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의 5개월(6) 바람소리>
맑은날T
2001. 2. 17. 09:58
4. 자살, 그 자신의 완전한 방기(3)
그렇게 밤을 새고 아침이 되자 병원의 운전사 한군이 식사하라고 교대를 하러 왔습니다.
아침 8시 무렵 병원에 돌아와서 병동에 들어서자 기가 차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층 세면장은 피가 약간 흐른 바닥과 그가 목을 매단 붕대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고 환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장을 찾으니 아직 술에 깨지 않았고 원장도 마찬가지라 했습니다.
더구나 아직까지 파출소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사도 못하고 곧바로 파출소에 달려가서 사건신고를 했습니다.
파출소에서 들어 가 보기도 처음이려니와 딱딱한 철제의자에 앉아서 조서를 작성하기도 처음이었습니다.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밤샘을 한 경찰은 왜 이리 신고가 늦었냐며 추궁을 하면서 피곤과 짜증이 적당하게 섞인 모습으로 한참이나 조서를 작성한 다음에 무턱대고 무인을 찍으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래도 배운 것이 법이라고 참고인의 권리를 생각하면서 진술조서를 천천히 끝까지 읽어보고 나중에 혹여 병원측의 과실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하여는 정정을 요청하였고, 파출소 경찰은 기가 차다는 듯이 짜증섞인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정정을 하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신고를 마친 다음에 병원으로 돌아와서 신고내용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경찰과 신문, 방송국 기자들이 몇 차례 다녀갔고 그날 저녁에 저는 드디어 제 이름 석자를 부산전역에 드날리게 되었습니다.
부산일보 석간신문에 "..한편 최초로 목격한 '맑은날씨'에 따르면...."라는 기사가 실렸고 이 소식을 들은 박형빈씨의 생모는 영안실에 달려와서 꽁꽁 얼어붙은 아들의 시체를 껴안고 통곡을 하다가 급기야는 뜸으로 소생시킨다면서 죽은 아들의 시신에 뜸을 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 지나서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저와 그날 당직을 선 간호사는 경찰서로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그의 생모가 상속을 해 주기 싫어서 재벌 쪽과 병원이 공모하여 살해하였다는 취지로 고소를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뒤 경찰서와 부산시경 강력반에 수 차례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자꾸 살인의 추궁을 받다보니 급기야는 나 자신조차 '병원이 진짜 재벌하고 짜고 살해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살다 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의 스물 두 살의 봄은 갔습니다.
중간고사를 치뤘다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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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자고 있을 때 혹시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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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고만 계시죠..
그럼 바람소리가 들릴테니까요..
먼 기억의 저편에서 불어보는 하얀 바람소리가...
2000. 11. 17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