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살밥이 아니라 쌀밥..(2) 탱자>

맑은날T 2001. 2. 17. 10:16


제가 대학 다닐 때 였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다음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다가 제 친구들은 모두 'ㅆ'발음이 되는데 유독 저만 그 발음이 안되는 걸 알았습니다.
즉 경남지역 사람은 발음이 되는데 청도를 포함한 대구인근 지역 사람들 중 일부가 'ㅆ'발음이 안된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날도 수업 마치고 그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과 같이 당구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뒤쳐져서 따라가면서 발음연습을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살(쌀)" (살)
"살(쌀)"
"살밥(쌀밥)"
"사래기(싸래기)"

여러가지를 혼자서 발음을 하다가..아무래도 이런 경음(아마 격음인지 모르겠네요^^)을 발음하는 데는 욕이 최고다 싶어 욕을 가지고 발음연습을 하면서 혼자 뒤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십새끼(씹쌔끼)" (죄송합니다...남자들 다 잘 해요^^)
이렇게 십새끼를 혼잣말 비슷하게 중얼거리다 큰 소리로 발음을 해 봅니다.

"십새끼(씹쌔끼)"

그러다 깜짝 놀랐습니다.
제 앞에 오십줄에 접어들어 뵈는 아저시(아저씨) 한 분이 걸어오시다가 갑자기 제가 하는 욕을 듣고 인상을 험악하게 짖고 계신 거 였지요.
"니 머라캤노?"(너 뭐라고 그랬니?)
"예에?"
"니 금방 내보고 욕했다 아이가?"(너 방금 나보고 욕 했지?)
"아인데예~"(아닌데요~)
"일마가 미친나?. 지금 여 내빡에 없는데 그라마 누구보고 욕한기고?"(이놈이 미쳤어? 그러면 여기에 나 밖에 없는데 누구보고 욕한거야?)
"죄송합니더~"

결국 저는 그날 변명도 못하고 미친 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발음연습하는 중이라고 해봤자 더 미친놈이 될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ㅆ' 발음은 신경을 쓰면 됩니다.^^
'ㅡ' 발음은 아직 안되고 앞으로도 안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걱정인 것은 우리 얘들이 제 발음을 배울까 하는 겁니다.
그늘, 그네, 드라마, 르느와르, 즐거운.......'ㅡ'발음이 들어가는 받아쓰기 같은 것 할 때마다 헷갈리는 심정.......... 당해보면 압니다^^


참 경남 남해 사람들은 'ㅛ' 발음을 못합니다.(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은..)
'ㅛ'를 그냉 'ㅗ'로 발음하지요.
그래서 '학교'를 '학고'로 하더라구요.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중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들 눈치만보고 아무도 손을 안드는데 남해 친구가 갑자기 손을 들면서 하는 말이....

'고수님~ 제가 대포로 발포 하겠습니다~'

이궁 아예 미사일을 쏘지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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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 꽃입니다.
하얀 꽃모양이 찔레꽃과 닮았는데, 꽃잎이 더 길고 약간 큽니다.
꽃은 오뉴월에 피고 여름내 동그랗고 파란 탱자가 열렸다가 늦가을이면 노랗게 익습니다.
탱자나무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울타리로 많이 쓰이고, 옛날에는 성벽으로도 심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국어책엔가 나오는 말이 있죠.
'감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탱자는 감귤의 사촌쯤 되어 탱자 묘목에 감귤을 접붙힙니다.
남해의 유자는 탱자와 감귤의 중간쯤이랄까요...

어린 시절 아무 맛도 없이 시큼한 탱자열매가 탐스러워 손을 찔려가면서 열매를 따던 기억이 나는 아침입니다.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
누구를 밸 수도 없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칼날을 베고 잠들던 날
탱자꽃 피어 있던 고향 집이 꿈에 보였다.
내가 칼날을 키우는 동안
탱자나무는 가시들을 무성하게 키웠다
그러나 꽃잎도 함께 피워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가 환했다

꽃들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
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 가는 나는
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
탱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이 있다

침을 발라 탱자 가시를 손에도 붙이고
코에도 붙이고 놀던 어린 시절
바람이 와서 탱자 가시를 가져 가고 살을 가져 가고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나는 탱자 꽃잎보다 얇아졌다
누구를 벨지도 모르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 나희덕님의 시입니다.


2000. 10. 18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