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구름 뒤 사람 발자국


                                          황지우


    굴착기가 아스팔트를 뚫고 순결한 흙을 만난다.

    무더운 여름, 이 짓이겨진 땅 위에서는 성고문이, 있었다.

    수녀들이 돔 천장 아래서 가슴을 치며 사죄했다.

    무너진 흙구덩을 떠나는 일개미떼, 알을 물고 새 집으로 이동하던 날

    나도 그 가해자라고 생각했다.

    굴착기는 내 가슴에 얹힌 암반을 콩콩 뚫고 있다.

    반창고 아래 곪은 내 영혼, 돌 고드름이 질질 흐르고

    멕시코灣에 올라와 숨 거둔 고래들의 해외 토픽을 스크랩해 둔다.

    내가 증거 인멸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자들은 언제나 근육을 자랑한다.

    어제 개축한 방공호를 오늘 까부수고

    굴착기는 못 뚫을 것이 없다.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틀린 번역이다.

    요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다.

    밧줄은 바늘 구멍을 들어갈 수 있다.

    못 믿는 내 큰 골이 그만큼 연약하다.

    믿음을 주기 위한 돔 양식은 두려움을 주기 위한 동굴을 흉내낸 것이다.

    돌고드름이 송곳니 같이 돋아난 목젖, 악취 나는 내 내장이 내다보이고

    나는 모 출판사의 변절이 즐겁지 않다.

    내 컴컴한 목구멍에서 우산을 쓰고 외출하는 박쥐들이여,

    싸우고 들어온 날은 이렇게 내가 아프다.

    내 혓바닥에서 나온 독으로 나를 핥으고 그 새끼를 핥고 있다.

    몇 번씩 찧은 적이 있는 그 문턱에 또 이마를 찧을 때 처럼

    후회는 늘 새롭고 오류는 맨 처음의 오류이다.

    그 망할 놈들이 먼저 白旗 아래 가 있다.

    性行爲와 拷問은 더 이상 짜낼 것이 없는 것을 짜내려 한다.

    담배를 꼰아 물고 패를 고르는 악당처럼 나는 내 미래를 암산해 본다.

    내가 화해를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는 없었다.

    노처녀들이 음탕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노래책을 놓고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것처럼 따분한 일도 없으리라.

    내 삶을 들여다보는 지금이 꼭 그렇고

    내 그림자의 등이 몹시 가렵다.

    그 자리만 삽으로 파내어버릴 수만 있다면!

    내 葬地에서 되돌아가는 나의 친지들은 곧 나를 잊을 것이다.

    맑은 물 밑 모래 바닥에 내려간 피라미 그림자들, 흐르는 물 속에

    그대로 있다, 내가 세월에 삭고 있는 동안,

    청자 고동은 아름다운 靑瓷를 남긴다. 헛되어라!

    새벽 산정에 야호, 소리 한 번 지르려고 사람들은 하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삶을 훨씬 멀리 보고 있다.

    사람이 현명을 얻으면 쓸쓸해지는 법.

    쓸쓸하여라! 기다란 벌레가 시궁창 가 봉숭아 꽃 그늘을 통과해 가다.

    바보들은 아무거나 좋아한다.

    경멸로써 고고해지는 범죄, 맞았어, 나의 言表는 범죄다.

    밧줄은 바늘 구멍에 들어갈 수 없다.

    굴착기는 물을 뚫을 수 없다.

    반공주의자들은 두려움이 많다.

    내 원고지 2매와 부등가 교환인 대가를 벌기 위해

    노동자들은 뻘뻘뻘 노동으로 전쟁을 치르고

    학자들은 고래들의 자살을 설명하지 못한다.

    야구장에서 파울 볼을 잡으려고 환장하는 실업자들, 그들만이 이해한다.

    잔디밭 굼벵이를 파먹으며 운동장에 들어가는 집비둘기들을.

    사람의 입이 못 먹을 것이 없다. 개고기도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애인은 나환자처럼, 이 세상에서 제일 쓸쓸한 곳에만

    있으려 한다. 청자 고동이 남긴 靑瓷가 헛되이 물 속에 구르고

    일개미떼가 입에 알을 물고 새 집으로 이동하던 날

    눈부신 양떼 구름 한떼가 동작대교 쪽으로 몰려간다.

    물위로 양치기들의 털신이 첨벙첨벙 물 튀기며

    노량진 水産市場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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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번씩 찧은 적이 있는 그 문턱에 또 이마를 찧을 때 처럼

    후회는 늘 새롭고 오류는 맨 처음의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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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때부터 국어 책에 나오는 시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몇 번 읽으면 쉬 외워지기도 했고...

그래서 국어시험에서 시가 나오면 부담이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시집을 산다거나..

시집을 빌려다 보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 당시 소설 책에 푹 빠져 있었으므로....


위 시를 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나 아니면 그 이듬해 여름이었을 것이다.

당시 직장다니는 큰 형이 정기구독하는 월간문학잡지가 방안에 굴러 다니고 있었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단편 소설을 읽던 중....

위 시를 보게 된 것이다.

결국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이었는데...

황지우님의 위 시가 심한 충격과 공감과 경악과 감탄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그 때 이 시의 제목을 외우고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로 이 시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 돈 주고 시집을 처음 산 것이..황지우님의 시집이었는데...

그 시집에서는 이 시가 들어있지 않았다.


내 어린 스무살 시절에....

무언지 모를 갑갑함...

저질렀든지, 아니면 저지를지 모를 오류에 대한 두려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당황스러움...

주의니 이즘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이 함께 했었나보다...

고 막연히 추측을 해 본다.

20년이 넘어서 새로 글을 보니 참 반갑다.

돈 안된다는 시인의 시를 무단으로 도용했으니...

이따 퇴근 길에 황지우님의 시집이나 한 권 사야겠다.


                                 2007. 8. 13 맑은날

       

(2007.8.10 오후 서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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