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M에게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뜯어보니 낡은 방석 하나가 들어있다.

 

한달쯤되었다.

삼촌 팔순잔치에서 육촌동생이 아기가 없어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M이 떠올랐다.

M도 오랫동안 아기가 서지 않아 고생하다가 고명한 스님으로부터 옥방석을 얻어서 그 기운으로 아기를 얻고 돌잔치까지 치룬 사실을...

 

팔순잔치 이후 M에게 전화로 방석을 물어보니 효험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건넸는데 그 사람도 효험을 봤는데 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행방을 모르겠단다.

혹시 찾을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는데 그 부탁을 가벼이 여기잖고 수소문하여 찾아서 보내준 것이다.

 

육촌동생에게 전화로 말해주니 감격을 한다.

다시 M에게 전화로 고마움을 전했더니,

 

"꼭 필요하셨기에 제게 부탁하셨겠지요."

 

사람은 늘 그렇다.

작은 것에 더 감동을 받는다.

 

- M, 고마워. 아기 생기면 방석값 비싸게 받아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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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환여동 김갑수씨 집 백년 묵은 살구가 꽃을 피웠다.

나무는 백년 묵었어도 꽃은 해마다 새내기로 피워 올린다.

오늘 내가 먹은 마음은 새로운 마음인지 마흔넘게 묵은 마음인지 되새겨 본다.

 

사람아!

풀과 같고 나무와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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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옹골찬 꿈은 아니어도 SKY정도면 하고 바랬다.

학교가 목동에서 최악의 따라지 고등학교였고 교원자질도 형편없는, 걸핏하면 사학비리문제로 뉴스에 나오고 아이들 밥값 남기려는 치사한 학교였지만 원체 내신공부를 게을리해서 내신으로 대학가기는 쉽잖았다.

수능보고 온 날 집에서 대충 맞춰본 성적은 생각보다 좋아서 내심 기대하고 논술 몇 군데 봤는데 수전증도 없는 녀석이 과학과 영어 마킹을 실수해서 수능발표후 한동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한양대 공대 두곳을 가군과 나군으로 원서내고는 12월 들어 강남재수학원에 등록했다.

한양대에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것이라기보다는 붙어도 반수는 하겠다는 생각에서 미리 공부 제대로 하는 녀석들과 한번 생활해봐라는 것이었다.

 

어제 각시가 전화를 했는데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에 합격을 했단다.

합격소식 듣고보니 기분이 좋긴 하지만 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녀석을 가르친 학원 선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재수를 권하는데 녀석의 스타일을 아는 각시와 나는 고민이 더 깊어졌다. 차라리 떨어졌다면 재수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도 없는데 녀석의 느긋함과 대충주의 및 귀차니즘 성향을 고려하면 재수성공의 보장은 없을 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녀석이 희망(?)하는 의대는 올해처럼 좁기만 하니 고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주말에 녀석을 만나서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들어보자고 각시와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까지 발표난 사실과 합격한 것도 모르는 녀석과 어떤 진지한 이야기가 가능할 지 모를 일이다.

이래 저래 머리만 복잡하다.

 

아들 이야기 몇번 올렸던 탓에 혹시라도 궁금해하는 분이 계실까 하여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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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공휴일,

창을 활짝여니 가을 햇살이 아깝단 말이

절로 떠올랐다.

홑이불과 누비이불을 연달아 세탁기에 넣어

지난 여름의 무더위와 옷장의 묵은내를 씻어내고

베갯잇 묵은 고민 말끔하게 빨아내어

옥상 빨랫줄 닦아 말렸다.

묵정내와 비린내와 누린내는 가을바람에 날아가고

뽀송하게 마른 가을햇살이 씨줄과 날줄 사이에 알알이 자리했다.

어젯밤엔 부스럭거릴때 마다 튀어나온 가을 햇살에

온 밤내 방안이 환해졌다.

 

 

                                                        2012. 10. 4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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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다소 따분하고, 약간 권태롭고, 가족 구성원에게 딱히 뭐라하기는 그렇지만 막연한 불만이 있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현재 행복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런 상태를 아주 절실하게 그리워하기도 할 것입니다.

 

# 가출- 금요일 15:00

지난 금요일 오전, 각시가 전화를 했다.

