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아! 대한민국~
맑은날T
2003. 2. 21. 11:34
아! 대한민국~
지난 18일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당시 박정순씨(34·경북 영천시 화남면)는 화염이 치솟는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시어머니 황점자씨(63)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생애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무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딸 수미(8)와 남영(6)양, 아들 동규군(4) 3남매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화염에 휩싸여 결국 숨진
박씨는 이날 일자리를 얻기 위해 등록한 요리학원으로 가던 중이었다.
지난해 1월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음식점과 학교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며 세 자녀를
위해 악착같이 버텨온 삶의 의지가 허망하게 시커먼 연기 속으로 일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대구 지하철에서 50대 정신이상자로 추정되는 남자의 어이없는 방화로 백 여 명이 불에 타죽거나
유독가스에 질식해 죽고, 또 수 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뉴스에서 본 현장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지하 20미터의 지하철에서 갇혀서 불길과 유독가스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서둘러 출근하던 주부, 피아노 학원을 가던 학생, 봄방학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던 초등학생, 몸이 불편한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던 초등학생, 엄마 등에 업힌 고사리 손의
어린아이........
그들의 죽음이 왜 그렇게 허망한지....뉴스를 보다가 지하철에 갇힌 딸에게서 핸드폰 전화를 받은
아버지의 막막한 가슴을 생각하면서, 갇힌 이들의 공포와 절망을 생각하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눈길을 돌려야 했다.
왜....
이렇게 어이없는 일들이 왜 자꾸 생기나...
자기 신세를 비관하는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한 개인으로 인한 문제인가?
화재발생에 대하여 기관사, 지령실 등 지하철 관계자의 안일한 사태파악과 상황대처가 문제인가?
지하철 구조물을 내연재로 미리 만들어 내지 못한 책임인가?
참사의 발생과 피해의 확대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을 든다면 위에 든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지만 과연
이게 다인가?
방화를 한 피의자는 정신적인 문제는 오로지 그가 타고난 정신적 문제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나라의 사회적 환경이나 문화적 환경, 그리고 어렵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보는 소위 '가진 자'들의
시선에는 문제가 없었는가?
지하철 직원의 업무적인 책임감 결여나 상황대처상의 문제는 단지 그 직원의 특성으로만 보아야 하는가?
지금 이 나라에서 과연 철저한 직업적 소명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책임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생활이나 직업적 안정감은 보장되고 있는가?
지하철의 시설상 문제는 단지 대구 중앙로 역만의 문제인가?
대규모 공사마다 문제가 불거지는 부실시공의 원인인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비리는 또 어찌할 것인가?
이 땅,
'아~ 대한민국'에서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자는 중죄를 저지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몸이 아파서 입원하는 나라,
수해가 발생하면 발표하는 정부의 대책이 "수해지역 제조업체에 대하여 2년간 세무조사 면제"인 나라,
대통령비서실장이란 자가 전 국민이 직접투표로 뽑은 국회에서 뻔뻔하게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나라,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를 찾겠다는 근로자의 급여를 압류하여 결국 죽음으로 몰고서도 큰소리 치는 기업,
젊은 날의 혼신을 바쳐 일해온 사십대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구조조정, 정리해고란 이름으로 거리로
내쳐져도 문제가 안되는 나라,
외국인 근로자에게 급여를 주지 않고, 오히려 공갈협박을 해도 되는 나라,
원칙이 없어 목소리만 크면 통하여 일만 터지면 패거리를 이루어 깽판치는 나라,
그리고 깽판치면 다 통하는 나라는 나라,
60, 70년대에 온 국민의 세금과 피땀으로 만들어진 재벌이 재산을 그 자식에게 세습하고도 떳떳할 수
있는 나라,
돈만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나 될까?
참 우울한 날이다.
어이없는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넋이 부디 편안하기를, 부상자의 조속한 쾌유를, 그리고
희생자의 유족들의 슬픔이 하루 빨리 잦아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해본다.
그리고 사고관련자를 철저히 조사하여 그의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범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똑똑히
재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각종 공공시설의 안전점검과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여 또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 대책으로서 미흡하다는, 또 다른 유사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가지 더 기원해본다.
불귀의 객이 된 슬픈 혼들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다시는 '아~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불행이 없기를...........
마지막으로 또 하나 지켜 볼 일들이 있다.
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국가가 책임을 지는 사고에 대하여 적용하는 국가배상법의 집행이 제대로 되는지를 똑똑히 지켜
볼 일이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때와 같이 유족들이 많다는 이유로, 여론이 지켜본다는 이유로,
이 사고 이전에 국가의 잘못에 의하여 홀로 죽어간 수 많은 영혼들이 다시 또 억울해 지지나
않는지를.....
* 성수대교사건 당시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금액은 1억원 정도였으나 그 당시 국가에서 배상한 금액은 4억 가량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성수대교 사건 직후 국가의 잘못으로 홀로 죽어간 어느 시민의 유족은 1억원을 받았다...
* 실종자 신고가 확인미상 시신의 4배나 된다고 한다.
이번 주는 종일 우울하다.
그리고 88 올림픽에 즈음하여 온 나라에 울렸던 터무니없는 이 노래가 자꾸 생각난다.
~~~~~~~~~~~~~~~~~~~~~~~~~~~~~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 민국.
2003. 2. 21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