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장난치기(3-끝) 꿩의바람꽃>
맑은날T
2001. 3. 20. 10:38
장난치기(신문보기)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면 시간이 참 잘 갑니다.
특히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수뽀쭈 서울"을 어깨너머로 보면 더 재미납니다.
그때는 아저씨가 빨리 넘길새라 팽팽한 긴장으로 속독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미난 기사를 보는 중간에 아저씨가 신문을 넘겨버리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습니다.
재미없는 광고 따위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는 옆자리 아저씨도 답답해뵈고 짜증스럽습니다.
'우이 쒸이~ 머 볼 끼 엄서서 광고나 보고 그래~'
요즘에야 지하철에 신문파는 사람이 없어졌지만 80년대 후이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신물파는 사람이 신문들고 다니면서 외칩니다.
"수뽀쭈 서울이나 일간 수뽀쭈~,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이씹니다"
서면에서 지하철을 탔니다.
타자마자 지하철 선반위를 앞뒤좌우로 훑어봅니다.
아~ 신문쪼가리 한 장 안 보입니다.
부산사람은 참 알뜰합니다.
서울에서 군생활할 때 지하철 2호선을 타보면 선반 위에 신문이 두 세부씩은 꼭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부산사람은 신문보는 사람도 적기도 하거니와 보고 나서는 내릴 때 꼭 가지고 갑니다.
하는 수 없이 신문총각한테 수뽀쭈서울 한부를 삽니다.
돈 주고 수뽀쭈신문 보기에는 너무 아깝지만, 멍청하니 앞에 앉은 아가씨 표정이나 살피는 것보다는 좀 낮습니다.
신문을 펼치자마자 양쪽에 앉은 사람이 신문에 눈을 모읍니다.
오른쪽에는 화장품을 잔뜩 바른 20대 중반의 아가씹니다.
전형적인 장미단추형(長美短醜形)인데, 화장품냄새가 너무 심합니다.
왼쪽에는 실업자 같이 보이는 아저씨인데, 양복은 입었는데 며칠동안 안 씻었는데 똥푸는 냄새가 은근히 풍깁니다.
가끔씩 내쉬는 호흡에는 입냄새가 무지 심합니다.
신문기사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어깨너머로 볼 때에는 스릴과 긴장, 그리고 공짜라서인지 무지 재미난 기사가 많았는데, 내돈주고 사서 여유있게 볼려니까 볼 게 하나도 없습니다.
180도로 잔뜩 펼친 신문을 90도 정도로 오므립니다.
그러자 양쪽의 불청객은 더 다가옵니다.
갑자기 신문을 대충보면서 페이지를 넘깁니다.
그러면서 혼잣말 한미디를 낮게 슬쩍 합니다.
"쯧~ 최진실이 자살을 하다니........"
양쪽의 두사람이 달려듭니다.
그때 잽싸게 페이지를 넘깁니다.
두 사람은 무지 궁금해합니다.
아가씨는 무지 야속하다는 듯이 눈을 홀깁니다.
아저씨는 무지 얄밉다는 듯이 째려봅니다.
저는 다음 페이지를 다시 넘기고서는 광고까지 여유있게 천천히 봅니다.
신문총각이 다시 옵니다.
아가씨와 아저씨는 동시에 외칩니다.
"여기요~ 수뽀쭈서울 한 부 주세요"
아가씨는 천원짜리를 내밀고 아저씨는 오십원 짜리를 포함한 동전으로 신문을 삽니다.
신문을 산 두사람은 부리나케 신문을 뒤적입니다.
한참을 뒤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문이 제가 가진 신문과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또다시 신문을 뒤적입니다.
제가 내릴 역이 되었습니다.
신문을 자리에 놓고는 내립니다.
아직도 최진실의 자살에 미련이 남은 그들은 제가 놓은 신문을 서로 가지려고 합니다.
'지들이 가진 것과 꼭 같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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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의바람꽃입니다.
바라꽃의 일종으로 숲속에서 자라며, 꽃줄기 위에 꽃 한 송이가 달립니다.
하얀 것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며 마치 꽃잎처럼 보입니다.
꿩의바람꽃은 우리나라에 나는 10여종의 바람꽃의 일종으로 아네모네라는 속 이름이 바람(anemos)을 뜻하듯 이른봄 찬바람 속에서 핀답니다.
바람꽃(아네모네)에 대해서는 신화가 있습니다.
“꽃의 여신 플로라는 아네모네란 시녀를 데리고 있었는데, 바람의 신이 아네모네를 사랑하게 되자 질투를 느낀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먼 곳으로 쫓아버렸다. 그녀를 찾아 방황하던 바람의 신은 어느 황량한 언덕에서 떨고 있는 아네모네를 발견하고 달려가 얼싸안았고, 이 광경을 본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한 송이 꽃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의 바람꽃 중에서도 꿩의바람꽃은 가장 추울 때 피고 가장 가냘퍼서 슬픈 여인처럼 보이고 따라서 아네모네의 정서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꽃이랍니다.
2001. 3. 20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