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야기(1)

오늘부터 새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새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도 없지만 그냥 제가 살아오면서 새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또는

보고 들어서 아는 이야기 몇 가지를 해 볼까 합니다.

혹시 회원님들 중에 조류에 대하여 조예가 깊은 분이 계시다면, 그래서 제가 올린 내용이

잘못된 것이 있다면 서슴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정확한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니까요

사실 새 이야기야 진작에 한 적이 있지요.

칼럼 2호<새이름으로>에서...........



뻐꾸기는 둥지를 만들 줄 모릅니다.

알을 품거나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키울 줄도 모릅니다.

뻐꾸기는 산란기가 되면 개개비류·까치류·멧새류·할미새류 등의 둥지에 둥지주인이

낳은 알과 비슷한 색깔의 일을 몰래 하나 낳습니다.

그리곤 원래 둥지 주인의 알을 하나를 둥지 밖으로 내다 버립니다.

그러면 원래 둥지 주인이 자기의 알과 뻐꾸기 알을 함께 품어 부화를 시킵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탁란(托卵)이라고 하는데 풀어 쓰면 알을 맡긴다는 뜻이지요.


'세상에나 맡길 게 따로 있지....지 새끼를 맡겨???'


이러시는 분들이 계시지요?

그러나 우리네 인간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최근에야 모성애가 강조되면서 자기 아이 키우는 일에 엄마들이 혼을 뺏기고 있지만,

사실 중세나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여성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유모에게 맡기고 아이는

유모의 젖을 먹고 유모의 손길에서만 자랐습니다.

따라서 그때만 하더라도 아이는 친모에 대하여 각별한 애정을 느끼지 못했고, 그때의

어머니 또한 자식에 대한 현재만큼의 애정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친모의 정, 즉 모성애를 받고 자란 아이가 지능적으로 사회적으로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모성애를 자극.발달시키고 그래서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서양사회의 한 시대적 조류였다고 하더라도 그네들도 똑같은

호모사피엔스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시대 어머니들의 모성애는 기본적인

본능(낳은 정)도 있지만 사회적 환경 내지는 관습에 의하여 형성되고 조장된

부분(키운 정이라고 하죠)도 상당부분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천포에서 되돌아와서...............)


이렇게 다른 둥지에 맡겨진 뻐꾸기의 알은 원래 둥지의 알보다 보통 2-3일 가량 빨라서,

뻐꾸기 새끼가 먼저 부화하게 됩니다.

그렇게 부화된 뻐꾸기 새끼가 가장 먼저하는 일을 원래 둥지의 알을 둥지 등으로

밀어서 밖으로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이 일이 끝나면 그때부터 뻐꾸기새끼는 원래 둥지주인의 새끼가 됩니다.

이것은 원래 둥지의 주인도 자기가 품어 낳은 뻐꾸기를 자기 새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며, 뻐꾸기 새끼 또한 원래 둥지의 어미인 대리모(代理母)를 자기의 친 어미로

생각합니다.

새들은 원래 태어날 때 처음으로 보는 움직이는 사물을 어미로 생각해버립니다.

이것을 각인(刻印)이라고 하지요.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면, 버려진 둥지에서 알을 주어온 꼬마가 자기 집에서

백열등의 열로 부화를 시킵니다.

그렇게 깨어난 백조(?)들은 그 꼬마를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지요?

(없으시면 오늘 보십시오. 좋은 영화입니다)

바로 그것을 각인이라고 하지요.


하여튼 이렇게 뻐꾸기가 부화하면 대리모의 고생길은 훤히 트입니다.

뻐꾸기 새끼의 덩치는 대리모만큼 크기 때문에 대리모는 이 덩치를 먹여 살리기에

혼신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지빠귀는 살아왔고 또 살아간답니다.



어쨋거나 얄밉긴 하지요?

우리네 인간사, 정치사를 살피더라도 뻐꾸기같은 인생, 뻐꾸기 같은 정권도 많지요.

뭐 그래도 잘 살아 가는 게 우리네 인간사입디다.

참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 있지요.

그거 제목부터 뻥인 거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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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입니다.
두견이목 두견이과의 새로서 곽공(郭公)이라고도 합니다.
전체길이 약 35㎝로서 약간 큰 편의 새입니다.
뻐꾸기라는 이름은 <뻐꾹 뻐꾹>이라 들리는 울음 소리에서 유래하며 겨울철에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서 월동합니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산비둘기의 그것과 같이 구슬픈 지저귐에 속합니다.

2001. 4. 20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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