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다면 아마 서른 중반이 넘었겠지.

입가와 눈 가장자리에 웃음주름도 몇 가닥 잡혔을 게야.

..................

선하게 생긴 이마,

지독하게 나쁜 시력 탓에 무거운 돋보기 안경을 쓰고도

책생 위에는 다시 작은 글씨를 보기 위한 큼지막한 돋보기가 놓여 있었지.

핏기없어 하얗다 못해 투명해져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뼈 속까지 비칠 듯 한 갸름한 얼굴에, 

또한 핏기가 없어 여름에도 파랗게 추워보이는 입술,

그 파란 입술에 늘 웃음기가 감돌아서 더 힘겹게 보였어.

물 한 컵 떠오고도 금새 숨이 가빠서 쇳소리 내던 가녀린 네 가슴,

손톱 하나 하나는 네 운명처럼 그 끝이 안으로 오그라 들어서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아직 잘 살고 있을까?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하면서 과외를 했습니다.

중고등학생의 공부를 봐 주겠다는 광고를 매직으로 대충 작성하여 남산동 일대의 전신주와 벽에 붙여 놓았지요.

그 다음날 전화가 두어 곳에서 왔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중 한 집을 들렀습니다.

남산동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였습니다.

그 집을 방문하니 넉넉해뵈는 살림살이는 아니어서 조금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집이 넉넉하면 가외비를 받을 때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니까요...

아이 엄마는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자신의 딸 아이 영어와 수학 공부를 좀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여고생이라기에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아이 엄마는 꼭 부탁한다면서 당부를 하길래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날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고, 그 다음날부터 학교를 마치고 저녁 시간에 공부를 봐주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저녁 8시에 아이 집에 갔는데, 자그마한 여고생이 인사를 수줍게 하였지요.

그런데 언뜻 본 그 아이는 꽤나 아파 보였습니다.

공부실력은 크게 뛰어나지 않았는데 이해력을 봐서는 총명하게 보였고,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없지는 않으나 체력 탓인지 금새 피곤해지는 듯 보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면 크게 소리를 내지 않고 그냥 배시시 잘 웃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아마도 아이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공부를 돌본지 일주일 째 되던 날, 공부를 마치고 아이 엄마와 잠시 따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아이가 많이 아픈 거 같은데, 공부보다도 쉬게 하면서 치료에 먼저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었습니다.

일주일간 공부 돌본 것은 신경쓰실 거 없다고도 말씀 드렸지요.

그러자 그 아이 엄마는 한숨을 내쉬더니, 아이가 심장병이 있는데 치료가 힘든 상태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과외를 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아이의 부탁이라서 어쩔 수 없다면서, 쉬엄쉬엄 힘들지 않게 공부를 좀 돌봐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과외가 한달을 넘겼겠지요.

아이는 참으로 잘 따르는 편이고 성격적으로 밝은 편이었으나, 안으로 밀려 들어간 파란 손톱을 책상 위에 올려 두기를 부끄러워 했습니다.

가끔씩 우스개소리도 하면서 날 웃기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그냥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면서 그 아이의 맑은 영혼에 내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두달째 들어 보름쯤 지난 어느날 제가 교통사고를 당했지요.

새벽에 도서관을 가다가 택시에 부딪히면서 3-4미터는 족히 날아가서 떨어졌지요.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부러진 곳은 없었는데, 컨디션이 영 엉망이었지요.

교통사고 난 지, 3일쯤 지나서 다시 온 몸에 열이나고 두통이 심해서 병원가보니, 뇌수막염이라고 하면서 입원을 하라고 했습니다.

아이 집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니 치료 잘 받고 치료가 끝나면 다시 과외를 해 달라고 부탁하길래, 치료가 끝나보 보자고 했습니다.

별 거 아닌 걸로 20일 넘게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했습니다.

퇴원하고도 몸이 션찮아서 아이집에 전화를 해서 과외를 계속 할 수 없다고 말하니 아이엄마가 많이 서운해 하면서 보름동안의 과외비를 챙겨주겠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말했지요.


그게 그 아이와의 인연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잊혀지지요.

그 아이도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졌는데, 이따금 생각나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입니다.

의문이 아니라 바램이겠지요.

그냥 이번에도 어떤 시를 읽다가 든 생각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


                  허장무

내게, 꼭 한번 보고싶은 여자가 있다면
고등학교 다닐 무렵,  여름방학 때 고향집에서 만난,
어떻게 이곳까지 흘러오게 되었는지
우리 집 사랑채에 기거하면서 새경을 살던 내외의 딸
이마를 숙이고 지나가면 감자꽃 향기가 풍기던
보라색 가지 냄새도 나던
마당을 가로질러 헛청이나 부엌을 드나들던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있던, 내 또래의 계집애
나를 보면 멀리서도 금방 뺨이 붉어져
까만 머릿결 사이로 얼굴을 감추던
공부를 안해서 더욱 착하고 고와 보였던
긴 여름의 황혼 속에서
옥수수 밭 사이로 반짝이던 모습 그대로
석류나무 아래에 서 있을 때면 정말 익어가던 석류같던
무슨 잘못으로 어미에게 등짝을 맞으며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치마말기로 눈물을 훔치던
아비가 바쁠 땐 논에 물꼬를 보러 다니던
장대비를 맞고 흠씬 젖은 옷을 손으로 쥐어짜던
빗물 떨어지는 처마 끝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마당에 모깃불을 놓고 시냇가로 등목하러 가던
밤이면 석유 등잔 너머 긴 갈래머리 그림자가
이슥토록 띠살문 사이로 어른거리던
손톱에 봉숭아 꽃물 들이다 말고 나를 보자
기겁을 하고 뒤란으로 돌아가던
수심 싶은 눈길로 이내 그 긴 속눈썹을 내리깔던,
설익은 낮달이었을까?
풋과일처럼 싱싱하던, 물빛처럼 출렁이던
지금도 문득문득 기억 속에 물결치는
잠시 머물다 흔적도 없이 떠나버린
영영 볼 수 없는 허전함으로 가슴을 쓸게 하던

꼭 한 번 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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