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의 5개월(4) 억새풀>
맑은날T
2001. 2. 17. 10:02
4. 자살, 그 자신의 완전한 방기(1)
제가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박형빈(가명입니다)이라는 멋진 남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다니다 휴학한 사람이었는데 키가 약 180정도이고 덩치도 좋을 뿐만 아니라 귀공자 타입의 미남이었습니다.
부리부리하고 살짝 쌍거풀진 큰 눈, 시원하고 맑은 이마, 부드러우면서 묵직한 표준말, 재치와 유머를 겸한 말재주, 적당하게 각지면서도 원만한 턱선....
가끔씩 침울하고 골똘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대체로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곳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 올 때 상태는 무척이나 안 좋았는데 이제 많이 호전되어 곧 퇴근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저와는 서로 호형하면서(사실 나이는 제가 많이 어렸지만 그래도 저는 스텝이었으니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는 부산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재벌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재벌은 이미 80을 헤아리는 고령이었고 그의 자식은 박형빈씨를 제외하고도 무려 7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퇴원한 3월 말까지 아무도 면회를 온 적이 없었습니다.
이쯤이면 그가 태어난 것과 가족환경이 약간은 이례적이란 것을 알수 있겠지요.
그는 그 재벌이 노년기에 낳은 배 다른 자식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만 자라다가 그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홀어머니가 재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하면서 자신도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 자신의 태생은 사회에서 불륜으로 지칭하는 그런 관계 속에서 자라났다는 사실, 그의 생부가 그를 친자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소송까지 불사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소송은 홀어머니의 승소로 확정되고 박형빈씨는 그 재벌의 막내아들로 입적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의 문제로도 한창 민감할 사춘기에 그는 자신의 근본인 태생의 문제까지 겹치자 그는 그때부터 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나타난 증상을 그는 용케도 이겨내고 대학진학까지 한 것은 어찌보면 그의 의지도 강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유쾌하고 쾌활하게 병실생활을 하다가 3월 말경에 모든 병실사람의 부러움을 사면서 퇴원을 하였습니다.
4월 중순 어느날 학교를 다녀오니까 그가 다시 와 있었습니다.
눈가의 검은 그림자, 짙고 무거운 표정, 손목에 감은 압박붕대,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인사를 나눌 때의 미소(입가의 근육을 억지로 위로 끌어올리는 듯한 어색한 미소)에서 그의 상태가 꽤나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밖에 나가서 사회적응에 실패하고 자살을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깡통을 따는 도구로 손목을 동맥을 그었다가 발견되고 병원으로 다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그의 말에 따르면 사회는 자신이 살기에는 너무 더럽고 치사스러운 곳이라 했습니다.
병실의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회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온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수치스러워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고뇌와 번민의 짐을 짊어진 모습으로 다시 병실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다시 병원에 들어온 지 열흘 정도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1986년 4월말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때도 여느 때와 같이 학교를 다녀와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환자들 청소를 한 다음 간호사실에서 공부를 좀 하다가 11시가 되어서 제 방(따로 정해진 방은 없고 간호사실에 붙은 병실은 대부분 비어있었으므로 그 병실의 침대를 제가 사용했습니다)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잠을 자는 도중에 그날 당직 간호사인 한양이 갑자기 깨웠습니다.
졸린 눈을 부비면서 왜 그러냐니까 세면장이 안에서 잠겼는데 어떻게 여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동전이나 열쇠의 머리부분으로 열라고 알려주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병동내의 모든 문(세면장, 화장실, 병실 등)은 안에서 콕을 눌러서 잠그더라도 특별한 키가 필요없이 동전 같은 것으로 열쇠구멍대신 홈이 파인 곳에 끼워서 돌리면 열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 당직간호사가 그걸 모르니 짜증이 날만도 했지요.
다시 잠을 들려고 이불을 추스리는 순간 간호사가 다시 왔습니다.
"문을 못 열겠어요.. 김군이 좀 열어봐요. 안에 김형빈씨가 들어간지 좀 됐어요"
순간 저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달려갔습니다.
그 몇 발짝되는 걸음을 걸으면서 제 머리 속에는 세면장안의 풍경이 훤하니 그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세면장 문을 따고 불을 켜는 순간 제 눈에 들어온 광경은 제 상상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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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입니다.
이제 머잖아 햇살이 잘 드는 야산 언저리나 무덤주변에서 이런 풍경이 많이 보이겠지요.
늦가을의 메마른 햇살을 받고 피어있는 이 사진은 제가 몇 년 전에 구한 것인데 가을이면 꼭 한번씩 꺼내보곤 합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늦가을 이런 억새풀밭에 혼자 앉아 두 시간이나 세시간 쯤 억새와 함께 해바라기를 하고 싶어지곤 합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렇게 같이 억새가 되고 싶어집니다.
가을에는...
2000. 11. 2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