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채변검사(2) 꿀풀>
맑은날T
2001. 3. 8. 09:04
채변검사(2)
며칠 전부터 제 칼럼에는 온통 냄내가 판을 치고 있네요.
여러분들의 호응이 이리도 따끈따끈할 줄은 생각도 못했지요.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리얼하고 세밀한 묘사를 하였을 텐데....
국민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제 기억으로는 1학년 때에는 채변검사를 안 한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채변봉투를 받은 저희들은 봉투를 열어보면서 호기심, 궁금증, 지저분함 등의 오묘한 감정으로 몸서리를 쳤지요.
저는 봉투를 받자 마자 예의 꼼꼼함으로 봉투의 첨부터 끝까지 꼼꼼히 다 읽었습니다.
물론 안 읽어봐도 어떻게 하는지는 위로 형들이 세 명이나 있어서 훤하게 알고 있었지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가끔씩 형들에게 떵을 빌려준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때 빌려준 떵을 아직 못 받았습니다. 이자 붙여서 돌려 받으면 아마도 차 두 대나 세대 정도는 되겠지만 형제간에 빚 갚으라기엔 뭣해서 지금껏 참고 있고, 나중에 제가 농사를 지으면 돌려받을 계획입니다..........-_-;;)
봉투에는 큼지막하게 "채변봉투"라고 제목을 붙여서 조미료 봉투나 과자봉지, 기타 의약품 봉투로 오남용을 하지 않도록 친절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상단에는 "기생충을 박멸하자"라는 당시 특유의 이데올로기적 상투문구가 들어간 표어가 있었고, 그 아래로는 표를 만들어서 이름하고 반 학교를 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하단에 깨알같은 글씨로 채변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안내를 하고 있었고 이 문구만큼은 지금까지도 기억합니다.
『깨끗한 곳에서 대변을 본 다음 밤알크기의 대변을 각기 다른 세 곳에서 채집하여 비니루 봉지에 넣고 밀봉하시오』
저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하나하나 분석을 하였고 대부분은 오류없이 분석하였습니다.
먼저 깨끗한 곳에서 대변을 보라는 것은 다른 이물질이 들어갈 것을 염려한 것이니......신문지 깔고 보면 되고,
각 다른 세 곳에서 채취하란 것은 기생충 알이 한 곳에 몰려 있을 경우에 발생할 검사상의 오류를 줄이자는 취지이니 그냥 따라하면 되고,
밀봉하란 것은 수집과 이동 중의 파손이나 향기의 부적절한 번짐을 방지하기 위한 것임은 알겠는데...
도대체 밤알크기라니.......!!!!!!!!! ????
비닐의 크기를 놓고 볼 때 외톨배기 밤알은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고 세톨배기 밤알 하나만 넣어도 꽉 들어 차 버릴 작은 봉투에 한 알도 아닌 세알씩이라니........
혹시나 '밥알'을 '밤알'로 잘못 적은 게 아닌가하고, 다른 친구들의 봉투까지 살펴봤지만 모두 '밥알'도 '팥알'도 아닌 밤알이었습니다.
그때 머리 속을 가득 헤집고 밀려드는 혼돈과 막막함을 형들의 전례를 본 기억으로 극복하고, 그 날 집에 와서 대변을 밥알 크기로 채집한 다음(이때 고춧가루나 콩나물, 기타 식물성 섬유질 같은 게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하는 눈치는 저도 있었습니다), 불로 봉투를 지져 붙이고 다음날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침조회를 마친 다음 선생님께서 대변봉투를 한 분단씩 앞으로 가지고 오게 해서 수집하시는데, 그때부터 은근한 향기가 온 교실을 진동합니다.
아이들이 대변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은 한결같이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만을 사용하여 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엄지와 검지는 남의 손가락이라도 되듯이................
그러다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내고 난 다음 차례는 조선재라는 친구였습니다.
그 학생이 봉투를 들고 나가자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야~ 조선재... 이건 뭐야?"
모든 학생의 시선이 조선재의 손에 쏠렸습니다.
그가 두 손가락으로 든 채변봉투는 불룩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이 엉거주춤 서 있는데 선생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야~ 안에 든 것 꺼내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속에 그 친구가 얼굴이 벌개지면서 봉지를 열고 그 안에 든 비닐을 꺼내는 순간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꺼내든 비닐봉지에는 비닐이 터질 듯이 팽팽하도록 떵이 들어 있었고, 입구는 불로 지질 수가 없어서, 하얀 명주실(원래는 하얀 것이었지만, 그때는 뉘리끼리한 색이었습니다)로 위태하게 비닐봉지 끝을 간신히 문 상태로 칭칭 동여매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떨리는 손으로 떵뭉치를 들고 있다가 급기야는 교실바닥에 떨어뜨려 버렸고, 그러자 묶인 실이 끌러졌는지 아니면 비닐이 찢어졌는지 봉지가 터짐과 동시에 온 교실에는 떵바다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친구는 집에서 맏이였고, 채변에 대한 선험적 체험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채변봉투의 문구를 읽고 곧이 곧대로 세 군데서 밤알크기로 채집을 하였나 봅니다.
물론 봉지 크기로 봐서는 기껏해야 한 알 반 정도 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 테고, 그 친구는 세알이나 두알 정도를 퍼 넣었다가(그 정도의 양이면 퍼 넣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지요), 묶는 과정에서 반 알 정도는 내다 버렸거나 삐져나왔을 게 분명하였습니다.
그렇게 보건사회부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연약한 시골소년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뉘리끼리한 멍을 남겼고, 그 일로 인하여 덩달아 저는 한참 동안이나 "조"씨 성을 가진 이들은 미련스럽다는 각인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조씨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제는 그 선입감이 없어졌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늘 퇴근길에 구충제나 한 알 사가지고 가서 애들에게 먹일까요?
(디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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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풀입니다.
내용과 잘 어울리는 풀이지요(중화작용).
가지골나물이라고도 한답니다.
야산 기슭의 볕이 잘 드는 풀밭에서 자라고, 꽃모양은 사루비아 닮았습니다.
꽃을 뽑아들고 꽁무니를 빨면, 꿀물이 나옵니다.
사골에서 자라신 분들은 모두 이 꽃 꽁무니를 물어본 기억은 있을 듯 하네요.
꽃은 7∼8월에 자줏빛으로 핍니다.
2001. 3. 8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