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한다.

 

이 말을 처음 들을 때는 참 묘하게 들렸다.

유소년기 때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국민학교 3-4학년 다닐 즈음이었을 거다.

 

그 나이부터 부지깽이도 일을 거든다는 모내기철에는 부지깽이가 아닌 나는 당연하게 무논에 일 도와주러 나섰다.

모판에서 쪄낸 못단 (볍씨를 모판에 파종했다가 한 뼘 정도 자라면 손으로 뽑아서-쪄서- 1~2kg 크기로 묶은 단)을 무논(모내기를 위하여 논을 갈아엎고 물을 가두고 써래질하여 모내기 준비가 된 물이 든 논)골고루 옮겨 놓는 일이나 써래질하는 아버지 따라다니며 흙이 쏠린 곳을 고르는 일은 물론이며 못줄 넘기기를 하거나 직접 모내기도 하였다.

 

모야 모야 노랑모야.

언제커서 열매열래.

이달 크고 저달 커서

구시월에 열매맺지.

 

흥얼거리듯 적당한 속도의 리듬을 가져서 다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늘어지지 않을 속도의 모내기 노래도 귓가로 들었다.

 

중참을 먹으며, 아픈 허리 두들기며, 모내기를 하다보면 더디지만 언젠가는 등 뒤에 마지막 논두렁이 있었고, 어둑해진 해거름을 따라 개구리 울음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에 본 갓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가녀리고 연두색 모들이 물에 잠길듯이 바람에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정도 지나면 연두빛 모들은 서서히 초록빛을 짙어지고 그 즈음부터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 즈음이 모들이 새로 옮겨진 논에 하얀 새뿌리가 나서 뿌리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어른들은 그것을 보면서 "모가 사람했다"라고 말하고,  그때부터 논에 들어가서 김매기를 하거나 비료도 주기 시작하였다. 어떤 경우는 물을 살짝 빼주어서 뿌리가 좀 더 깊이 내리도록 자극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했다"는 말의 의미를 유추하면 '죽지 않고 살아났다'가 된다.

 

우리말의 기원어로 알려진 세소토어에서 '살다'를 '살라-sala'라고 한단다.  그리고 우리말에서 동사의 명사꼴은 [ -ㅁ ]이다.

결국 '사람(人)'이나 '삶'이란 말은 '살다'에서 나온 말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고운 단어도 '살다'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맞을 터이다.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삶의 본질이니까...

 

벼가 사람하는 이 시기...

당신은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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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참 게으른 나를 쉬임없이 이리저리 오가게 만드네요.

2004년 3월, 맹춘에 탄핵 당하면서

한 동안 잊어 버린 광장으로 불러 내시더니,

그 뒤로 몇 번이나 시청 앞으로, 덕수궁 앞으로 부르시고,

멀리 남녘으로, 성공회대학 노천극장으로도 오라시데요.

 

당신은,

눈 나쁘다는 핑게로 한 동안 접어 두었던 책을

몇 권이나 다시 펼치게 만들었네요.

막상 내가 펼친 그 책들은 당신이 지은 책은 없고,

당신을 추억하는 이들의 그리움으로 지어진 책들이네요.

 

당신은,

매니아는 아니라도 심심찮게 TV 앞에 쭈그리던 나를

TV에서 떠나게 만들었네요.

당신으로 인하여

TV는 반쪽을 가린 세상만 보여주는 것임을,

반쪽 가린 세상에서는 웃는 얼굴만 비춰주는

바보상자임을 알게 되었네요.

 

무엇보다도 당신은,

눈물흘리는 남자가 찌질하지 않음을 말해 주었고,

샛노란 색이 사람을 슬프게 만들었고,

원래 바쁜 5월을 더 바쁘게 만들었네요.

그리고 또 다른 당신이 오기까지,

수 많은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네요.

 

- 2013. 5. 23  4주기에, 유형의 땅 대구에도 작은 추모공간이 있어 친구와 들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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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출근하는 길,

황매화를 보다.

