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설날을 기다리며

맑은날T 2001. 1. 19. 18:50

설날을 기다리며

꼬마는 하루종일 장보러 가신 엄마를 기다립니다.
설쇠기 전 마지막 5일장에 가시기 전 엄마는 설빔으로 잠바 하나를 사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저께 벼를 낸 돈이 들어갈 모양입니다.
언제나 필터없는 담배를 입에 물고 담배연기를 피하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는, 그래서 어린 꼬마의 눈에도 야비하게 보이는 웃음을 물고 있는 삐쩍 마른 동창의 박씨 아저씨가 엊그제 벼를 내다 갔습니다.
어린 눈에 비친 박씨 아저씨의 웃음 때문인지, 아니면 흥정이 끝난 후 남는 아쉬운 아버지의 표정 때문인지 아버지는 언제나 손해를 보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시간이 참 더디게 갑니다.
옆집의 미야는 엄마따라 장에 가버리고 형들은 산에 나무를 하러 가고 없습니다.
하릴없이 큰 집을 기웃거려 봅니다.
큰 집 마당에는 항상 개 한 마리가 묶여 있습니다.
큰 집에는 유독 개가 잘 자라서 1년 정도 키워서 내다 팔고 다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오곤 합니다.
그러면 밥찌꺼기만 먹고도 금방 쑥쑥 자라지요.
강아지는 사람을 곧잘 알아보고 아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칩니다.
그러다가도 모르는 사람이 오면 집이 떠나갈 듯 짖어대다가 고무 슬리퍼로 한 대 엊어맞고서야 조용해 지곤 합니다.
그런데 똥개들이 모르는 사람에게 짖는 울음을 들어보면 진돗개나 세퍼트가 짖는 위협적인 짖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 대한 공포에서 나오는 절박한 울부짖음이지요.
무료하게 누워서 코끝을 오가는 파리를 쫒던 똥개가 꼬마를 보고 벌떡 일어나서 반깁니다.
똥개를 무시하고 큰 집을 들어섭니다.
큰집에도 큰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나 봅니다.
3년 전에 풍을 맞으신 큰어머니가 안방에서 혼자 누워계시지요.
원래 아이들을 성가셔하시는 큰어머니는 몸이 불편해서인지 요즘 유독 아이들을 성가셔 하시는 것 같습니다.
며칠전에도 하릴없이 큰집에 오니까 큰어머니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맑은날아! 무슨일로 왔노?"
"놀러 왔는데요..."
"그럼 한번 놀아봐라.."
"........"
멍청해져서 쭈삣거리다 되돌아 나온 기억이 있었습니다.

온 동네가 그렇듯 큰집에도 어제나 그제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마치 '누가 집이라도 안 떼어갔나' 감시하러 온 사람마냥 둘러보고는 발걸음을 돌려 나오는 데 똥개가 아쉬운 듯 꼬리를 치며 고개를 빼고 쳐다봅니다.
다시 집에 돌아와 뒤주간 옆 양지바른 곳에 놓여 있는 수레에 앉아 놉니다.
흙 담장 밑에 남쪽을 면하고 자리한 수레의 매끈한 소나무결이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데워져 있습니다.
수레 안에 누워서 햇살을 쳐다봅니다.
식은 겨울 햇살도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눈이 부셔 이내 감아버립니다.
눈을 꼭 감고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눈을 뜨면서 세상의 색깔이 바뀌는 눈감기놀이를 혼자 해 봅니다.
까만 세상이 보라빛으로 파란 빛으로, 주홍빛으로, 주황빛으로, 노란빛으로 차례로 바뀌어 갑니다.
그러다 다시 질끈 감으면 세상은 또 캄캄해집니다.
그렇게 졸 듯이 눈감기놀이를 하면서 엄마가 사오실 잠바가 어떤 건지 궁금해집니다.
욕심같아서는 자크도 있고 속주머니까지 주머니가 7개 정도 달린 근사한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방학하기 전에 진용이가 입고 온 잠바는 주머니가 5개나 있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잠바는 주머니가 많을수록 좋습니다.
딱지도 넣고, 팽이도 넣고, 찐쌀이나 뻥튀기도 넣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단추보다는 자크가 달 린 것이 멋있습니다.
자크에 초를 듬뿍 칠하고 자크를 끌어올리면 부드럽게 한번에 옷을 여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울 때에는 적당한 정도로 아래로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욕심 같아서는 주머니에도 자크가 달린 것이면 좋겠는데, 그건 아마도 무지 비쌀 것 같아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혼자 작정합니다.

고개 들어 해가 어디쯤 떨어졌나 쳐다봅니다.
아직 들기댁 감나무위에 걸려 있습니다.
해가 양촌댁 지붕에 걸리고, 꼬마의 그림자가 두배쯤 길어져야 엄마가 돌아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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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설 전날................
시간은 그리도 더디게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기다린 엄마가 오셔서,

"옷이 마땅한게 없어서 못샀다. 올 추석에 사 주꾸마."

라는 말씀에 이유없는 서럼에 목이 메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떼 한번 안 쓰고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옷이라는 물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옷이 따스해서 겨울 나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옷이 고급이라서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신다는,
자신도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다는 것,
그러한 존재가치의 발견이
설 전날 그리도 가슴 설레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먹을 것도 많고,
입을 옷도 많은데..
설은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회원 여러분!
설 잘 쇠십시오. 꾸벅

2001. 1. 19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