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유년기의 회상 (소 먹이기) 쇠뜨기>
맑은날T
2001. 2. 17. 14:29
비 오는 10리 흙 길을 찢어진 우산들고 등교하던 산골소년이,
흙탕물에 미끌거리는 고무신을 몇 번이나 추스려 신다
끝내는 한 손에 움켜들고 등교하던 산골소년이
이제는 비오는 출근길에 차 막힌다고 투덜댑니다.
훌쩍 커 버린 소년의 어린 날의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벌써 그 소년보다 몇 배는 영악해져버린 소년의 아들 이야기,
나무와 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여름 방학이 되면 온 동네아이들은 소 풀을 뜯겼다(소년의 동네에서는 소를 먹인다고 했다).
오후 3시정도가 되면, 온 동네아이들은 자기네 소를 끌고서 동네 가까운 산으로 올라간다. 산에 가서 소 끄는 줄을 소뿔에 감아서 소들은 산으로 올려보냈다가 해 질 무렵에 다시 소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소년의 집에도 소가 있었다. 순하디 순한 암소가...
가끔씩 껌벅이는 커다란 눈망울, 약간 흰색이 도는 노란 털을 가진 소였는데, 소년의 아버지는 쟁기질이랑 수레질을 잘 한다며 여간 아끼는 게 아니었다.
산에서 소를 먹이면 소들은 참 현명하게 행동하였다. 대부분의 소들은 함께 몰려다니면서 풀을 뜯었다. 따로 떨어져서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같이 산 아래로 내려오곤 하였다. 따라서 산에서 소를 먹이는 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쉬운 일이었고 그래서 동네 아이들은 소 먹이는 걸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었다. 가끔씩 소들이 해가 저물어도 산 아래에 내려오지 않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면 산위로 올라가서 소를 찾아 찾아 와야 했다. 그리고 소들 중에 한 마리가 산에서 송아지를 낳게 되면 소들은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산에서 야영준비를 하는데, 소들의 야영준비를 보면 초식동물의 본능이 나타나고 그 본능이 참으로 아름답고 현명한 것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먼저 소떼는 공터가 넓은 산소를 찾아서 그곳에서 송아지를 낳는다. 그러면 나머지 소들은 뒷다리를 밖으로 향한 채 갓 태어난 송아지와 막 출산한 어미소를 빙 둘러서서 지키며 밤을 새울 준비를 한다. 만일에 있을 지 모르는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이렇게 산에서 송아지를 낳으면 동네 어른들은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송아지를 지게에 얹어가지고 오곤 하였다.
산에 소를 올려놓고 해질 때까지의 놀이는 공기돌하기, 물놀이, 가재잡기, 술레잡기, 자치기, 오징어, 사방놀이, 고누놀이 등 무진장 많았다. 그 중에서 술레잡기는 위험천만한 놀이긴 해도 참으로 재미있는 놀이였다. 커다란 감나무에 아이들이 예닐곱명이 올라간 다음 술레는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가지를 타고 다른 아이를 잡으러 다니는 것이었다. 물론 나무 아래로 내려가면 반칙으로 술레가 된다. 큰 나무에서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술레를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무에서 떨어져 다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날도 일곱살 난 소년은 동네 형들과 누나들을 따라 소를 먹이러 갔다. 안골이라는 골짜기였는데, 지금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 소년에게는 꽤나 큰 산이었다. 놀이에 끼지 못하고 나무아래에서 술래잡기하는 걸 목이 저리도록 구경하다가, 개울에서 가재를 잡으면서 놀았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소를 찾으러 갈 때가 되었다. 소들은 으례 그러듯이 산비탈에 내려와서 한가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소년의 소는 보이질 않았다. 주변을 아무로 돌아다녀도 보이질 않았다. 다른 형이랑 누나들은 모두 자기네 소를 끌고 마을로 내려 가 버렸다 소년이 곧 소를 찾으려니하고.........
소년은 혼자서 산에 올랐다. 이 골짝 저 골짝을 소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싸리나무에, 망개나무가시에 팔다리가 긁혀도 아픈 줄을 몰랐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온 몸을 타고 오르는 무섬증과 산짐승의 소리나 산새들의 날개 짓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면서 그렇게 산을 타고 헤매었다. 그냥 집에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웬지 지금 가버리면 소는 영영 딴 곳으로 도망가 버릴 것만 같았고, 어두워진 산에서 소없이는 무서워서 혼자 내려갈 자신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산을 헤매는 중 갑자기 산 위에서 맑은 워낭(시골에서는 요령이라 불렀다)소리가 들렸다. 혼자서 풀을 뜯는데 열중한 소년의 소는 나머지 소와 동떨어지게 되었고, 날이 저물자 무덤을 찾아서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반가움으로 활칵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반가움이 섞인 원망으로 소의 등을 철썩하니 몇 대 때렸다. 이미 어두워진 산길을 소를 몰고 내려오던 소년은 길 중간에서 소년의 형을 만나자마자 엉엉 소리내어 참았던 울음을 울었다.
요즘 일곱살 난 애들은 그때의 저보다 훨씬 튼튼하고 덩치도 크지요.
그러나 혼자서 산을 탈 수 있을까요...
7월이 끝나갑니다.
예전이면 이맘 때 소먹이기가 한창이었는데, 지금 시골에서는 소먹일 아이들이 없어서 소먹이는 일은 없답디다.
그러다 보니까 요즘 시골의 소들은 발톱이 길게 자라서 틈틈이 잘라줘야 할 형편이 되었구요, 산길에는 잡초들이 마구 자라나서 길도 없어지고, 성묘 때 외딴 산소에 갈 길이 막막해진답니다.
~~~~~~~~~~~~~~~~~~~~~~~~~~~~~~~~~~~~~~~~~~~~~~
쇠뜨기입니다.
소가 잘 먹는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 같구요, 뱀풀이라고도 부릅니다.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에 속하는데요, 고사리는 산에서 자라는데 이놈은
뚝이나 양지 풀밭에서 흔히 볼 수 있답니다,
봄에 자라는데요, 봄에 허기진 소들을 초록빛으로 군침삼키게 하기 때문에
초봄에 소를 이용하여 쟁기질 하던 우리 아버님들을 힘들게 만든 풀입니다.
2000. 7. 30 맑은 날 ksg4u@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