윤석이와 경욱이 행동이 마뜩찮아서 동네 PC방에 가서 확인해보았더니 방학기간동안 두 녀석이 일주일에 평균 5일 정도, 그리고 하루 2-3시간 정도 게임을 했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서울에 좀 올라와서 혼내줘야 겠다는 것이었다.

듣고보니 기가 찬다.

부산과 마산에 일이 있어 올라가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그러자고 했다.

 

그날 오후 3시, 윤석이가 집을 나가버렸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알아본 즉, PC방 출입(출입이라기보다는 거의 출근)이 들통나자 혼나는 것이 두려웠고, 엄마에게 '아빠 올라오지 말도록 전화하지 않으면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하였고 이것이 통하지 않자 집을 나가버렸다고 하는 것이었다.

알았다면서 좀 있으면 들어올 것이니 기다리고 있으라 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나니 손이 떨렸다.

하루에서 대여섯번씩 햇빛알러지가 있어 땀을 흘리면 안된다며 차로 녀석을 태우고 다닌 각시가 불쌍해지고, 몇번이나 다짐하고 약속했던 PC방가지 않기로 한 약속에 대한 배신감에 녀석들이 눈 앞에 있으면 그냥 다리몽댕이를 분지럴 것 같았다.

 

# 수색- 금요일 23:00

금요일 밤 열시, 집에 도착하니 경욱이만 집에 있고 지은 죄가 있는지 고개를 외로 꼬며 눈치를 살핀다.

물어보니 각시는 형을 찾아본다며 좀 전에 나갔단다.

밤 열한시가 넘어 각시가 기운빠져 들어왔다.

상황을 물어보니 녀석의 행색은 이랬다.

슬리퍼, 반바지, 셔츠, 깁스한 오른 팔, T머니 4,000원....이것이 전부였다.

단촐하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각시와는 딱히 할 말이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열두시 넘어 집을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동네를 돌았다.

11단지, 12단지, 13단지, 14단지, 상가밀집지구, 양천공원....

아파트 단지마다 소공원이 있고, 동마다 작은 쉼터가 있어 돌아볼 곳은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다.

집으로 오니 한시가 넘었고 TV에서는 열두번은 보여주었을 올림픽 리듬체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속 상한 마음에 양주를 몇 잔 들이키고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두시쯤 집 주위를 걸어서 한바퀴 들어본 다음 집에 들어왔다.

화가 나기보다는 걱정과 염려가 더 컸고, 현관 밖의 사소한 소리마저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각시와는 그때까지 아주 사소한 몇 마디만 주고받았을 뿐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서로에게 입 밖에 내는 그 자체가, 그리고 서로가 그 걱정을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술을 한 잔 더 먹고 억지로 누웠다.

온 동네는 한일전 중계로 뜨거웠다.

시청 앞에 축구보러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설핏 잠이 들었다.

 

# 미귀가 - 토요일 아침

각시가 뜬눈으로 밤을 세우더니,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며 커피를 타서 주니 속이 쓰려서 먹지 못하겠단다.

9시가 되어 양천경찰서로 갔다.

실종자 전문수사팀으로 가라고 한다.

들어가니 나이 많은 팀장님이 여유있고 느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을 곁들인 훈시를 하신다.

20분 가량의 훈시가 끝나고 담당경찰관에서 서류작성해주고, 사진도 제출했다.

똘똘해보이는 조OO 경찰관은 잠시 면담하자며, 자신의 경험(K대 나왔다고 자랑했고, 뿌듯해했다)을 곁들이면서, 동파방지를 위해서 수도꼭지를 잠시 열어둬야 하는데 너무 잠그려고 한 것이 아닌지 물어본다.

그리고 윤석이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은 누군지 물어보는데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 정식으로 접수하면 학교 당직실로 즉각적인 통보를 해야하고 기록도 남을 것인데 그러면 입시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T머니 사용내역은 자신들도 월요일이 되어야 확인할 수 있다고 하길래, 접수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하고 돌아왔다.

 

# 기다림과 수색 - 토요일 낮

집에 와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차로 도서관을 향했다.

각시 생각에는 더운 날씨를 아주 싫어하고 MP3 플레이어도 두고 갔으니, 아무래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거나 시청각자료실에서 컴퓨터나 영화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고척도서관에 도착하여 열람실별로 다 돌아보았으나 없었다.

