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친구(1) 수국>
맑은날T
2001. 5. 29. 08:37
친구 (1)
자취를 했던 K는 약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183의 키에다 75키로의 근육질인 그는 건강 그 자체였음에도 약만 보면 먹고싶어
환장을 하였다.
특히 영양제나 보약을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박카스와 같은 피로회복제 또한 보기만 해도
피로해져서 한 병은 마셔야 직성이 풀리곤 하였다.
그는 또 감기약만 보면, 코가 맹맹해지고 목이 칼칼해지는 증상이 나타나서 감기약을
뺏어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진통제만 보면 없던 두통이 나타나는 친구였다.
또 다른 자취생인 M은 항상 약을 달고 사는 친구였다.
비염, 만성감기, 두통, 과로 등으로, 온갖 약을 다 갖추고 사는 친구였다.
게다가 그는 얼굴이 여드름투성이였다.
군대까지 다녀온 얼굴이 멍게가 보면 자부심을 느끼고 해삼에게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K는 M방에 놀러가는 걸 즐겼다.
그런데 꼭 K가 다녀가면 M의 약 몇가지는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M은 약을 서랍에 넣어놓고 잠궈버렸다.
그때부터 K의 M방으로 향한 발걸음은 약간 뜸해졌다.
강의를 일찍 마친 어느 날 우리들은 M의 집에 라면을 끓여 먹으로 갔었다.
부산스럽게 선학냄비에 라면을 몇 개 끓여서 라면뚜껑과 라면봉지 등으로 금방 후딱 비웠다.
그러고 담배를 피며 영양가라곤 하나 없는 잡담을 늘어놓는 사이, M은 또 피부관리를
하려는지 세수를 하고 들어왔다.
세수를 하고 들어온 M은 책상서랍에서 약통을 하나 꺼내더니 꼭 볼링핀을 닮은 영양제
크기만 한 말랑말랑한 캡슐 약을 하나 꺼내는 것이었다.
반쯤 드러누운 친구들은 모두 요상하게 생긴 그 약을 보면서 '조게 모야?'하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M은 그 약을 꺼내더니 볼링핀 모양의 꼭지를 손톱으로 비틀어 뜯어내고는 짜서는
그 안에서 흘러나온 뉘리끼리한 현탁액을 얼굴에 바르고는 맛사지를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전부 측은지심을 느끼면서 재미삼아 쳐다보는데, K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더듬거리며 M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M아~ 그거 얼굴에 바르는 약이야?"
"응~"
".......................그거 먹으면 안되냐?"
"이거 먹는 거 아냐. 왜 그래?"
"............................."
친구들은 그때 벌써 눈치를 챘습니다.
알고보니 K는 며칠 전에 왔다가 그 약을 여남은 알이나 훔쳐가서는 하루에 두 알씩
그때까지 아껴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약을 병도 비싸게 보였고, 캡슐 또한 금빛 찬란한 색깔이었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훌륭한 영양제로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K는 그약을 M에게 남은 피부약을 돌려 주었을까요?
천만에요. K는 그날부터 그 약을 맨질맨질한 얼굴에 발랐답니다.
요즘도 약을 좋아하는 K에게 오늘은 박카스나 한 통 사다 안겨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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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입니다.
한적한 산사에, 인적이 뜸한 부잣집 화단에 자주 보이는 꽃입니다.
처음에는 흰색의 꽃이 폈다가, 나중에는 연보라는 파란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학교 다닐 무렵, 중간고사를 마치고 온천장 식물원에 갔을 때, 가랑비에 젖은 수국을 본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네요.
아마도 이 맘 때 쯤이었을 겝니다.
2001. 5. 29 맑은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