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 이야기
자취를 했던 K는 약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183의 키에다 75키로의 근육질인 그는 건강 그 자체였음에도 약만 보면 먹고 싶어 환장을 하는 것이었지요.
특히 영양제나 보약을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박카스와 같은 피로회복제 또한 보기만 해도 온몸이 피로해지므로 한 두 병은 마셔야 회복되곤 하였답니다.
또한 감기약만 보면 코가 맹맹해지고 목이 칼칼해지는 증상이 나타나서 감기약을 뺏어 먹어야 증상이 풀리고, 진통제만 보면 멀쩡하다가도 두통이 나타나는 친구였지요.
또 다른 자취생인 M은 항상 약을 달고 사는 친구였습니다.
비염, 만성감기, 두통, 과로 등으로, 온갖 약을 다 갖추고 사는 친구였지요.
게다가 그는 얼굴이 여드름투성이어서, M의 얼굴을 멍게가 보면 부끄러워하고, 해삼이 보면 수치스러워할 정도였답니다.
K는 M의 자취방에 놀러가는 걸 즐겼습니다.
그런데 K가 다녀가기만 하면 M의 약 몇 가지는 없어지는 것이었었지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M은 약을 서랍에 넣어놓고 잠궈버렸답니다.
그러자 K의 발걸음은 약간 뜸해졌지요.
강의를 일찍 마친 어느 날 우리들은 M의 집에 라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부산스럽게 선학냄비에 라면을 몇 개 끓여서 라면뚜껑과 라면봉지 등으로 금방 후딱 비웠지요.
그러고 담배를 피며 영양가라곤 눈을 씻고 들여다 보아도 보이지 않는 시시껄렁한 잡담을 늘어놓는 사이, M은 또 피부관리를 하려는지 세수를 하고 들어오더라구요.
세수를 하고 들어온 M은 책상서랍에서 약통을 하나 꺼내더니 꼭 볼링핀을 닮은 영양제 크기만 한 말랑말랑한 캡슐을 하나 꺼내는 것이었지요.
반쯤 드러누운 친구들은 모두 요상하게 생긴 그 약을 보면서 '조게 모야?'하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M은 그 약을 꺼내더니 볼링핀 모양의 꼭지를 손톱으로 비틀어 뜯어내고는 짜더니, 그 안에서 흘러나온 뉘리끼리한 현탁액을 얼굴에 바르고는 맛사지를 하는 것이었어요.
친구들은 전부 측은지심을 느끼면서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유독 K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지는 것이었지요.
그러더니 급기야는 더듬거리며 M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M아~ 그거 얼굴에 바르는 약이야?"
"응~"
".......................그거 먹으면 안되냐?"
" 먹는 거 아냐. 왜 그래?"
"............................."
친구들은 그때 벌써 눈치를 챘습니다.
알고보니 K는 며칠 전에 왔다가 그 약을 여남은 알이나 훔쳐가서는 하루에 두 알씩 규칙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약을 병도 비싸게 보였고, 캡슐 또한 금빛 찬란한 색깔이었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훌륭한 영양제로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K는 그약을 M에게 남은 피부약을 돌려 주었을까요?
천만에요. K는 그날부터 그 약을 흠 하나 없는 자신의 맨질맨질한 얼굴에 발랐답니다.
요즘도 약을 좋아하는 K에게 오늘은 박카스나 한 통 보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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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린 글 재탕해보았습니다.
2004. 3. 10 맑고 싶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