다시 차를 운전하여 양천도서관으로 항했다.

8층 건물이라 다 돌아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역시 없었다,

도서관을 나와서 도로를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하수구 아래에 천원짜리 한 장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이 저거라도 발견하고 꺼내어 뭐 먹을거라도 먹었으면' 하면서 쳐다보았다.

 

# 염려 - 토요일 낮

집을 나간 다음 돌아오지 않으니 그야말로 걱정과 염려가 산더미였다.

먼저, 뉴스에 나오는 자신에게 나쁫 짓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방정맞다면서 스스로에게 도리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었고, 서로에게 차마 말 못하는 걱정이있다.

두번째는 먹을 것이 해결되지 않아서 나쁜 짓을 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꼬맹이들 돈 뺏는 것이야 하지 않겠지만, 먹을 것을 훔치거나 차문 잠그지 않은 차를 뒤지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짓은 곧바로 인생을 망치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었다.

세번째는 불량배에게 걸려서 엊어맞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이이었는데,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네번째는 범죄자들에게 붙잡혀서 몸값요구하는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딱 봐도 별 귀티가 흐르지 않는 차림새라 그 걱정은 금새 접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나, 월요일에 장인어른 병원 입원 도와주러 간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아토피가 있어 햇빛을 쬐면 안되는데 어쩌나, 아무거나 주어먹다 식중독걸리면 어쩌나 까지 아주 다양했다.

 

# 착한 아들 - 토요일 오후

자전거로 동네 pc방을 거처 온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생각하니 윤석이는 착하고 좋은 아들이었다.

큰 사고친 적이 없었고, 공부도 곧잘하고, 배째라면서 학원안간 적도 없었고, 술아니 담배로 속 썩힌 적도 없었다.

사대육신 멀쩡하니 자라 주었고, 키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닌 아까운 아이였다.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발목을 분질러야할 문제아였는데, 아이가 집을 나가자 착한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아빠에게 혼이 날까 걱정하는 마음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욱하는 심정에 나갔다가 자존심 상해서 돌아오지 않는 것일 것이다.

혼 내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휴대폰 압수당한지 1년차 되는 녀석이라 전할 방법이 없었다.

네 편은 수 없이 많으며, 아빠, 엄마, 네 동생은 언제 무슨일이 있어도 네 편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런 적이 없었고, 그럴 수가 없었다.

오후3시경 고척도서관을 한번 더 둘러보고 돌아왔다.

 

# 수사 - 토요일 저녁

네가 집나가면 어떻게 할 거 같냐고, 경욱이에게 물어보니 경욱이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동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자녁에는 아무 독서실에 숨어 들어가서 잠을 자겠단다.

해가 뉘였해질 때 자전거를 끌고 나와서 온 동네를 한바퀴 돈 다음, 학원 인근으로 갔다.

학원가는 길에 이마트가 있는데 아무래도 그 곳에서 배고픔을 해결할 가능성이 옾다고 판단해서였다.

이마트에 들어가서 두바퀴를 돌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아직 식사시간이 아닌가?'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경욱이를 학원에 보내고, 각시를 차에 태우고 다시 이마트에 가서 돌아보았다.

그곳을 나와서 인근에 있는 홈플러스로 향했다.

홈플러스를 다시 두바퀴 돌고나니 각시가 많이 힘들어하고 나 또한 많이 지쳤다.

더 이상 찾아볼 곳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각시는 어제 밤보다 오히려 냉정을 되찾았다.

친구 몇 명에게 전화걸어 우회적으로 탐문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각시는 방에 들어가서 윤석이를 비교적 잘 알고 통하는 과학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양천공원으로 한 바퀴 돌았다.

어제부터 보이는 노숙자 한명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가가서 핸드폰에 있던 윤석이 사진을 보여주며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단다.

 

# 포기 - 토요일 밤

일요일 오후까지 그냥 기다리자고 했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는 시간이 일요일 오후이니, 그 시간쯤 내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차려입고 지하철 역으로 가서 그 곳에서 몇 시간 기다리면 집에 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때까지 그냥 기다리자고 각시에게 말했다.

아직도 TV에서는 올림픽으로 시끄러웠다.

22시경 그리고 24시경 다시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 돌았다.

아이를 찾기 보다는 그냥 집에 있는 것이 갑갑해서 그랬다.

