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일곱걸음 이야기(七步詩) 제피나무>

맑은날T 2001. 2. 17. 09:44


또 다른 일곱 이야기...

앞의 글에서 칠점사란 뱀 이야기를 잠깐 하였는데, 이러한 일곱이란 숫자를 보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 적어봅니다.

7이란 숫자로 연상되는 것은 많습니다.
가장 흔하게는 행운의 수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자리로 된 솟수 중 가장 큰 숫자, 무지개 빛깔, 북두칠성, 일주일, 옛날이야기의 칠선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그리고 칠성사이다까지................

저는 일곱하면 생각나는 게 삼국지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다들 삼국지 읽어보셨지요?
삼국지의 세나라는 조조(曹操)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를 말합니다.
그중에 일곱과 관련된 것은 조조의 위나라입니다.
'治世의 英雄, 亂世의 奸雄(치세의 영웅, 난세의 간웅)'
이 말은 삼국지의 영웅들 중 중요한 인물인 조조에 대한 관상을 말합니다.
조조가 관상을 잘 보는 이에게 관상을 보러 갔었는데 관상보는 이가 조조를 보고는 모로 앉아서 말을 안 했답니다.
그래서 조조가 다그치자 그는 이 말을 하고는 돌아 앉았고 조조는 앙천대소를 하며 박수를 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게 조조는 유비와는 달리 빠르고 명석하고 냉혹해보이리만큼 철저한 합리주의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수많은 법을 개혁하고 혁신적인 정치를 벌여 수많은 곳의 환영은 받았지만 존경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합리주의가 환영을 받는 시대에 조조는 새로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조는 또 다른 면은 뛰어난 문장가로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맏아들인 비(丕:186∼226)와 셋째 아들인 식(植)도 글재주가 출중했으며 특히 조식의 글재주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조조는 조식을 더욱 총애하게 되었고 한때 맏이인 조비를 제쳐놓고 조식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조조는 조조였지요.
후계자 문제에 고심하던 조조는 결국 그답게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당시의 세태가 난세인 점을 감안하여 냉정하고 현실주의자였던 장남 조비를 결국 후사로 선택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조비의 조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으며 결국 위왕이 된 다음 그 동생인 조식을 없애려고 합니다.
조식을 없앨 명분으로 연회자리에 조식을 불러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먼저 벽에 걸려있는 '소 두 마리가 다투다 한 마리가 우물에 빠지는' 수묵화를 보고 글을 짓되 "두 마리 소가 담 곁에서 싸워 한 마리는 우물에 떨어져 죽었다"는 말은 한 마디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조식은 친형의 명령에 따라 발걸음을 떼면서 시를 짓습니다.

- 두 고깃덩이 나란히 길을 가는데, 머리에는 모두 튀어나온 뿔이 있구나.
- 봉긋한 산 아래에서 만나, 문득 서로 치받게 되었네.
- 맞수가 다 굳세지는 못해, 한 고깃덩이는 흙 구덩이에 쓰러졌구나.
- 힘이 저만 못함이 아니라, 지닌 힘을 다 펼 수 없었기 때문일세.

그러자 조비는 연이어 두 번째 시제로서 '형제'를 주제로 내면서 "너와 나는 형과 아우다. 그걸 제목으로 삼되 조금 전처럼 형이란 말도 아우란 말도 써서는 아니된다."고 합니다.

조식은 다시 발걸음을 떼면서 시를 짓습니다.

-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 (자두연두기)]
-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 원래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건만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 어찌 이다지도 급하게 볶아대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이 두 시 모두 친형제인 형이 동생을 핍박하는 것을 비난하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들은 조비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하나 결국 조식은 조비의 손에 죽게됩니다.

일곱걸음을 떼는 동안에 시를 쓴다는 것, 그것도 시제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내용뿐만 아니라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비난의 내용까지 포함해서 글을 지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문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조식의 뛰어난 문재에 감탄하면서도,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는다'란 비극적이고 극한적인 상황설정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전율을 느꼈으며, 그래서 조식의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거지요.
서양의 신화에도 보면 이러한 상황설정이 몇몇 보입니다.
미쳐서 아들을 던져 죽인 헤라클레스,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등이 그것이나, 이러한 서양적 비극상황은 너무 직설적이고 직접적라서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극한적이고 비참하다는 것이 더 잘 어울리나, 조식의 칠보시(七步詩)에 나오는 콩과 콩깍지의 상황은 간접적이고 은유적이면서도 비극적 상황묘사는 오히려 서양적 상황에 비하여 더 뛰어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냥 칠, 七, 7 하다가 생각나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참, 우리네 옛 어른들도 콩과 콩깍지 같은 상황은 꺼려하여 닭뼈는 닭이 못 먹게 하였고, 쇠고기 국물은 소에게 먹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조의 자식, 그 형제들은 서로 항쟁하면서도 밖에서 공격 받을 때는 서로 도와 막았답니다.

* 뛰어나 글재주를 가진 사람을 七步之材라고 하며, 이 말의 이러한 유래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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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피나무입니다.
알알이 달린 것은 제피열매이지요.
지역에 따라서는 초피, 산초라고도 합니다.
맛이 싸아하니 아주 강한 향신료이고, 추어탕에 주로 넣어 먹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제피를 무척이나 즐겨서 매운탕, 김치, 심지어는 시래기국에도 넣어 먹곤 합니다.
어려서부터 입에 베어서인지 매운탕에 제피를 넣지 않으면 영 맛이 안나고, 그래서 입맛이 까다롭다는 말도 듣곤 합니다.
초봄에 순이 돋아나면 뜯어서 된장국에 넣으면 그 맛이 일품이고, 가을이면 제피열매가 빨갛게 여물지요.
오늘 저녁에는 제피가루 넣은 시래기국이나 한번 먹어볼까요..

2001. 1. 4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