매화는 벚나무속인데 녀석은 황매화속이며,

홑겹을 개량하여 겹꽃으로 만든 이런 녀석은 죽단화라고도 부른다.

어린시절 큰 집 뒷마당 옹달샘가에 늘 보던 꽃이라 유독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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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김광석이 있었다.

30년도 더 오래 전 대구 방천시장 인근에 자취생활을 한 것이 생각나서 일삼아 산책거리치고는 꽤 먼 거리를 걸어왔다.

추운 겨울, 오뎅 오백원어치 사던 그 시장 뒷골목에는 생닭 잡아 팔던 거리가 있었다.

그 골목에 닭집은 없어지고 쓸쓸한 가로등 아래 통기타 든 김광석이 "일어나~"를 부르고, 아직은 차가운 밤바람이 잠시 멈추어 듣다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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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가는 신락로에 이팝꽃이 피었다.

 

윤삼월 해는 길어 주린 배가 서러운데

이삭이 패지 않은 보리밭에는

밥 냄새는 흔적조차 없었다.

 

저 이팝꽃은 주려 죽은 자들의 넋

저 이팝꽃은 산 자들의 빚

 

김초시네 잔칫날은 당아 멀었는데

눈요기나 포식하라고 이팝꽃이 피었다.

 

동곡가는 신작로 따라 하얀 쌀밥이

고봉으로 그득그득 피어 올랐다.

 

2012. 5. 4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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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었다.

H군과 함께 근무한 것은.

2년 조금 못되는 기간동안 같은 사무실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근무를 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이였지만 함께 근무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척이나 컸다, 머리가.

그리고 길었다, 허리가.

전체적으로 잘 생긴 얼굴이었고 얼굴에 총기가 흘렀다.

머리가 크다보니 얼굴에 흐르는 총기의 양은 보통사람보다 더 많았고 더 총기있어 보였다.

일은 보통이었지만, 정보력이나 분위기 만드는데는 재주가 뛰어났다.

오지랖이 넓어서 사람 사귀는 범위가 넓었고 빈번했다.

그럼에도 한편에 살짝 외로움이 보였는데 그것은 총명을 얻은 사람이 가지는 보편적인 외로움이었다.

 

고향이 진주인 H군은 지방대학교를 나왔다.

식용유 만드는 대학이 아니라 경남 마산에 있는 대학이다.

대학다닐 무렵 운동권에 몸을 담았고 써클연합회 회장인가를 했단다.

대학 4학년때 데모를 좀 하곤 했는데 교내문제(식당 밥값 좀 깍아달라는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로 시위가 있었단다.

그런데 학교측과 원만한 타결이 되지 않았고 급기야는 운동권 간부들의 회의에서

간부들이 단지결의를 하고 시위분위기를 띄우자는 의견이 나왔고 얼떨결에 통과되고 말았단다.

여기서 단지결의는 항아리에 막걸리담아놓고 마시면서 결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斷指), 즉 손가락을 자르는 결의식을 말한다.

 

회의를 마치고 모두들 무척이나 침울한 분위기였단다.

아무리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이기는 하나 멀쩡한 생손가락을 자른다는 것이 어디 쉽기야 했겠는가.

게다가 밥 먹으면 그 양분이 새끼손가락으로 모두 가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자르면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영양보충으로 밥을 먹어도 더 먹어야 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새끼손가락이 무슨 죄가 있었던가?

이름조차 '새끼'라고 혹은 욕으로 혹은 무시당하는 바로 그 손가락이다.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집회가 시작되었단다.

사뭇 비장한 분위기를 "임을 위한 행진곡"이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고,

혹은 쫄아서, 혹은 겁이나서 단상에 도열한 간부들은 단상 귀퉁이에 마련된 작은 작두에 눈길이 자꾸만 가고 있었고, 이제 곧 분리될 왼손 새끼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음악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음악이 끝나서 사회자가 비장한 어조로 학생회 간부들의 집단단지식을 선포하고 있었다.

