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저수지 그리고 生과 死의 갈림길.. 닥나무>

맑은날T 2001. 3. 5. 10:05

비 오는 10리 흙 길을 찢어진 우산들고 등교하던 산골소년이,
흙탕물에 미끌거리는 고무신을 몇 번이나 추스려 신다
끝내는 한 손에 움켜들고 등교하던 산골소년이
이제는 비오는 출근길에 차 막힌다고 투덜댑니다.

훌쩍 커 버린 소년의 어린 날의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벌써 그 소년보다 몇 배는 영악해져버린 소년의 아들 이야기,
나무와 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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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철입니다.

모두들 산으로 들로, 자동차로 혹은 기차로, 가족과 연인과

혹은 친구들과 그리고 가끔은 혼자 짐을 꾸리고 떠납니다.

여름철이 되면 꼭 피서를 가야한다는 강박관념 비스무리한 게 우리네

삶에는 어느새 배어 있나 봅니다.


저는 여름철이면 꼭 피서를 가야한다는 생각은 없는데, 가족들에게

서비스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은 여름철이면 늘 머리 속에 맴돌곤

합니다.

옆집 소연이네는 어디로 가고, 위층 예지네는 어디로 가고, 아래층

누구네는 또 어디로 간다는 말을 들으면 특히 더 그렇지요.


저는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합니다.

등산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물을 싫어해서 라는 게 맞는 말 같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두 세 살 무렵에 개울에 빠져 죽을 뻔 하였고,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여섯살 때 저수에 빠진 기억 탓인지는 몰라도

어릴 때부터 물을 싫어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본능적인 물에 대한 공포감 외에도 물에 가면 벗어야

한다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척 말랐거든요 --;;

그래서 저는 바다나 강보다는 산에 가길 즐겨합니다.



오늘은 여섯 살 때 저수지에 빠진 얘기 할께요.


아마도 이맘 때 쯤으로 기억납니다.

형 세 명(가족이 많지요^^ 동생도 둘 더 있어요 --;)은 학교에 가고

저는 부모님을 따라 저수지 옆에 있는 밭에 갔습니다.

산도(山稻)밭으로 기억나는데, 산도는 밭에서 키우는 벼입니다.

부모님은 뙤약볕 아래 김을 매고 계셨고, 저는 혼자서 하릴없이 놀다가

저수지에 미역을 감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그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 지름만도 100미터는

족히 되는 큰 곳이었습니다.

저는 저수지로 물이 흘러드는 곳에서 미역을 감고 있었습니다.

저수지에서 물이 흘러드는 곳은 모래가 많이 흘러들기 때문에 한참을

들어가도 깊지가 않지요.

얕은 곳에서 퐁당거리다가 갑자기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픈

호기심이 일어났지요.

그래서 그 호기심에 떠밀려서 조금씩 들어가다가 가슴께를 넘는 물을

조금 지나자 갑자기 발 밑의 모래가 무너지면서 키를 넘어버리는

물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모래가 떠밀려 내려온 끝이었던 것입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나는 정신없이 몇 번을 버둥거리다 모래에 발이

간신히 걸려서 그곳을 딛는 순간 모래는 다시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고,

그러길 몇 차례 하다가 힘도 빠지는 것 느꼈지요.

'아!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터무니없게도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얼마나 슬퍼할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교차하였습니다.

그러다 최후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물 속에서 장난하면서 머리를 물 속에 박고 손발을

버둥거리면 앞으로 조금씩 가는 걸 아는 나는 마지막으로 머리를

물 속에 박고 저수지 가장자리로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손짓 발짓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꺼꾸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머리끝이 쭈뼛서는 공포감도 들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숨이 목까지 차 오를 때까지 손발을 버둥거리고는 발을 내렸습니다.

그때 발 밑에 닿는 든든한 모래감촉...........

아마도 그 감촉과 그때의 안도감은 평생을 잊지 못할 겁니다.

물을 마셔서 배가 볼록한 채 저수지를 기어나와서 한여름 햇빛아래에

한참을 누워 있다가 부모님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갔습니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그 일을 모르고 계시지요.

그때는 혼날까 말 못했고, 커서는 서운해하실까봐 말 못 한거지요.






어릴 때 저 또래는 그렇게 자랐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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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나무입니다.

닥나무가 뭔지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우리 전통 한지를 만드는 원료지요.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한지를 만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 닥나무의 용도는 놀이기구였죠.

닥나무 껍질을 벗겨서 그걸로 팽이채를 만들면 굉장히 튼튼하지요.

뽕나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마도 사촌쯤 되나 봅니다.

잎도 닮았구요, 열매의 모양과 색깔도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닮았어요.



2000. 7. 9 맑은 날 ksg4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