 

# 음주 - 일요일 새벽 1시

술을 한 잔 먹었다.

취기가 오르지 않아 두어잔을 스트레이트로 더 마셨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 사진을 뽑아서 아파트 관리실마다 다니며 수배 부탁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하였다.

 

# 귀가 - 일요일 새벽 2시

윤석이 방에서 창을 열고 밖을 보고 있었다.

각시는 잠이 오지 않는지 20분 전에 나갔다.

그때 창 밖에서 각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귀를 기울였으나 더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있다가 현관문 소리가 들리더니 각시가 들어오면서 '윤석이 왔다'고 한다.

 

방을 나서니 굽신 하면서 '죄송합니다.' 한다.

아무소리 않고 씻으라고 들여보내고 라면 물을 올렸다.

각시가 와서 밥이 있으니 된장 덥히면 된다고 하였으나, 그냥 라면 하나 끓여 주고싶었다.

한참을 씻던 아이가 나왔다.

라면 먹으라고 했더니, 좀 전에 라면을 사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이런.......영화에서는 이 장면 뒤에 라면 냄비 위에 후회의 눈물을 뚝뚝 흘리고 하던데...)

 

불러서 앞에 앉혔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어제밤 어디서 잤냐고 물으니, 양천공원 화장실에서 잤다고 했다. (찌질한 녀석 같으니...)

 

앞으로 PC방에 가지말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답을 했다.

정 게임을 하고 싶으면 집에서 엄마에게 하겠다고 말을 하고 하라고,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고 하라고 했다.

다만, 게임할 시간은 스스로 먼저 여유시간을 만든 다음 했으면 좋겠다고 그리 하겠냐고 했더니 그리 하겠다고 한다.

집 나간 문제나 게임방 출입문제는 혼을 내고 넘어가야겠다고 했다.

자고 있는 경욱이를 깨워 오라고 시켰다.

자다 끌려나온 경욱이와 윤석이는 등산지팡이로 허벅지를 맞았다.

경욱이는 5대, 윤석이는 10대를 맞았다.

두 녀석 모두 충실하게 맞았지만 때리는 내 손힘은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다.

 

# 에필로그 - OO아!, 모든 것을 용서할테니 집으로 돌아오너라.

아이 가출사건에서 아이 찾는 가장 흔한 문구가 "모든 것을 용서할테니 돌아오기만 해라"이다.

참 허접해보이고 싼티나는 저 문장이 가출아이 부모의 마음을 가장 간결하고도 적절하게 표현한 명문임을 느꼈다.

제갈공명의 후출사표나, 유시민의 상고이유서나, 프랑스의 인권선언문도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관련자(?)의 마음을 꿰뚫지는 못할 것이다.

 

쉽지는 않겠자만 욕심을 버려야 겠다.

각시에게도 아이에게 간섭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과학학원선생님을 각시와 함께 아이진로 등에 관하여 면담을 했다.

40 초반의 여선생님이었는데, 상황을 다 듣더니 간결하게 한마디 했다.

"짜식,찌질하게 화장실이 다 뭐야~"

아이 아버지로서 참으로 많이 쪽팔렸다.

 

 

# Tip - 아이가출시 참고사항

1. T머니나 후불교통카드는 인터넷으로 조회하면 사용내역을 구체적으로 확인가능하다. 승차일자와 승차한 정류장, 하차한 정류장 등

2. 자발적 가출은 경찰신고하면 쪽팔리기만 하더라. 신중하게 생각해라.(원인미상 미귀가는 신고가 중요함)

3. 대부분 집 주변에서 '발견해 주길 기대'하면서 배회할 것이다.

4. 대형마트에서 식사해결할 가능성이 있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윤석이는 대형마트에 갈 차비가 없어서 가지 않았으며, 대형서점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5. 주변 친구에거 함부로 이야기하면 쪽팔려서 진짜 가출할 수 있다.

6. 부모나 친지에게 일없어 소문내지 마라. 아이는 쪽팔림, 가족은 대책없는 염려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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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3 금요일, 경욱이와 북한산을 올랐다.

보충수업하는 윤석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8시, 아직 꿈 속을 헤매는 경욱이를 깨우니 겨우 일어난다.

