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시야~
- 와?
- 고구마 좀 삶아도~.
- 마이 묵지도 안하민서 자꾸 삶아돌라 카노.
- 그래도 좀 삶아도~
- 얇게 썰어서 구워주까?
- 아이다. 그냥 삶아도.
휴일에는 고구마를 곧잘 쪄서 먹습니다.
큰 녀석은 별로 즐기지 않지만, 둘째 녀석과 저는 금방 식사하고도 하나는 거뜬하게 먹을 수 있고,
각시도 반 개 정도는 거들어 먹습니다.
가을부터는 호박고구마가 제 맛을 내더니, 12월이 넘어가면서 밤고구마가 제맛을 냅니다.
수분 함유량이 많은 호박고구마는 쪄서 먹기에 좋기는 하지만, 저장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지
12월이 접어들면서 설핏 얼거나 썩은 부위가 박힙니다.
그래서 요즘은 밤고구마로 바꾸어 먹습니다.
고구마 1개 먹자고 사서 쪄 먹는 것은 좀 호들갑 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말만 되면 고구마를 자꾸 쪄달라고 보채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바로 냄새 때문인 듯 합니다.
고구마를 찔 때 온 집안에 아득하게 퍼지는 "고구마 찌는 냄새"가 좋아서 휴일만 되면 고구마 타령을 하는 듯 합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겨울이면 군것질 거리가 없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집 밖에만 나가면 엔간한 군것질거리가 지천이지요.
이른 봄의 칡부터 늦은 가을의 김장무까지.....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딱히 군것질거리가 없고 유일한 군것질거리가 고구마입니다.
가을에 거둔 고구마를 사랑방 윗목에 수수대로 엮은 발을 둘러 그 안에 그득하게 쌓아 놓고
겨우내 먹게 됩니다.
맛으로 따지면 쇠죽을 끓이고 난 뒤 아궁이에 구워 먹는 것이 군고구마가 일품이지만,
구워질 때 향기가 나지는 않지요.
또래들과 추운 곳에서 신나게 한바탕 놀고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집안 가득 고구마 찌는 냄새가
고여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황홀한 충족감, 기대감, 식욕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 냄새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휴일이면 고구마를 찌게 만듭니다.
- 각시야~
- ..........
- 당신은 우째서 고구마를 자꾸 솥 안에서 굽노?
- ..........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머....
- .............
- .............
- 까기는 쉽네...무울꺼는 엄서도..
ㅡ.ㅡ;;;
2008. 12. 28 맑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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