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의 5개월(1) 코스모스>
맑은날T
2001. 2. 17. 10:09
1.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대학교 2학년때 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5개월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1996년 2월부터 6월까지 생활을 했지요.
그렇다고 제가 정신병원에서 감금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의 아르바이트라 하면 대부분이 과외교습이었지만 그 당시는 불법이어서 몰래하는 몰래바이트였지요.
그때 제가 한 아르바이트는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정신병동에서 밤에 자면서 급한 일이 생기면 이를 수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게 맞겠네요.
그때 제가 하는 일을 "night"라고 불렀습니다.
제 근무시간은 학교를 마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인데, 사실상 하는 일은 밤까지 공부하다가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가끔씩 증상이 심한 환자를 다룰 때 도와주는 게 제 일과의 전부였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밤에 혼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정상인 남자 한 명'이 있다는 심적 안도감을 주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보수는 숙식제공과 월 7만원이 전부였으나 제가 근무하기로 결정한 동기는 2학년은 기숙사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학교규정에 의하여 2학년부터는 혼자 자취를 하거나 버스로 한 시간거리에 떨어진 큰형 집에서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자취한다는 것은 고등학교 때 3년간 해 본 적이 있어 신물이 난 것도 있었지만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싫었고 형님네 집에서 다닌다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곳에 근무하게 된 계기는 제가 1학년 겨울방학 때 공사현장에서 속칭 '노가다'란 것을 했는데 기초공사를 하는 노가다 현장에 인접한 정신병동에서 마당이 갈라졌다는 항의를 하였고 이를 보수하러 가서 일을 하면서 그 정신병동의 사무장이 노가다 십장에게 저를 소개받은 게 동기였습니다.
사실 폐쇄정신병동에서 같이 갇혀서 밤을 샌다는 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독립한다'는 생각으로 전격 결정을 하고 2월부터 그 병동에서 통학을 하였습니다.
스무명 남짓한 환자가 입원중인 병원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제가 봐도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이유를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대여섯명정도는 한눈에도 증상이 심해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왼 종일 중얼거리면서 마루를 배회하는 사람, 혼자 하루종일 방에 박혀 지내는 사람, 갑자기 집에 간다고 잠긴 문을 부수려하는 사람, 하루종일 아침에 최초로 들은 말만 반복하는 사람 등등...
정신분열증, 조울증, 편집증, 피해망상증, 심한 컴플렉스, 알콜중독자, 게이 그리고 집에 안들어오고 담배피고 춤추러다닌다고 아버지가 강제 입원시킨 미스코리아 낙제생도 있었고 폭행사고내고 정신병자 행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동안은 밤에 병동에서 생활한다는 게 무척이나 생소했고 갑갑하였으며 아침에 청소 끝내고 사무장이 출근한 다음 학교가기 위하여 병동을 나서는 순간 야릇한 해방감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간 침울하고 폐쇄적인 원장선생님, 지나치게 조신하고 수줍음이 많은 운전사 한군, 방정맞은 웃음과 행동 때문에 맨 날 사무장의 부인에게 뒷 욕을 먹는 임상심리사, 마누라에게 꼼짝없이 쥐어 살면서도 항상 어딘가로 떠날 듯한 눈동자를 보이던 사무장, 히스테리컬한 사무장의 부인, 공주병이 무척이나 심하던 원장 사모님, 그리고 하루는 방방 뛰다가 다음날은 침울해지는 조울증의 장 간호사 등 대부분의 병원관계자들도 제 눈에는 환자들과 거의 구분이 안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한달 정도를 생활하면서 제가 환자들의 공통점이라고 느낀 것은 정신병자의 대부분은 유약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음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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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입니다.
엊그제 내린 가을비로 대부분의 코스모스는 떨어지고 이젠 없겠지요.
신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고 합니다.
어린 날 학교 다녀오는 길에 길가에 흐드러진 코스모스를 한 송이 따다가 8개의 꽃잎을 하나 걸러 하나씩 떼어내고는 팔을 높이 들어 바람 속에 떨어뜨립니다.
천천히 허공을 맴돌면서 떨어지는 코스모스 바람개비.....
누가누가 오래 머무나 내기도 하곤 했지요.
2000. 10. 25 코스모스가 진 가을날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