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지하철 출퇴근 <닭의장풀, 참나리, 해당화열매>
맑은날T
2003. 8. 12. 17:34
차를 버렸다.
인천으로 발령이 난 4월부터 줄곧 승용차로 출퇴근을 했는데, 얼마 전부터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일은 몇 가지의 쾌감을 동반한다.
면허를 따고 처음 중고차를 운전할 때의 기분은 황홀한 자유로움이었다.
세상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입장권을 손에 쥔 듯한 기분이랄까.
승용차에 혼자 올라타는 순간 한 평 남짓한 그 좁은 공간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고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
요즘 세상에서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인적 없는 골을 찾지 않는 한 도시 인근의 산 속을 헤집고 다녀도 그러한 공간은 없다.
자동차가 가져다 주는 온전한 독점의 공간과 그 공간을 흔드는 나만의 음악이 너무 좋았다.
자동차의 스피드는 자동차가 주는 또 다른 쾌감이었다.
발 끝으로 느껴져오는 액셀레이터의 은근한 저항을 지그시 무시하면 자동차는 금새 탁월한 스피드로 호응한다.
사실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란 절대왕조시대의 어느 왕도 느껴볼 수 없었던 세계이다.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란 전문적인 운동선수가 아닌 보통 사람이 돌맹이를 던져서 낼 수 있는 속도 이상이다.
그 아찔한 스피드는 주위의 사물을 순간적으로 나의 뒤로 물리게 하며 나를 순간적으로 주위의 사물을 앞질러 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자동차는 나만의 공간과 스피드로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동차가 주는 나만의 공간과 스피드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적절한 '접속관계'에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으로 완성된다.
한 개인은 온전하게 다른 사람으로 격리시켜버리면 사람이 될 수 없다.
자동차가 주는 공간의 단절은 온전한 개인의 공간을 창조하여 주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 이외의 모든 사물,
다른 자동차, 다른 사람, 주변의 풍광, 건물들을 나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사물이 되어 버린다.
특히 함께 도로 위에 나와 있는 자동차들은 나의 경쟁자이며 나만의 공간과 스피드에 방해자일뿐이며,
그래서 차를 운전하고 도로에 나서면 모든 자동차들과 적대관계가 된다.
자동차 이외의 사물들도 단절된 공간과 스피드로 인하여 금방 스쳐가는 무의미한 사물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지는 못한다.
신호나 끼어드는 다른 차, 도로상태를 살피느라 생각에 잠긴다거나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국은 나만의 공간에서 의식 없이 혼자 있다는 것이 되고 그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다.
잠을 자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래서 차를 버리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면 25분 정도는 걸어야하고, 지하철을 한번 갈아 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리고 출근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지만 그 한시간은 온전한 나의 시간이 된다.
직장에서도 개인의 시간을 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짬으로 내는 여유이고 언제든지 업무로 들어갈 대기상태이지만,
출퇴근 시간은 특별한 사정만 없다면 불가침의 시간을 갖는다.
걷는 시간은 살아있음이, 약한 다리이지만 혼자서 두 발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쾌감이 있어 좋다.
그리고 적당한 속도의 걸음은 생각을 하기에 딱 알맞은 스트레스가 되어준다.
생각하기를 멈추면 계절의 변화가 눈과 피부로 다가오고, 공원에서 운동하는 노인들의 젊은 땀에서 젊은 연인들의
키득임에서 살아있는 느낌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지하철을 타는 즐거움 중 가장 으뜸은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읽기가 지겹거나 피곤해지면 잠시 졸 수도 있어 좋다.
어제는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는 근린공원에 낮게 깔리기 시작하는 밤안개가 스산해서 좋았다.
오늘 아침에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들의 아침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앞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지하철을 이용할 작정이다.
살아있는 동안 그 살아있음을 더 느끼기 위하여.................
2003. 8. 12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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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영종도를 거쳐서 장봉도에 가서 조개잡이 하다가 돌아왔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개펄에서 아이 둘과 온 몸에 뻘을 묻히며 놀다 왔습니다.
두 아이는 갯지렁이나 민달팽이 같은 징그러운 것들도 서슴없이 가지고 노는 엽기를 합니다.
장봉도에서 찍은 닭의장풀, 해당화 열매와 참나리를 올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