이때 H군에게 변화가 생겼다.

단지결심이 바뀌는 심경의 변화가 아니라 신체의 변화였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더니 적당한 경도(硬度)를 유지해야 마땅한 대변이 갑자기 위장 등에서 모아진 수분으로 경도를 완전히 상실하더니 이러한 졸(SOL) 상태로 바뀐 대변이 직장에 압력을 가하면서 항문을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H군은 학문의 전당에서 항문에 죽을 힘을 다 모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단지순서의 중간쯤에 있던 H군은 슬그머니 뒤로 빠져서 단상 뒤로 내려와서는 학생회관 화장실로 마음은 빠르지만 빠르고 넓은 보폭으로는 항문의 압력해체 사태가 생길 것을 알기에 어기적 어기적 땀을 찔찔 흘리며 달려갔다.

단상에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시간에 H군은 며칠전 결의를 다진 학생회관 화장실에서 설사를 찔찔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시원함과 허전함이 공존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쪼그린 H군은 '왜 내게 이런 설사가 왔는가?'라는 근원적인 철학을 하였다.

사유의 시간이 지나고 허겁지겁 냄새를 흩날리며 단상으로 돌아와보니 여성학우들은 눈물을 흘리고 단상에는 흰색 무명쪼가리를 왼손에 칭칭 감은 간부들이 오른손을 주먹쥔 채 '단결투쟁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으며 단상 한 귀퉁이에는 선연한 피가 묻은 손작두와 잘린 손가락 여러개가 흰 천 위에 놓여 있었다. 

단상에 차마 올라가지 못한 H군은 투쟁을 위한 '단결투쟁가'를 단상 뒤에서 들으며, 대동단결은 커녕 제 대변조차 단결시키지 못한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수치심과 모멸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행사가 끝나고 간부들은 서둘러 준비된 차를 타고 자기 손가락을 각자 챙겨서 병원으로 접합수술을 받으러 집단으로 달려갔고 대부분은 다시 붙였단다.

새끼손가락은 그랬을 것이다.

'아~ 씨바,  내가 벽에 붙였다 다시 떼어먹는 껌이냐!!!'

 

H군은 아직도 잘 알고 지낸다.

그리고 여전히 천재끼를 보여주고 있다.

 

 

 

 

~~~~~~~~~~~~~~~~~~~~~~~~~~~~~~~~~~~~~~~~~~~~~~~~~~~~~~~~~~

 

비장했던 우리들의 젊은 날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적어 보았다.

밥값은 500원 인하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12년 전에 들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정확할 것이다.

 

                                                                                                                2012. 4. 26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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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마리 용이 살다

그중 여덟마리는

승천하고 한 마리는

이무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던 큰 저수지 아래

과수원 집 큰아들

바보 삼성이가 있었제

 

삼성이의 유일한 자랑은

제 덩치가 자라는 것보다

두배나 빨리 자랐던

큰 제 물건을

동네 아이든 어른이든

아낙이든 할마씨든

아무때나 쑥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제

 

자랑이 아니었는지도 몰러

그때마다 듣는 지청구에,

욕지기에,

한번더 보자고

쓱 만지던 할마씨들의

눙치는 소리에

기겁을 했던 것을 보면..

 

그래도 삼성이는

하루에도 수십번

제 물건을 보이고

웃음 소리보다 빠르게

도망가고는 했었제

 

나이 사십이 넘자

제 애비의 재산과

제 어미의 화술로

드디어 장가를 갔었네

 

한해, 두해 가고

삼성이는 이제 물건도

꺼내지 않았고

목단꽃처럼 함박하던

그 큰 웃음도 사라졌지

 

세 해, 네 해

제 부모 저수지 뒷 산에

묻고 하나도 닮지 않은

아들래미 고추자랑하며

목단꽃 웃음 찾아 갈 때 쯤

 

그 알찌던 과수원이

남의 손에 들어가고

삼성이 마누라 도망가고

마누라 찾으며

울며불던 삼성이도 사라졌네

 

저수지 뚝방에 깽깽이 꽃

천지로 필 때

승천하지 못한

용 한 마리 저수지에

떠올랐었지

 

제 하나도 안닮은

여의주 품에 꼬옥 안고

 