원래 아침식사를 잘 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억지로 반공기를 먹이고 9시가 다되어 집을 나섰다.

경욱이 배낭에는 얼린 생수 2개와 도시락을, 내 배낭에도 얼린 생수 2개와 과일 약간을 넣으니 공평(?)하다.

목적지는 북한산 백운대(813.6m), 효자비에 주차를 하고 밤골공원지킴이터를 들머리로 숨은벽능선과 호랑이굴을 거쳐 백운대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산행코스로 잡았다.

왕복 7km 남짓한 거리이다.

 

9시 40분쯤 효자비 인근에 주차를 하고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10분 점도 걷다 쉼을 가졌는데 벌써 땀 범벅이다.

  

 

폭염이 절정을 이루었는데다, 산행코스가 북한산 북사면이라서 바람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초등학생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닌 공이 있어서인지 경욱이는 불평없이 앞장서서 곧잘 산을 올랐다.

두번을 쉬고 나니 숨은벽능선 아래 계곡에 도착했다.

울창한 나무들이 염천의 햇살을 가렸지만, 뜨거운 열기는 거러지 못하고 고스란히 정수리에 꽂혔다.

숨은벽능선 바위아래를 거쳐 해골바위쪽으로 샛길로 올라 숨은벽 능선 초입에 도착했다.

평소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구간임에도 산행객이 없었던 것은 평일이어서라가보다 더위 때문인듯 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곧장 능선을 타고 올랐다.

중간에 만난 산행객들에게 오징어순대 한조각 신세지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서 조금 오르니 약수터가 있다.

머리를 한번 적시고 다시 호랑이 굴로 오르는데 암릉지대라서 경욱이가 다칠새라 여간 맘이 쓰이지 않았지만 별 탈없이 잘 올랐다.

12시가 다되어 호랑이굴 아래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상쾌하다.

 잠시 쉬고 백운대를 바짝끼고 백운대로 오르는 등산로로 향했다.

 

<백운대 발부리의 리지를 타는 경욱이>

 

 

백운대로 오르는 초입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백운대가 명산은 명산인가보다.

서울의 다른 산에서는 외국인을 보기 쉽잖은데 유독 백운대에 가면 3명중 1명은 외국인이다.

와이어를 타고 백운대를 오르는 길은 힘은 들었지만 바람이 좋아서 상쾌한 산행이었다.

백운대에 올라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며 경치를 잠시 감상하고 다시 하산하였다.

 

 <백운대 정상에서 한 컷, 아니 3컷, 아니 수컷들..^^>

 

하산길에 백운대 발부리 부근 바위에서 점심을 먹으니 꿀맛이다.

맨밥, 우엉조림, 계란말이, 깻잎절임이 반찬이었지만 시장이 반찬이긴 한 모양..

식사를 마치고 가져간 과일까지 먹고나서 시원한 그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하산을 하는데 슴은벽 계곡으로 들어서니 다시 바람이 잠잠하다.

하산길은 무더위로 많이 힘들었다.

대부분 오르는 길이 더 멀어보이는데 그날은 하산길이 더 멀어 보였고 경욱이도 그랬나보다.

 

"아빠, 우리가 이렇게 많이 올라온 거야?"

 

산 아래까지 다 내려오니 얼린 생수 4병은 텅 비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음료수를 사먹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오자마자 드러누우며 경욱이가 한 말은 이랬다.

 

"엄마, 양말 좀 벗겨주고, 에어컨 최고로 틀어줘. 나 샤워할래."

 

 

2012. 8. 8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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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띠리링~"

각시 전화다.

 

(이하, 괄호 안은 표준어로 번역한 글이다) 

 

나 :  와? (응, 자기야, 무슨 일로 전화를 했니?)

각시 : 병원이다. (응, 자기야, 나 지금 병원에 와 있어.)

나 : 와? (아니, 병원에는 무슨 일이니? 어디 아픈 거야? 많이 아프니? 아파서 어쩌니?)

각시 : 윤석이 손가락 뿔랐다. (이를 어쩜 좋아요? 사랑하는 큰아들이 손가락을 다쳤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골절이라고 하시네.)

나 : 어데? (아휴, 어쩜 좋으니? 언제 어쩌다 그랬데? 어느 손가락이야? 많이 다쳤어?)

