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주먹에 대하여 <가을날 오후>

맑은날T 2003. 10. 20. 09:57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내들의 세계에서 힘이란 영원한 이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개인의 육체적 능력에 따른 힘, 정신력, 경제력, 사회권력, 정치권력, 지적능력 등을

포괄하는 것인데, 이러한 여러 가지의 힘 중에 가장 원초적인 힘은 '주먹'으로 표현되는 육체적 능력에

따른 물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주먹의 힘은 육체적인 접촉을 전제로 하는 점에서 원시적이고, 집단적인 주먹도 있지만 그 집단도

개개의 주먹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보면 항상 개별적이다.



이창동 감독이 만든 '박하사탕'이란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설경구가 경찰생활을 그만 둔 후 폐인이 되어서 어느 식당 화장실에 들어서다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어느 장년의 남자를 마주친다.

그 남자는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설경구에게 절을 하고는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남자는 설경구가 공안경찰을 할 때 운동권학생으로 붙잡혀와서 설경구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남자이다.

이미 처벌이 끝났고, 그때로 부터 한참 지났고, 더구나 설경구는 경찰도 아닐 뿐만 아니라 폭력을 가할 의사도

없음에도, 과거의 무자비했던 폭력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이렇듯 '주먹'에 의한 폭력의 기억은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영원하고도 이유없는 공포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주먹,이 차지하는 힘의 구성에 대한 비중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사회제도가 발달할수록 그 비중이

줄어들긴 하지만, '가장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는 말에서 표현되듯이 주먹은 일차적이고 직접적이며 원초적이다.

사실 환갑을 지난 나이의 노인들의 세계에서도 물리적인 완력의 세기가 서열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아이들 세계에도 주먹의 세계로 서열화가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남자들이 초면끼리 대면을 할 때면 악수를 하면서 상대방의 체격과 힘을 가늠해보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의 나머지 힘을 가늠해보는 것이 본능이다.

사실 어느 한적한 골목에서 주먹에 의한 폭력과 맞닥뜨린다면, 법에 의한 보호는 기대할 수도 없고,

설령 사후적으로 법에 의한 보호를 받는다하더라도 그 보호는 이미 보호가 아닌 것이다.

이렇듯 남자 세계에서 힘은 영원한 동경이자, 물리칠 수 없는 두려움이다.




남자로서 이러한 주먹에 대한 구체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시점은 보통 초등학교 무렵이다.

얼마 전 학교 마치고 온 윤석이 표정이 매우 우울해서 아내가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을 하지 않다가

하는 말이 같은 반 아이 3명이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고민을 하다가 퇴근하자마자 이야기를 하면서 대책을 묻는다.

남자세계에서 그런 일은 언제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선생님께 이야기하거나, 부모가 직접 나서면 아이는 고자질쟁이가 되고, 더욱 음성적이고 더 집요한

괴롭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일요일 저녁까지 고심을 하다가 결국 윤석이를 불러놓고 한 이야기는 '네 스스로 해결해라'였다.


'아이들 중 한 명이라고 이유없이 널 괴롭히면,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아이와 싸워라.

싸움에서 힘이 밀리더라도 죽을 각오로 계속 덤벼라.

만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참았다가 기회를 봐서 뒤에서 공격해서 먼저 쓰러뜨린 다음 완전히

기가 죽을 때까지 패라.'



대충 이런 주문이었다.


그리고 화요일 오후 늦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세 명중 한 아이와 싸웠고, 그 아이의 입술을 머리로 받아서 터뜨리고 선생님께 불려가서 벌을 서고 왔다고 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다시 덤비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주 소풍 다녀온 윤석이는 가방을 놓자 마자 친구네 간다며 집을 나서길래 아이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붙잡고 다그치니, 세명의 아이 중 가장 힘 센 아이와 싸움하기로 되어 있어서 놀이터에 가야 한다고 했단다.

아이를 잡아 놓고 아내가 전화로 어쩌냐고 물어보길래 보내주고 몰래 뒤따라 가 보라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윤석이는 소풍 다녀오는 길에 그 아이가 이유없이 팻트병으로 머리를 치길래 결투신청을 했고,

반 아이들이 관전하는 가운데 싸움을 벌인 모양이었다.

머리 하나는 큰 아이와 싸움에서 지나가는 동네 어른들로 인하여 싸움은 그냥 아웅다웅하다가 끝난 모양이었다.



퇴근해서 윤석의 용기를 칭찬해주었다.


"가장 현명한 것은 싸움을 걸어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고,

가장 지혜로운 것은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 일이고,

가장 용기 있는 일은 싸워야 할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넌 오늘 가장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다음에는 너의 현명한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윤석이가 지난 며칠동안 느꼈을 주먹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은 아비인

나로서는 다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겪어왔기에, 그 아이에게 대결을 신청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는지,

그리고 대결신청후 싸움장소에 가는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는 짐작이 간다.

질 수도 있음을 알고 싸우는 것은 용기이다.

윤석이의 그 용기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주먹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 주먹과 부딪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둘 중 하나이다.

주먹을 깨뜨리든가 아니면 그 주먹에 깨어지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주먹에 대한 공포에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



아들의 어설픈 발길질과 어설픈 주먹질, 그리고 이유없는 주먹에 대한 용기를 기려서 한 줄 쓴다.

2003. 10. 20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