거머 쥔 것입니다.

조만복씨가 거머쥔 행운은 한민족이 생긴 이래 가장 크고도 잡기 어려운, 그리고 이후로도

이러한 행운은 다시 없을 그러한 - 이걸 네 자로 '전무후무'로 줄일 수 있으나 굳이 풀어 쓰는

이유는, 제 맘입니다 - 행운을 거머쥔 것이지요.



올해 서른 아홉되는 조만복씨는 이름과는 달리 타고난 복이 쥐꼬리보다도 못한 생을 살아왔답니다.

그가 복이 워낙 없다보니 부모 복도 없었고, 당연하게도 조만복씨의 부친인 조차인씨도 복이 없었습니다.

아니 조차인씨가 워낙 복이 없는 인물이다보니 자식 복도 없어서 조만복씨도 덩달아 복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조만복씨의 조상은 대대로 복이 없었답니다.

조만복씨 집안의 3대에 걸친 복을 다 합쳐봐야 뒷집 똥개의 하루 복에도 못 미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조만복씨의 할아버지는 일정시대 때 부산 부두에서 하역인부를 하는 사람이었답니다.

조만복씨의 할아버지가 한번은 일본에서 넘어온 군수품을 하역하고 있었는데, 군수품을 어깨에 받아

메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때 마침 뒤에 있던 똥을 밟으면서 뒤로 벌렁 넘어져 버렸습니다.

넘어진 것도 재수 없는데 하필이면 어깨에 메고 있던 상자가 그의 얼굴에 떨어지면서 코뼈가

부러지면서 코피를 두 되나 쏟았고 게다가 군수품이 망가지면서 한 달치 일당도 못 받고 부두에서

쫒겨 났다고 합니다.

그 당시 복없는 사람의 표준이었고, 모범이었으며, 기준이었던 조만복씨 할아버지의 그날 일을 보고서

사람들 사이에 우스개소리가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란 말이 있는데 이 속담은 바로 조만복씨의

할아버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두에서 쫒겨난 조만복씨의 조부는 부둣가를 돌면서 빌어먹다가 부둣가의 주먹패에게

아랫도리를 걷어차인 일이 생겼는데, 평소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던 그가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남자구실을 하면서 생긴 아이가 바로 조만복씨의 부친이었답니다.

조만복씨의 조부는 '거시기를 걷어차인 덕'에 낳은 아이라고 해서 조만복씨 부친의 이름을 '조차인'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조만복씨의 조부가 생애에 누린 마지막 복이 거시기를 걷어차인 일이었는데, 해방될 무렵 조만복씨의

조부는 쓰레기 수레를 피하다가 분뇨차에 치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부모 복을 하나도 타고 나지 못한 조만복씨의 부친 조차인씨는 거렁뱅이로 전전하다가 같은

패거리중의 벙어리 처자와 사내결혼(?)을 하여 창원에 정착을 하였고 서슬 시퍼런 박정희 정권하에

조만복씨를 낳고는 제발 복이 많아라고 기원을 하면서 이름을 조萬福이라 지었습니다.

그런데 복이란 것이 타고나는 것이지 이름을 짓는다고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만일 이름을 잘 짓는다고 복이 따라 온다면, 사람들의 이름이 온통 천복, 만복, 억복, 조복, 경복,

경사, 재수, 재벌, 대통령, 장관......등 등으로 되어 버릴 게 뻔하고 그러다 보면 한 가족의 이름에

들어갈 복을 제한하는 名福制限法도 생겨날 것이고,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게 뻔합니다.

하여간 조만복씨는 이름과는 달리 지지리도 복이 없어서 조만복씨의 모친은 조만복씨를 낳자마자

돌아가시고 조만복씨는 뜨물을 먹고 자라났습니다.

무상교육 덕에 조만복씨는 국민학교까지 다녔는데 6년 동안 우등상은 당연히 탈 수 없었고 그 흔한

개근상은 물론이며 운동회 때에도 상을 한번도 타지 못했습니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건강한 조만복씨가 개근상을 못 타게 된 것은 매 학년마다 하루씩 결석을 한

탓인데, 1학년 때에는 여름방학이 끝난 줄 모르고 하루 결석하였고,

2학년 때에는 겨울방학이 끝난 줄 모르고 하루 결석했고, 3학년 때에는 잔칫집에서 얻어온 자반을

먹고 배탈이 나서, 4학년 때에는 굿판에서 얻어온 돼지고기가 얹혀서, 5학년 때에는 소풍가는 날

혼자 학교 가는 바람에 결석을 했답니다.

