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월 1일, 일요일...
좀 이른 저녁을 챙겨먹고 전철을 탔습니다.
잘 신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서, 전철 안에서 다시금 운동화 끈을 한번 조였습니다.
시청앞역에 내려서 서울시청 광장으로 가니 집회를 방금 마친 듯 사람들이 떠난 자리였습니다.
양초를 나눠주는 곳에 가니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컵과 양초를 주면서 광화문사거리로 가라고 안내를 하더군요.
그 학생들에게 돈을 약간 주면서 “양초 구입 배후세력이 되도록 해달라”고 하고는 광화문사거리로 향했습니다.
혼자 집회에 참석한 것은 제가 대단한 정치적 의식과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최전선에서 대열을 이끌며 시위를 주도하겠거나 끝까지 시위를 함께 할 생각도 아니었습니다.
시청 앞에 근무한다는 죄(?)로 늘 촛불집회를 보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집회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빚과 지난 수요일 청계광장에서 초를 나눠주던 교복입은 어린 누이의 땀방울 맺힌 맑은 이마에 지은 빚을 조금이나 갚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섰습니다.
그리고 2MB가 말한 “초구입 자금 배후세력”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할까요.
시청 앞에서 광화문사거리까지는 걸으면서 아주 예전에 남포동에서 서면까지 대로를 달려본 기억이 나면서 새삼스러웠습니다.
아이들 손잡고 나온 부부, 유모차 끌고 나온 주부, 도저히 시위에 어울리지 않는 멋진 복장을 한 아가씨들, 시위에 신이 난 실업자 내지 노숙자 부류 등 그야말로 다양한 시위참가자들이었습니다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각 대학의 학생회 깃발도 많이 나부끼고, 일부 정당의 깃발도 보입니다.
마음놓고 걸은 거리는 광화문 사거리까지 였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바로 앞에서 닭장차들을 겹겹이 주차해놓아 경복궁 방면으로 진출을 통제하고 전경들은 닭장차 뒤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닭장차 바로 앞에는 민주노동당에서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은 그 앞에서 한동안 구호를 외치다가 신문로방면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그곳으로도 진출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발길을 돌려서 광화문 앞으로 되돌아와서 그곳에서 시위를 합니다.
시위구호나 행동은 대학이나 기타 단체별로 제각각이었고 통일된 행동이나 응집력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위에 등장하여 흥을 일으키는 노래도 애국가 정도만 부르다 말고, 뜬금없는 “대~한민국”도 구호가 됩니다.
밤 9시 조금 넘긴 시각에 태극기를 온몸에 감은 한 명이 사다리를 놓고 닭장차 위를 오르고 대여섯명의 시위대가 뒤따라 함께 올랐습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전경 대여섯명이 올라와서 밀어내는 등의 실갱이를 벌이자 시민들은 일제히 “폭력경찰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다행이 큰 탈 없이 시위대가 내려오고, 전경들도 되돌아 갔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대치상황(사실은 대치가 아니라 막힌 상황)이 지속되자 대학생 일부는 종각역쪽으로 방향을 돌려 진출을 시도하였습니다.
먹고 살 일 때문에 10시가 못된 시각에 전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그 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다치질 않기를 맘 속으로 기원하면서 집으로 오는 길은 착찹했습니다.
과연 촛불시위로 해결될 문제인가,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80년대와 같이 피를 흘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가 밀려 들었습니다.
쇠고기 수입협상 타결과정과 그 사후 조치에서 보여준 현 정부의 , 대선과 총선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와 여당의 대국민 인식과 상황파악 능력, 그리고 여러 가지의 민영화 계획과 대운하 사업추진 등....모든 문제 하나 하나가 당장 우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자식들과 후손에 길이 상처가 되고 족쇄가 될 일들인데, 이런 문제를 지금과 같이 문제가 터질 때마다 촛불을 들 수도 없는 일인데...................
전철타고 집까지 오는 길 내내 머리 속은 혼랍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어디선가 본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까지는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공약을 지키는지 살펴보자’였는데,
2MB의 경우 '공약을 하나라도 지키겠다면 어쩌나?'하는 심정이라고..........."
“GB, TB 다 있는데, 하필이면 2MB냐! 뇌 용량 좀 늘여라.”
어제 밤에 본 재미난 피켓문구였습니다.
2008. 6. 2 맑은날
<한계레 신문 만평 - 장봉균 / 6.1자>
'생각없이 하는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전없는 스릴러물 - 퍼니게임 (0) | 2008.06.20 |
---|---|
참회합니다. (0) | 2008.06.02 |
에스컬레이터가 묻습니다. (0) | 2008.05.20 |
수입소고기.. (0) | 2008.05.02 |
새싹들... (0) | 2008.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