~~~~~~~~~~~~~~~~~~~~~~~~~~~~

 

글은 회사 후배직원이 적은 글,

사진은 블친이 찍은 사진...

 

구걸해다가 짜깁기해서 올립니다. ㅠㅠ;

(내가 요즘 이리 삽니다..ㅡ,.ㅡ;)

 

이 글을 쓴 후배는 사진 한 장에,

이야기 한 줄에...

그냥 이렇게 글을 주르륵 써내리는 재주가 있네요.

블로그에 남겼다가 나중에 시집이라도 하나 내보라고 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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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TV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물론 지금 이 나이에 관심을 가지면 그 자체가 어설픈 인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예인들의 휘황찬란한 삶이 TV를 장악하면서 상대적으로 참 많은 이들이 사는 것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부작용에 대하여 많이 못마땅해하는 편이고, 그러한 광대들의 삶이 결코 부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2명은 내게 특별하다.

 

 

 

<채시라>

등학교 시절...

그때 책받침을 다들 갖고 있었다.

책받침으로도 사용하고, 선을 긋는 자로도 사용하고 여름에는 부채로도 사용하고 그랬다.

그때 책받침에는 여자 연예인 사진이나 감성적인 詩가 많이 인쇄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연예인으로는 소피마르소,브룩쉴즈이고, 국내파로는 채시라, 최진실, 김혜수 등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 소피마르소가 참 예뻤다고 기억되고 책받침도 한 두개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당시에도 연예계 쪽은 무관심한 편이었고, 딱히 환장하는 연예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why?

채시라가 특별한가?

 

사춘기 한참인 나이의 사내아이들은 자다가 꿈을 꾼다.

그것도 무지 에로틱한 꿈을 더러 꾼다.

당시 분위기로는 여자친구나 이런 이성관계 자체가 쉽잖은 일이라 이성문제는 애로틱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에로틱한 꿈으로 해결하였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처음으로 이성문제의 애로를 에로틱한 꿈으로 해결하였다.

바로 그때 꿈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그녀였다.

채.시.라.

아..

생각만으로 가슴저리는 그 사람.

숫총각인 나의 순정을 사정없이 앗아간 사람...

지금도 그녀를 볼 때마다 남같지가 않다. ㅡ,.ㅡ;

 

 

 

<수애>

녀를 첨 본 것은 <가족>이란 영화에서 였고, 가장 혼을 빼앗은 것은 2006년에 만든 <그 해 여름>이다.

그 뒤로 <장보고>, <님은 먼 곳에>, <나의 결혼 원정기>, <불꽃처럼 나비처럼>도 꼬박꼬박 챙겨봤다.

그녀의 이미지는 다분히 리얼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이게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쉽게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중년남자들이 첫사랑의 이미지를 그녀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녀는 좀 좋다. 연예인치고는....

 

최근에 그녀가 드라마에 나왔다.

에수비에수에서 월화드라마로 나오는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 그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드라마를 한번도 보지 않았는데, 그것은 1회와 2화 모두를 챙겨봤다.

 

지난 월요일에 1회가 방송되었다.

각시와 함께 몰입하여 보고 있는 중에 큰 아들이 학원에서 돌아와서 같이 앉아서 보고 있었다.

한참 보고 있다가 큰 아들이 말을 한다.

 

큰아들 : 수애 쟤 연기 잘 하네~

맑은날 : 응......... (뭐? <쟤>라니?)

