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내 모르는 두 남자도 함께 있었다.
한 남자가 엘리베이트 문의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 누가 새치머리를 붙여 놓았네.
다른 남자와 함께 내 시선은 손가락 끝을 향했다.
하얀 새치머리 한 가닥이 문 입구의 기둥짬에 뿌리부분이 붙어서 흔들린다.
- 그러게. 새치머리가 붙어 있네"
그걸 본 다른 남자가 대꾸를 하면서 떼어낸다.
"붙여 놓았다"와 붙어 있다"는 같은 말인가?
다르다면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가?
엘리베이트에 있던 두 남자는 모두 새치머리가 언제, 왜 어떤 이유로 그쪽에 붙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냥 빠진 머리카락이 붙을리는 없으니 누군가가 타인의 머리에서 그것을 뽑은 것을 맞을 터이다.
뽑힌 새치머리를 바닥에 버리려다가 붙었을 수도 있고,
의도적이지만 별 생각없이 그곳에 붙였을 수도 있고,
장난삼아 남들이 보란듯이 의도적으로 붙였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 새치머리를 두고 "붙여 놓았네"라고 말하는 것은 화자의 추측이나 의견이고, "붙어있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김훈의 신작 산문집 "바다의 기별"을 선물받았다.
선물이 자발적인 선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선물은 아닐 수 있지만, 자발성을 배제하고 호의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선물이라 우길 수도 있을 터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산문집을 낸 후 5년만에 내는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하여, 자신의 글씀에 대하여, 남대문 화재에 대하여, 故 박경리 선생에 대한 기억 등을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적어내었다.
그의 글은 무사가 칼을 다루는 느낌이 든다.
간결하지만, 곧바로 심장으로 파고드는 언어를 구사한다.
꽤나 긴 문장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그 문장의 느낌은 칼로 동강을 내어 놓은듯이 간단하고도 단호하다.
늘 서늘하고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어찌보면 터무니없는 확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확고하다.
김훈과 엘리베이터의 일이 무슨 상관이냐고?
책에 자신이 기자를 그만둔 이유에 대하여 잠깐 언급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말과 글은 사실과 의견이 혼재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소통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한다.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면 춥다.
그것은 다소 상대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사실(事實)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추운 거 같아요."라고 의견(意見)을 한다.
의견과 사실이 혼재되거나 헷갈리면 그것이 바로 왜곡이 된다.
왜곡은 늘 억울함을 만들고 억울함은 더 큰 왜곡을 만든다.
그래서 어쩌라고?
책 한번 사 보라고....^^
- 책에서....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맞바람이 치던 야산 언덕이었다. 아버지는 오래 병석에 누워 계셨고,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외출 나와서 가끔씩 아래를 살펴드렸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아래를 살필 때, 아버지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22쪽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내 아버지한테서 배운 말투였다. 여동생들은 질려서 울지 못했다. 아버지의 관이
내려갈 때 나는 비로소 내 여동생들의 ‘오빠’라는 운명에 두렵고도 버거운 충만감을 느꼈다. - 23쪽
<고호의 그림으로 만든 표지>
2008. 12. 3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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