각시 : 계단 니러오다 손잡이에 걸리가 네번째 금갔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손잡이에 손가락이 걸려서 약지에 골절이 생겼어요.)

나 : 쇠박았나? (골절이 심하니? 혹시 핀같은 것으로 고정하는 수술할 정도라고 해?)

각시 : 아이다. (수술까지는 아니고 고정해서 치료하자고 하시네.)

나 : 아랐따. 아 잘 바라.(그래, 잘 알았어, 얼마나 놀랐니? 별 일 없을 거야. 아이 위로 해주고 손가락 조심하도록 당부도 하고 그래.) 

 

 

작년에 둘째녀석 코뼈 부러져서 치료받았고, 올 초에 둘째녀석이 발가락이 부러져서 치료받았다.

둘째놈 코는 조금 매부리코모양으로 맘에 안들고, 부러진 발가락 굵지막하게 붙어서 엔간해서 다시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뵌다.

그런데 이번에 또 큰 녀석이 부러졌다.

두 녀석은 뼈가 부러지면 진단비로 20만원인가 보험회사로 받을 수 있다.

보험료보다 3번의 진단비가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보험금 청구하면 보험사기로 조사를 한번 받을 것 같다.

두 녀석에게 미리 말해둬야 겠다.

모르는 아저씨가 니들 손가락 발가락 코뼈는 혹시 아빠가 부러뜨렸거나 니들이 일부러 부러뜨린 거 아닌지 물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 해야 한다고... ㅡ,.ㅡ;

 

2012. 8. 6  맑은날

 

 

 

글 적어 놓고 읽어보니 심히 못마땅하다.

네덜란드 소년처럼 무너지는 뚝을 막으려다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강도나 도둑을 잡다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불의에 과감히 항거하여 시위 중 부러진 것도 아닌,

지 팔 지가 제대로 흔들지 못해서 부러졌다니......에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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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義士)

사전에서 찾아보면 '의협심있고 절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 '떠그럴...의사보다, 의협심, 절의란 말이 더 어렵네.'

 - 길 건너에 있는 목적지 물어보니 2키로미터 가서 유턴해오라는 멍청한 네비게이션같으니라구...

 

이런 경우에 어떤 사람이 의사(義士)로 추앙받는지 살펴보면 이해가 더 빠르다.

의사(義士)라 하면 금방 떠오르는 사람은 안중근과 윤봉길, 이봉창 이런 분들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행위에 분연히 항거하여 하얼빈 역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홍구공원 일본군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하는 쾌거를  하신 분들이고 교과서에도 이분들의 의거를 기리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의 의거(義擧)로 말미암아 일본군의 전력이 약회되었거나, 일본이 패주하였거나, 일본이 조선인을 겁을 내어 식민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실 없었다.

그렇다고 이를 계기로 전 조선인이 일본에 항거하여 들고 일어난 일도 또한 없었다.

실질적으로 당시 일본제국주의 팽창정책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분들의 의거를 폄훼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님은 모두 아시리라 믿는다.)

 

그럼 무엇이 남는가?

이분들의 의거로 일제의 침략에 억눌리고 분노했던 우리 민족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 것이 가장 큰 것이다.

가령 전철 안에서 행패를 부리는 양아치가 있었으나 겁도나고 맞을까봐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는데 승객 중 누군가가 일어서서 그 놈을 응징하거나 적어도 달려들어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속이 후련한다.

역시 겉으로는 하지 못하고 맘 속으로 힘껏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 또한 앞으로 유사상황이 생길 경우 같은 행동을 할 용기를 북돋우기도 한다.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의사(義士)와 의거(義擧)의 핵심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오늘 새벽 대구시 동구 신천동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이름모를  의사(義士)의 의거(義擧)를 오래 그리고 높이 기리고자 함에 있다.

 

염천지절에 됨에 따라 밤이 되면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게 되는데 대구는 덥다보니 6월 초부터 창을 열어놓고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쉬 잠 들기 어렵고,  지쳐 늦은 잠이 들더라도 새벽에 꼭 잠을 깨게 되어 그로 인하여 하루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우리 동네의 지번모를 어느 집에서 성별모를 어떤 사람이 역시 성별과 품종모를 어떤 덩치 큰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일체불상의 개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그리고 새벽 5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우렁찬 목소리로 쉴 새없이 짖는다는데 있었다.