큰아들 : 쟤 진짜 무술도 할 줄 알아?

맑은날 : 몰라.......(이 녀석이 또 <쟤>라네..)

큰아들 : 쟤가 김태희보다 연기가 나은 거 같아.

맑은날 : , 임마~, 쟤라니?

큰아들 : @..@?

 

그날 기분이 많이 상했다.

감히 수애보고 쟤라고 하는 불효막심한 녀석같으니라구.... ㅠ,.ㅠ;

 

                                                                                         2010. 12. 17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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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농부

우리들의 가을은
귀퉁이에
검불더미만을 남겨놓고
저녁 하늘에 빈 달무리만을 띄워놓고
우리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보리밭에 보리씨를 뿌려놓고
마늘밭에 마늘쪽을 심어놓고
이제 이 나라에는
외롭고 긴 겨울이 찾아올 차례입니다

헛간의 콩깍지며
사래기를 되새김질하는 염소와
눈을 집어먹고 껍질 없는 알을 낳는 암탉과
어른들 몰래 꿩약을 놓는 아이들의 겨울이
찾아올 차례입니다

그리하여
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만이
눈 속에 갇혀 외롭게 우는 산새 소리를 들을 것이며
눈에 덮여서 더욱 싱싱하게 자라나는 보리밭의 보리싹들을
눈물겨운 눈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눈물겨운 눈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나태주 

