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홀몸도 아니신데~ 물봉선화>

맑은날T 2001. 2. 17. 13:37

드디어 광복(光復)도 지났으니 올해의 사복(四伏) 더위가 다 지났네요^^
이제 가을 준비를 해야할까 봅니다.
남은 여름 잘 보낸 사람만이 결실찬 가을을 맞이하겠죠
건강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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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도 아니신데....


5년 전쯤 가을로 기억됩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저는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탔습니다.

보통 열차여행을 하면 새마을호를 탑니다.
그것은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몸집이 커서 넓은 자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만 입석승객이 없어서 앉아 가는 게 눈치 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부산에서 대학친구들이 계모임을 한다고 하여 뒤늦게 표를 구하다보니 새마을호는 이미 매진이었고 하는 수 없이 무궁화호 차표를 구입한 것입니다.
그날 무궁화호는 그야말로 만원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첨 왔을 때 부천에서 서울로 출퇴근 할 때의 그 지옥철(푸쉬맨이 있던)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앉은 자리는 차량의 제일 앞쪽 줄 복도 쪽이었지요.
그 자리가 열차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자리입니다.
수시로 드나드는 승객, 열차소음 등으로 다른 좌석과 똑 같은 자리 값을 치루는 게 억울한 자리이지요.

제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차는 출발하였습니다.
첨부터 만원이었던 열차는 구포, 밀양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바늘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지경으로 붐볐습니다.
밀양에 차가 섰을 때 할머니 한 분이 타셨습니다.
물론 입석이었죠.
그 분은 앉을 곳을 찾아 헤매시다가 결국은 제 발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습니다. ㅜ.ㅜ;;

저는 무지 갈등을 했죠.
보통의 경우라면 저는 자리를 잘 양보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밀양에서 서울까지는 다섯 시간, 게다가 전날 밤은 새벽 네 시까지 포커를 치면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제 가벼운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지는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할머니가 가까운 대구나 구미 정도 가신다면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얼핏 본 할머니의 차표에는 '수원'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얼른 자신을 합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거리라면 몰라도 수원까지는 너무 먼데......'
'그래.. 할머니는 저렇게 신문지 깔고 앉아 가실 수도 있을 거야...'
'할머니같은 옛 분들은 쪼그리고 앉는 게 더 익숙할 수 있을 게야..'

물론 주변 사람들이 따갑게 쳐다보고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온 얼굴이 간질거렸지만 그렇다고 제가 '할머니 영동까지만 앉아 가실래요?' 라고 흥정할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대전까지 가서 그쯤에서 자리를 양보하기로 작정하고 억지로 눈을 감고 다리로 못펴고 오므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구미역에서 터졌습니다.
구미역에서 열차가 서자 또 다시 엄청난 사람들이 탄 것이었습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선잠을 들었다가 밀고 밀리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제 어깨를 미는 승객들로 잠이 깼습니다.
곧 바로 열차는 출발하고, 눈을 들어보니까, 바로 눈 앞에 자그마한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무지 착해 보이고 배가 약간 볼록하게 보였습니다.
어찌보면 떵배같기도 하였는데 그래도 불룩한 정도가 임신 4-5개월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뒤에서 밀어대는 승객에게 밀려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열차는 지하철과 달라서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도 없습니다.
그 여자는 한 손으로 열차 출입구 모서리를 잡고 겨우 버티고 선 상태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은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 때 제 아내는 둘째를 가진 상태였고, 아이를 가진 임산부의 무거운 몸과 오래 서 있을 경우 허리의 무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로 하였습니다.

"저~. 여기 앉으시죠."

그런데 여자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네에??. 괜찮습니다."

갑자기 저는 몸을 둘 곳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주위 모든 사람과 그 할머니가 저를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 딴에는 좋은 일 한다고 자리를 양보한 것인데... 사람들은 틀림없이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 안하는 넘이 아가씨에게 자리를 양보한다'고 욕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입니다.
정말 미치겠더군요..
그렇다고 임신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아가씨의 배를 몇 번이나 쳐다보다가 저는 드디어 임신 사실에 확신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제 입장을 설명하듯이 다소 큰 목소리로....

"저어 홀몸도 아니신데 앉아 가시죠..."

"어머머~. 전 아직 결혼 안했는데요..."

".........-_-;; "

주위사람 몇 명이 웃음을 참느라 난리였고, 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그 임신부(?)는 자리를 옮겼구요....
그 아가씨는 원래 떵배가 좀 나온 데다가 뒤에서 밀어대는 통에 몸이 앞쪽으로 밀려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로 앞으로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할 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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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화입니다.
산골짜기나 냇가 늪지 등 습기가 많은 곳에 많이 자랍니다.
이맘 때 한창 피는 꽃이 참 예쁘고요, 꽃보다도 붉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매끄러운 줄기와 초록이 매우 진한 잎도 일품입니다.
뿌리는 호호백발같이 하얗구요.

꽃이름이 봉선화(봉숭아)랑 비슷하죠?
맞아요.
꽃모양도 닮았고, 꽃씨를 터트리는 것도 봉선화랑 닮았습니다.
봉선화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Don't touch me)'인 거 아시죠?
봉선화 꽃씨가 익으면, 꽃씨를 건드리면 꼬투리가 탁 터지면서 씨앗을 멀리 날려보내죠.
물봉선화도 익은 꼬투리를 건드리면 탁 하고 터진답니다.
그런데 꼬투리는 윤기흐르는 고추같이 매끈한 물봉선화가 훨씬 예쁘답니다.

봉숭아 꽃말 유래 한마디...(그리스 신화)

옛날에 한 여인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정든 올림포스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통 들어주지 않자, 너무나 속이 상해 결국엔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봉선화가 되었습니다.
봉선화가 되어서도 한이 풀리지 않아 누구라도 자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씨주머니를 터뜨려 자기의 결백을 나타내고 속을 뒤집어 보이고 있답니다.

2000. 8. 16 맑은날 ksg4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