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조금 더 행복해지기 설경>
맑은날T
2001. 2. 17. 09:50
신경끄고 살기 (행복해지기 Ⅱ)
어떤 노인이 살았답니다.
그 노인은 고령임에도 풍채도 좋고 건강도 좋은 분이었답니다.
특히나 부드럽고 길게 흘러내리는 수염이 멋진 노인이었답니다.
멋진 수염 때문에 조조에게 미염공이란 별칭을 받은 관운장처럼 멋진 수염이었지요.
그 노인은 자신의 수염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고 아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멋진 수염 때문에 고통스러운 인생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지요.
사건은 아주 사소한 질문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그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어르신은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십니까? 아니면 밖에 내고 주무십니까?"
갑자기 질문을 접한 노인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그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지 때문에 어떻게 하고 잤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거지요.
그날 밤 노인은 잠자리에 누워서 수염을 이불 속에 넣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잠을 청하려니 갑자기 수염이 답답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밖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웬지 수염이 추운 느낌이 들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수염을 반만 내어 보기도하고, 수염까지만 이불을 덮어보기도 하였지만 어떤 것이나 맘에 차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밤 이후로 노인은 밤마다 수염의 위치 때문에 잠도 잘 수 없었답니다.
그 노인의 멋진 황혼은 그날 이후 갑자기 밤이 되고 말았답니다.
고등학교 무렵 일본 단편소설에서 읽은 것으로 기억되는 글입니다.
아주 짧은 단편들로 기억되는데 촌철살인의 번뜩이는 무언가가 있어 좋았단 기억이 아직도 남습니다.
다른 내용들은 다 잊어버리고 위 이야기만 기억이 남네요.
그때는 책도 참 많이 읽었는데........
세상을 살다보면 신경써야 할 일도 많고 신경쓰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신경써야 되는 일도 있지만 신경쓰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결정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신경써야 하는 일인줄 알면서 대부분 맘만 먹다 그냥 넘어가고 그래서 결국은 신경쓰이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들...어떤 일의 결정이나 또는 그 결과에 영향을 못 미치지만 신경쓰이는 일들....
이런 일들에 신경을 완전히 끄고 살아보기........
또 다른 행복의 발견이라 생각해봅니다.
우리네가 걱정하는 일들의 90%는 이미 그 전부터 해왔던 걱정이고 그 걱정의 90%는 이미 결정되었거나 당사자이 걱정이 그 일에 전혀 영향을 못 미치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네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걱정해도 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란 뜻이지요.
때때로,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을 강 건너 불 보듯이 바라보기........
또 다른 행복찾기라 생각해봅니다.
수염이 이불 속에 있든 이불 밖에 있든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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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소식이 궁금해지고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어디에선가 첫눈이 내렸다는 라디오 방송에 덩달아 가슴이 설레지곤 합니다.
밤새 몰래 내린 눈은 돌담에도, 초가지붕에도 골고루 쌓였습니다.
까치밥 마저 떠나간 엉성한 감나무 가지에도 병아리 눈물만큼의 눈이 바람을 견디고 있습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것처럼 개운한 하늘은 에메랄드 빛으로 차게 반짝입니다.
2000. 12. 12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