 

~~~~~~~~~~~~~~~~~~~~~~~~~~~~~~~~~~~~~~~~

 

우리 어릴 적의 겨울은 글 눈물겹지는 않았는데..

춥기는 했어도 오히려 놀 일이 많았던 기억...

평생을 농부였던 아버지께서 조금은 쉴 수 있었던 계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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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까

 

 당신이 뒤뜰에 심으신 홍매가 붉게 피었다 졌습니다. 장독대 옆의 매화가 하얗게 피어서 은은한 향을 마당 가득 펼쳐 놓고 있는 걸 당신도 보셨는지요?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왔지만 봉하마을 당신이 사시던 집 마당에는 봄이 때맞추어 찾아와 산수유 꽃 개나리꽃을 노랗게 피우더니, 논둑에는 쑥들이 보얗게 돋아났습니다. 양지쪽에 돋은 쑥을 뜯어다 당신의 아내는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셨습니다. 짙은 쑥 향이 방안 가득 넘치는 걸 당신도 느끼셨는지요? 몰래 한 숟갈 떠 드셨는지요? 


 지난해 가을 거둔 봉하쌀로 지은 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데 그 따뜻한 밥도 한 술 드셨는지요? 봉하쌀로 쌀 막걸리를 빚은 건 알고 계시는지요? 그 막걸리 맛이 너무 좋아 입에 착착 달라붙습니다. 막걸리 한 사발 하시면 “캬, 좋다!” 소리가 저절로 나올 텐데 같이 한 잔 하지 않으시렵니까? 

 산과 하늘과 바위가 잘 올려다보이도록 바깥쪽으로 조금씩 높아지게 지은 당신의 집 식탁에 앉아 올려다보는 부엉이 바위 쪽 산 풍경은 네 폭의 병풍에 담은 산수화입니다. 당신도 그곳에서 이 집을 내려다보고 계십니까? 아내 혼자 지키고 있는 집이 보이십니까? 아내 혼자 창가를 서성이고 있는 게 보이십니까? 혼자 남겨진 당신의 아내를 생각하면 당신이 야속할 때가 있습니다.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던 당신의 손녀딸을 생각하면 당신이, 당신의 고집, 당신의 원칙, 당신의 자존심이 미울 때가 있습니다. 또다시 봄이 와 과수원 사과 꽃 하얗게 피는 게 싫은 날이 있습니다. 


 오늘도 당신을 잊을 수 없는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 봉하마을로 오고 있습니다. 저 사람의 물결이 보이십니까?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십니까? 왜 끝없이 사람들이 밀려오는 걸까요?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당신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당신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당신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봉하마을에 남아 일하고 있는 게 보이십니까? 오늘도 밀짚모자를 쓰고 오리농사 지을 준비를 하고, 오늘도 정미소의 기계를 돌리며 목장갑 낀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게 보이십니까? 밤늦도록 당신의 이름 주위로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보낼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는 이들이 보이십니까?


 당신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아직도 박해와 탄압을 받고 있고, 모함에 시달리거나 수모를 당하며 여기저기 끌려 다니느라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웠던 세상은 지진이 휩쓸고 간 땅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고, 우리는 폐허의 가장자리에 서 있습니다. 거기 서서 다시 무너진 사원을 세우고 종소리를 울려 살아남은 사람과 나무와 어린 새를 돌아오게 하고 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그만 하자고 했습니다. 당신이 그립고,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지만 입술을 사려 물고 남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지키려 했던 가치, 당신이 이루려 했던 꿈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으므로, 아니 그동안 이루었던 것이 다 무너지고 있으므로 다시 손을 잡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기로 했습니다.


 벽에 살면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담쟁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을 끝내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우리 앞에 놓인 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기로 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벽을 넘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지난 해 봄 사저에 걸려 있던 「담쟁이」 란 제 시를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지금은 소나무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거기에 다시 「담쟁이」를 걸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것은/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찾아 걸겠다는 것은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벽에서 시작하겠다는 것입니다. 벽을 벽으로 받아들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절망으로 인해 주눅 들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벽과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여럿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이 어려운 상황을 넘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설령 물 한 방울 없고 흙 한 톨 없는 벽에 살게 되었다 할지라도 멈추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담쟁이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이파리들과 손에 손을 잡고 한 발짝씩 나아가듯 그렇게 자신을 믿고 힘을 합해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을 넘겠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버리지 않고 승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아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다시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우리가 그렇게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싶어 하실 겁니다. 깨어 있는 이들의 조직된 힘만이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당신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 지켜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또다시 오월이 왔습니다. 당신이 떠나신 오월입니다.

 

 당신을 향한 갈망과 공허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여기 이렇게 그리움과 추억의 말들로 풀어놓았습니다. 어찌 저희만이 당신을 그리워하겠습니까? 이 부질없는 그리움이라도 풀어놓지 못하면 그냥 가슴에 맺힌 채로 응어리져 있을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꺼내 놓았습니다. 


 시간이 나시면 읽어 보시고 저희에게도 몇 말씀 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는지요. 이승에서의 인연은 이렇게 아프게, 이렇게 황망히 끝났지만 삼천대천세계를 넘어 우리의 인연은 다함없이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그곳에서도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2010년 당신이 떠나신 오월에

 

 

 

 

 

어쩌면 우리에게 과분했던 당신을 잃어 버린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작년 23일, 토요일이었지요.

게으른 늦잠을 자고 있던 중 대구에 계신 선배님이 전화로 전해준 소식을 듣고 TV를 켜 놓고 황망해하던 때가 벌써 1년전이네요.

탄핵반대 촛불을 들던 그 자리,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을 들던 자리, 대한문 앞에서 줄을 서서 당신에게 담배 한 개피 바치려고 줄을 섰던 기억이 엊그제로 다가 오네요.

얼마 전 성공회대학교에서의 추모콘서트에서 무대 배경으로 올려진 노란 리본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얼굴을 멍하니 보았습니다.

몇 번이나 게으른 나를 광장으로 불러내었던 당신에 대하여 글을 하나 쓰고 싶은데 갈피가 안잡혀서 당신의 추도 1주기에 쓰여질 도종환님의 글을 하나 올려봅니다.

 

그 곳에서 잘 계시는 거 맞지요?

참 많이도 보고 싶습니다, 소탈한 당신 모습을.....

 

                                                                                                   2010.5.21  맑은날

 

http://www.ddanzi.com/news/196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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