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의 아빠

소중하고 아름다운...인연

맑은날T 2006. 10. 9. 10:57
 


우리의 인생살이는 會者定離라는 말과 같이 참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이별하며 살아갑니다.

뒤돌아보면 여러분도 가슴 아픈 인연, 좋은 인연, 그리운 인연 등 많은 인연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겠지요. 특히 세월이 지나고 나서 더욱 소중함을 느끼게 되어 그때 기억 속에 머물러 가끔은 이 가을 누군가를  떠올릴 때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마음 따뜻한 인연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좋은 인연들을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면 우리사회는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데 글로 옮긴다는 게 조금 쑥스럽지만 이 풍요로운 가을 잠시 올려볼까 합니다.

2002년 4월 여수서에서 완도신설단으로 발령을 받아 완도에서 근무하던 중 맺은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와의 인연입니다.

누구나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면 혼자만의 생활에서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혼자라는 나태함과 고독감, 그리고 때로는 자유로움이 나타나는 시기였습니다. 이 기회에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더욱 건강을 다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임시청사가 있는 곳은 농촌마을로 공기도 좋고 인적이 드물어 한적했습니다. 이른 새벽과 저녁시간을 이용해 매일 두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며 농촌의 정취를 즐겼습니다.


그러던 여름 새벽 이른 시간에 넓은 파밭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홀로 일하고 계신 것을 보고는 “할머니 안녕하세요?” 라며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며칠동안 그 이른 시간에 할머니는 줄곧 밭에 앉아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열중하고 계셨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퇴근하면서 보니 연로하신 그 할머니께서 여전히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다른 대파밭에는 인적이 없는데 할머니는 몇날며칠을 무슨 일로 대파와 씨름하시는지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이 더운 날 더위 먹으면 건강해치는데 매일 밭에서 무슨일을 하시느냐고 여쭈어보았더니 대파에 벌레가 생겨 이 시기에 잡지 않으면 대파농사를 망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농약을 뿌리시면 간단할텐데 왜 그리 수고하시냐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는 손사레를 치시며 “사람이 먹을 채소에 농약을 뿌리면 안된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흙과 사시는 분들은 저런 생각을 하시는구나 생각하면서 건강조심하시란 인사만 드리고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얼마 후 옆 마을에서 그 할머니를 또 만났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친숙해져서 그런지 저기 보이는 집에 사신다면서 음료수 한 잔하고 가라고 잡으시길래 할머니 댁에 갔습니다. 할머니 연세는 여든둘이며 홀로사시는 독거노인이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낙으로 사신다면서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농사를 조금씩 지어 생활하신다면서 긍정적으로 삶을 사시는 분이였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와 저의 인연을 시작되어 시간이 나는 대로 할머니 댁을 찾아가 자식들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 해드리고 여수에 있는 집으로 가지않는 주말에는 할머니께서 밭에 계시면 찾아가 말벗과 일손도 도와드리며 할머니의 손자처럼 지냈습니다. 할머니와의 만남은 짧은 대화가 전부였지만 만나는 시간은 늘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머무르곤 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 말씀에 귀 기울이며 어려운 일은 해결하고자 고심하는 손자가 되어 어느새 할머니 곁에 다가서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종합학교 4주간의 교육이 있었습니다. 교육 준비에 바빠서 할머니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입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고 교육이 끝나고 인사차 들렸더니 할머니께서는 너무 너무 반가워 하셨습니다. 한 동안 발길이 없자 할머니는 애가 타서 혹시 발령받아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았는지 생각하셨다면서 좀 더 소식이 없으면 서초등학교(구 완도 해양경찰서)로 찾아가 높은 양반을 만나 면담해서 꼭 찾으려고 했다고 하시길래 할머니께서 제 이름도 성도 모르신데 어떻게 찾으려구요 하니까 그야 키는 보통이고 나이는 대충 인상착의 등을 이야기하면 알지 왜 몰라 어디로 발령나고 전화번호를 알 수 있겠지 하고 말씀하시길래 “할머님이 경찰관 명수사관입니다” 하고 웃었지만 할머니께 잘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께! 근무지로 찾아가 연락처를 알아볼 생각을 하셨을까 코끝이 찡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젠 연락처를 알아놓아야겠다며 이름과 핸드폰번호 여수 집 전화번호 주소 다 써놓으라면서 펜과 노트를 내밀었습니다. 그 후부터 할머니는 특별한 음식만 있어도 퇴근할 때 꼭 들리라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에 감동한 저 역시도 한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그해 겨울 저는 몸살감기로 심하게 아픈 적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니 가족생각이 간절하고 밥맛도 없고 하여 저녁식사도 하지 않은 채 불도 켜지 않고 방에 누워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습니다. 할머니 전화였습니다. 목이 꽉 잠겨 통화를 할 수가 없어 할머니 감기 때문에 다음에 전화드릴께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찾아올 사람 없는데 문을 두드리길래 일어나 나가보니 할머니 손에는 유자차와 대추가 들려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식사는 했느냐 약은 먹었냐 하시길래 그냥 네네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 한 마디가 그토록 고맙게 느껴보긴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따뜻하게 유자차 한 잔 끊여먹고 땀을 내고 한숨자라면서 염려해주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라고  혼자말의 중얼거림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어도 몸은 벌써 나은 듯 했습니다.