처음 일주일은 '나만 예민한가', '바로 옆집이나 개주인은 견디는데 적어도 수백미터는 족히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내가 호들갑 스러운가보다'고 생각하며 적응하려고 무지 애를 썼다.

그런데 갈수록 짖는 소리의 데시벨은 올라갔고 중단없는 짖음은 계속되었다.

새로 이사와서 개가 적응을 하느라 그런가 보다며 일주일을 더 참았으나 차이가 없었다.

2주일이 지난 어느날 아침 잠을 설쳐서 퀭한 눈으로 일삼아 걸어서 출근하는 길이었다.

그 개짖는 소리가 들린 것으로 추정되는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개소리가 들리면 주인에게 젊잖게 부탁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7시가 넘어서인지  쥐죽은 듯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었다.

불상의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면 금방 알아볼 텐데 골목에 한참을 서있어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개 짖는 소리를 유인하려고 골목길 가운데 서서 "멍멍"하며 개 짖는 소리를 몇 번 내었지만 대답은 없고 대신 지나가던 아줌마 한 분이 미친 넘 보듯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물릴까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내 주변을 피하여 반원을 그리며 돌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놈도 밤새도록 짖으며 잠을 설쳤으니 아침이 되어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아..정말 나쁜 개...

 

그렇게 피곤한 나날을 보낸지 한 달이 지났다.

역시 어제 밤에도 우렁차고 청아한 목소리로 밤 11시임을 알리며 새벽 2시까지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불러 재꼈다.

힘들게 겨우 겨우 잠이 들었다가 다시 개소리에 잠이 깨면서 시계를 보니 5시 20분이다.

비몽사몽간에 저 녀석의 주인은 어떤 인간일까 생각하면서 방성구라도 좀 씌우면 안되나, 성대수술을 받게하면 좋을 텐데, 집주인에게 이야기해서 이사라도 해버릴까, 나처럼 잠이 깨어 스트레스받는 사람은 또 없을까 등 갖은 상념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짙은 먹구름을 뚫고 찬연히 햇살이 비치듯이,

뻘에 뿌리박고 흙탕물에 자랐지만 어느날 문득 청아한 수련이 피어나듯이,

석달 열흘의 긴 가뭄 끝에 우렁찬 소나기가 쏟아지듯이,

개 소리 이외에 아무 소리없는 새벽의 정적과,

꿍시렁거리며 행동할 줄 모르는 비겁과 위선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서

그 동안의 울분과 수면부족의 억눌림을 목소리 가득 담아 개 소리 이외에 아무 소리없는 새벽의 정적을 깨치는 우렁찬 일갈(一喝)이 들려왔다.

 

"야이 씨발 놈아! 잠 좀 자자~~~~.  개~애~~ 쫌 치워라~~~~~~~"

(당시의 데시벨을 글씨 크기로 표현하자면 40pt는 되어야 하나 화면 구성상 보기 좋지 않아 12pt, 볼드체로만 표시하였다)

 

아!

욕설이 그렇게 아름답게 들린 적은 없었다.

새벽에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큰 소리가 그렇게 달콤한 적은 또 없었다.

그 이후 주변에 가득 흐르는 정적이 그렇게 숙연한 적 또한 없었다.

오늘 새벽은 내가 분명히 하얼빈 역에 있었고, 홍구공원에 있었다.

이제 내가 가야할 길은 분명해 졌다.

선열의 의기로운 발자취를 따라 한층 더 높은 데시벨로, 한층 가다듬고 정제된 욕설로 무장하여

신새벽의 비겁을 뚫고 분연히 일어나야 할 일만 남았다.

 

이 글을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 거주하는 이름모를 의사를 기려 犬叱義擧(개를 질책한 의거)로 명명하고 글을 바치는 바다.

 

2012. 7. 12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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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병원에 갔다가 오후에나 되어 사무실로 들어오니 직원이 소포왔다며 하나를 내민다.

발신지를 보니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이다.

