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이들은요, 반은 나면서 타고나고 나머지 반은 삼신할매가 키우니까요.
교육이나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고민하고 환호하고 그럴 필요 없다는 말이지요.
다아 타고난 대로 자라고, 타고난 대로 살고 할테니까요.
맹자 모친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거.....잘은 모르지만 이사를 안해도 맹자는 맹자로 성장했을 것 같다..머 이런 소리지요.
저에 대한 이야기 쬐금 할까요?
크진 않지만 상장회사 다니고, 남들 승진할 때 승진하고, 일 못한다 소리 안듣고, 남들보다 많이는 못 받지만 그럭저럭 월급받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입니다.
마눌도 있고, 아둘 둘도 있구요.
어렵게나마 집도 한 칸도 장만해서 살고 있습죠.
그럼..저 어린 시절 별로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한번 해 볼까요?
국민학교 다닐 무렵 툭하면 학교에 안 갔습니다.
아침에 반찬투정하다가 안가버리고, 비와서 땅이 질척거린다고 안가고, 동네에 형들과 산에 놀러간다고 안가고...
그래서 개근상은 6학년 때 딱 한번 받았지요.
국민학교 5학년 봄 소풍을 마치고 오면서 동네 친구 7명과 같이 산에서 소주를 나눠먹고 헤롱헤롱하다가 아버지께 들킨 적이 있고, 그 이후로 명절 때마다 동네친구들끼리 숨어서 소위 샴페인이라는 술을 마시며 놀았고, 때로는 막걸리에 동동주를 마시고, 중학교부터는 소주를 나눠먹었지요.
담배요?
친구들은 일찍부터 피웠는데, 전 늦게 피웠지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담배를 했는데, 처음 피웠던 담배가 ‘박하 솔’이었습니다.
그 이후 가끔씩 피우다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피웠을 겝니다.
그래도 담배 때문에 정학먹거나 그런 적은 없었고 다만 고등학교때 형에게 쥑사게 얻어 맞은 적이 있을 따름이지요.
고등학교 때에는 고스톱을 배워서 ‘여백의 미’를 즐겼고, 덕분에 유학자금을 탕진하였답니다.
당구는 좀 늦었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였으니까요.
여자요?
그거야 이미 예전에 말한 바와 같이 어머니와 아내 뿐이었습니다.
어때요?
댁의 아들이 저랬다면 까무라치겠지요?
제가 술 담배를 일찍 한 것은 제가 어릴 적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라구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 친구들을 아직도 만나고 그때처럼 그렇게 놀고 있습니다.
아직 교도소 간 친구도 없고, 저 세상으로 먼저 가버린 친구도 없고, 장가 못 간 놈도, 아이 없는 놈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친구들이 사귀면 안 될 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그래서 제 생각은요, 과민 반응하지 마시고, 다만 위험하지 않도록 돌봐주고, 지나칠 경우 가끔씩 부레이크 역할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뭔 소리냐구요?
그냥 뜬금없이 한 소리 해봤습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캐나다에 사시는 분과 차를 한 잔 했는데요, 그 때 그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캐나다에서 살아보면서 느낀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의 아이들에 대한 호들갑이 아이와 나라를 망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2004. 11. 4 맑은날
'두 아들의 아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일 몇 가지 (0) | 2005.03.02 |
---|---|
경욱이 화이팅~ (0) | 2004.12.09 |
작은 일 몇 가지.. (0) | 2004.10.29 |
만남, 사랑, 갈등 그리고 화해 (0) | 2004.10.29 |
경주여행 <사진 서너장> (0) | 2004.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