그리고 6학년 때에는 원인불명, 이유불상으로 하루를 결석했다고 합니다.

운동회에서도 상을 타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너무 나열하면 지겹기도 하거니와 조만복씨가 너무

불쌍해지므로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4학년 가을 운동회에서 조만복씨는 백미터 달리기를 무려 세 번이나 뛰었고 두 번이나 일등을 했는데

상을 타지 못했습니다.

먼저 조만복씨가 여섯 명이 달리는 백미터 달리기에서 일등을 했는데 알고보니 조를 잘못 알아서

자기 앞 조랑 뛰어 무효가 되었고, 연이어 자기가 속한 조를 찾아서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 일등을

했는데, 부정출발 선수가 있어 다시 뛰는 바람에 지친 조만복씨는 4등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 조만복씨가 왜 며칠동안 식음과 수면을 전폐했는지 궁금하시죠?

조만복씨는 건축현장에서 잡부를 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인부들사이에는 복권열풍이 불었답니다.

로또라는 복권인데 마흔다섯개의 공 중에서 여섯 개를 고르는데 그 여섯 개에 적힌 숫자를 미리

적어 내어서 다 맞게 되면 1등이 되고, 1등이 되면 몇 억을 준다고 하면서 몇 만원씩 복권을

구입하고 심지어는 일주일 일당을 모두 털어서 수 십 만원 어치를 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다시 금액이 불어나서 1등이 되면 천억원이나

준다고 하여 돈없고 복없고 빽없고 처자식 없고 하여튼 없는 것 투성이인 조만복씨도 일당으로 받은

돈으로 월세를 치르고 남은 1만원으로 복권 한 장을 사 두었는데, 5일 전에 있었던 추첨에서

어처구니 없게도, 정말 말도 안되게도, 복 있는 사람 짜증나게도 조만복씨가 1등으로 당첨된 것입니다.

스포츠 신문을 보니까 세금을 빼고 780억원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조만복씨는 처음에 1등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각 일간지를 모두 사서 월세방에서 확인을 하였고

그래도 미덥지 않아서 국민은행 본점에 직접 전화까지 하여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확인절차를 거쳐서 자신이 1등 당첨된 사실과 당첨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복권을 제시하면

당첨금을 준다는 것을 확인한 조만복씨는 조차인씨와 이름 모르는 할아버지와 증조, 고조, 5대조 등

지지리도 복이 없었던 모든 조상들에게 감사드리고, 특히 자신의 이름을 萬福이라 지어준 부친

조차인씨에게 깊이 깊이 감사를 드렸답니다.

조만복씨는 온 나라가 1등 당첨자를 확인하고자 떠들썩하자 한달 쯤 지나서 조용히 찾을 요량으로

복권을 장롱 깊은 곳에 숨겨놓고 지금까지 자동차영업소와 고급주택가를 돌아다니며 돈을 쓸 궁리에

들떠서 식음을 전폐하고 다니다가 이제 막 국민은행을 들러서 당첨금을 입금할 통장을 하나 만들고

나왔답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자 마자 도로에 내려섰는데 갑자기 좌측에서 달려온 청소차가 조만복씨를

충격하였고 조만복씨는 몇 미터를 부웅 날아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답니다.

조만복씨는 그 길로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의식을 차리리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조만복씨가 죽어버렸냐구요?

그렇게 쉽게 죽어버리면 보통으로 복이 없는 사람이지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은 수명이 긴

법이지요.

그렇게 병원에 실려간 조만복씨는 사고난 날로부터 석 달이 지나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마자 장롱에서 복권을 꺼내들고 국민은행 본점을 찾았으나, 추첨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였으므로 복권당첨이 무효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오던 조만복씨가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씨벌~ 존만한 복도 없구먼....'


하는 일이 하도 안 풀리자 조만복씨의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 '존만복'인데 '니 복은 거시기 만하다'고

해서 지어준 별명이었지요.

~~~~~~~~~~~~~~~~~~~~~~~~~~~~~~~~~~~~~

로또 열기에 복권 이야기를 꽁트형식으로 꾸며보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의기투합하여 복권을 구입하였습니다.

안될 줄 알면서 굳이 복권을 구입한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나중에 '그때 복권이나 한 번 사 볼걸.........'하는 미련을 두기 싫어서였습니다.

복권이 안되어도 좋습니다.

늦겨울 끝자락에 실려오는 봄기운을 코로, 눈으로, 피부로 이렇게 느낄 수만 있다면....

그래도 한마디 합니다.

복만이 받으세요......^^

2003. 2. 7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