 

지난 주말 집에서 좌로굴러~ 우로굴러~ 군대생활을 복습도 하고, 동래파전처럼 철푸덕 방바닥에 찌짐을 붙이고 있노라니, 각시가 가끔 와서 "탄다! 후딱 디비라."하면서 한번씩 뒤집어 주면 그때서야 자세를 바꾸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한민국 남편이자 두아들의 아빠로서 소임을 묵묵히 그리고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꼼꼼하고 촘촘하게 하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 트윗을 디비는 중 곽노현교육감님(참고로~~~ 하지만 사실은 중요한 내용인 바, 맞팔하는 사이다)이 천리포 수목원인지를 산책하던 중 가막살나무 꽃을 찍어 올리시고 이름이 궁금하다시며 이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사람에서 손수 지으신 에세이 "나비"를 보내 주시겠다는 기막힌 제안을 하신 것이다.

부리나케(쬐금 도움을 받긴 했는데 도움받을 상대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개인의 지식이 되는 시대다) 답을 적어보내고 기다리니 며칠 전 쪽지를 통하여 주소를 물어보시더니 이렇게 책을 보내신 것이다.

뿌듯한 마음에 사무실 직원들에게 자랑질(사실은 이분이 누군지 모르는 인간들이 하도 많아서 힘들었다)을 한바탕 하고 블로그에 또 자랑질하려고 이런 수고를 한다.

 

 

 

 

 

약속(約束)은 크고 작고가 없다.

지키고 안지키고가 있을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작은 약속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지켜주신 교육감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자리가 높으면 작은 것은 하찮게 보이는 것이 사람살이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참으로 고맙고 눈물겹다.

처음부터 그 분을 신뢰하고 지지하였다.

재판 결과가 그 분의 진심과 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실과 진심에 부합하는 판결을 기대한다.

 

2012. 6. 22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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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무과시험을 보다가 낙마(落馬)하여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자 이순신은 시험장 옆에 있던 버드나무를 부러뜨려 부러진 다리를 감싸고 남은 시험을 치루었다.

이러한 대단한 참을성과 인내를 바탕으로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장수가 되었다.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낙마를 한 것은 기마술이 부족했을테고, 또 다리가 부러진 것을 혼자서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여 부목한 다음 시험을 마쳤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어디 기마술만 봅니까.

뜀발질, 대련, 무거운 물건 들기 등과 같은 시험도 있었을텐데 부러진 다리로 그런 시험을 어찌 치루었을까 하는 의구심.....

 

 

 

 

그저께 각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인즉, 보름전에 삔 경욱이 발가락의 붇기가 가라앉지 않아서 병원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발가락이 부러져 있다고, 그래서 깁스를 해야하는데 동네의원에서 그냥 해도 될까 하는 전화였습니다.

연이어 엑스레이를 찍어서 폰으로 보내왔는데 문외한이 보아도 또각 부러져 있어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친구와 싸우다 부러진 것도 아니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다 부러진 것도 아닌, 지네 형이랑 장난치다가 문지방을 발로 걷어차면서 부러진 것이라 성웅 이순신의 사례를 들기가 참으로 면구하지만 그래도 부러진 발가락에 멘소래담을 바르고 보름이나 돌아 댕겼다는 것이 훌륭하지 않습니까.

 

부러진 발가락이 방치된지 시간이 좀 지나서 새삼스레 핀으로 고정하기도 그렇고, 과히 많이 어긋난 모양이 아니라 그냥 발목까지 깁스만 하였습니다.

치료 받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하여 경욱이를 칭찬해 주었답니다.

 

- 니 덕분에 상해보험에서 골절진단비 20만원을 받게 되었다.

- 저번에는 코뼈가 부러져서 20만원을 벌게 하였으니 모두 40만원이나 벌었구나.

- 발가락 1개당 20만원이면 이제 남은 발가락과 손가락을 합치면 380만원을 더 받을 수 있겠구나...

 

경욱이는 이번에 고딩이 되었습니다.

학급편성시험을 쳤는데 우수학급인 A반에 편성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합니다.

3개로 분류한 것이라서 우수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하지만 그래도 칭찬해주었습니다.

 

"시험 잘 봤구나. 수고했어. 수학이 어렵지 않던?"

"응, 수학이 어려워서 다 풀지 못했어."

"그럴 때는 문제를 쭈욱 보면서 쉬운 것 부터 풀고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해."

"그럴려고 문제를 보면서 여려운 것은 나중에 풀려고 체크했는데 해보니 다 체크되어 있던데..."

"ㅡ.ㅡ;;"

 

                                                                                                 2012. 3. 16.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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