그 뒤로 할머니는 상의할 일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으면 손자처럼 저를 찾았습니다.

할머니가 외출해 계시지 않아도 할머니 댁이 제 집처럼 편안했으며 이것저것 손도 보고 방안에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며칠만 들리지 않으면 일찍 주무시더라도 방안에 불을 끄지 않고 주무신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왔다가 불이 꺼져있으면 그냥 갈까봐서 그렇다고....


시간은 흘러 2005년 2월 정기인사 때 여수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사용하던 생활물품을 챙겨서 할머니께 드리고 그동안 고마웠었다고 인사를 드리며 아프지 마시고 꼭 건강하시라고 몇 번이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손을 꼭 붙잡고 복 많이 받고 살라면서 말씀하시는데, 그 음성과 손에서 떨림을 느낄 수 있었으며 눈가엔 이슬이 맺힌 할머니를 바라보며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수에 와서도 저는 할머니와의 인연은 계속 되었습니다. 가장 외롭고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이나 그 인연을 우리는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합니다. 할머니께 자주안부전화도 드리고 좋아하시는 과일도 보내드리고 명절 땐 용돈도 보내드리면서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 봄에 여러 번 전화를 드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이젠 제가 애가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셔서 한 달 동안 해남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이제 퇴원하여 전화하신다며 근황을 알려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음성은 옛날과 달리 힘도 없으시고 숨이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 나쁜 병이 아닐까 많은 걱정을 하면서  불현듯 할머니와의 약속이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 댁의 울타리가 돌담으로 되어있었는데 다 쓰러져 미관상 좋지 않아 꼭 새로 쌓아드린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약속을 못 지키고 여수로 와서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약속의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골똘히 생각해보니 가깝게 지냈던 특기대 김주임께 사정이야기를 전화로 해봐야지!

돌담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 건강도 살펴봐달라고 했더니 걱정 말라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그 후 김주임께서 돌담을 예쁘게 잘 쌓아주셨다고 할머니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주임께 고생 많았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중학생인 두 아들에게 휴일하루 봉사와 이웃사랑을 가르쳐준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하니 더욱더 고마웠습니다.


얼마 전 무더운 여름 잘 보내셨냐고 할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이젠 목소리도 밝아지셨고 숨이 차시지도 않는 고른 음성이었습니다. 지난번 할머니 편찮으셔서 염려를 많이 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염려해주어 고맙다고 하시면서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저승에 있는 영감 곁으로 가고 싶다”고 하시길래 “아이구 할머니 거짓말 하지마세요. 다 알아요. 저한테 위로말씀을 듣고 싶어서 그러시죠?” 했더니 허허허 웃으시는 건강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최근엔 사랑으로 가득 찬 자루를 택배로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할머니께서 지으신 쌀과 말린 나물 등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할머니의 땀이 배어있는 선물!

항상 받기보다는 주고 싶어 하시는 따뜻한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니슬하에는 아들은 없고 아주 어렵게 산다는 환갑이 다된 따님 한 분뿐이라 항상 자식이 그립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 제가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저희어머니께서 들으시면 섭섭하시겠지만 그토록 곁에 두고 싶은 할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모자지간의 인연으로 잘 모시고 살고 싶네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돈, 명예, 권력일까요?

네 물론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사랑과 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과 정이 없는 세상을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요.


저는 여든이 훨씬 넘으신 할머니를 이렇게 가끔은 그리워하며 사랑하며 정을 느끼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머님!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이 글은 제 방에 오시는 손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글입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동의도 받지 않고 한번 올려봅니다.

이 가을에 가슴 가득 아름다운 사랑과 정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에서....


그리고....

아름다운 글을 제게 보내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저 또한 그 분과의 인연을 감사하게 여김을 말씀드립니다.


2006. 10. 9  맑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